김수경 (야구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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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스카우트를 거쳐 현재 [[NC 다이노스]]의 1군 불펜 투수코치이다.
NC스카우트를 거쳐 현재 [[NC 다이노스]]의 1군 불펜 투수코치이다.


==선수 시절==
== 선수 시절 ==
===한국 프로야구 시절===
=== 한국 프로야구 시절 ===
====[[현대 유니콘스]] 시절====
==== [[현대 유니콘스]] 시절 ====
[[1998년]]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졸우선지명을 받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여 첫 해에 12승 4패, 2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여 당시 [[삼성 라이온즈|삼성]] [[외야수]] [[강동우 (1974년)|강동우]]를 물리치고 그 해 신인왕을 차지하였다. 특히 이 해에 기록한 168탈삼진은 [[김시진]]이 기록했던 154개를 경신, 역대 신인 최다 탈삼진을 기록하여 '닥터 K'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ref>김효경, '내년을 노린다 - FA 포기하고 히어로즈에 남은 투수 김수경, 《SPORTS 2.0》, 2008, 12, 1</ref>
[[1998년]]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졸우선지명을 받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여 첫 해에 12승 4패, 2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여 당시 [[삼성 라이온즈|삼성]] [[외야수]] [[강동우 (1974년)|강동우]]를 물리치고 그 해 신인왕을 차지하였다. 특히 이 해에 기록한 168탈삼진은 [[김시진]]이 기록했던 154개를 경신, 역대 신인 최다 탈삼진을 기록하여 '닥터 K'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ref>김효경, '내년을 노린다 - FA 포기하고 히어로즈에 남은 투수 김수경, 《SPORTS 2.0》, 2008, 12, 1</ref>
[[1999년]]에는 약간 주춤하여 선발로 8승, 구원으로 2승을 획득하여 10승을 거뒀다.
[[1999년]]에는 약간 주춤하여 선발로 8승, 구원으로 2승을 획득하여 10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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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해였던 [[2007년]]에는 마지막으로 다시 12승을 거뒀다. 그 후 팀이 해체되고 인계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히어로즈]] 선수가 됐다.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해였던 [[2007년]]에는 마지막으로 다시 12승을 거뒀다. 그 후 팀이 해체되고 인계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히어로즈]] 선수가 됐다.


====[[넥센 히어로즈]] 시절====
==== [[넥센 히어로즈]] 시절 ====
[[2008년]] [[우리 히어로즈]] 창단 후 꾸준히 호투는 이어 갔으나 전성기 때만큼의 실력이 나오지 않았다. 창단 첫 해에 선발로 16경기 등판하여 3승 6패의 성적을 거두고, 이듬해인 [[2009년]]에는 6승 11패, 6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했다.
[[2008년]] [[우리 히어로즈]] 창단 후 꾸준히 호투는 이어 갔으나 전성기 때만큼의 실력이 나오지 않았다. 창단 첫 해에 선발로 16경기 등판하여 3승 6패의 성적을 거두고, 이듬해인 [[2009년]]에는 6승 11패, 6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했다.
그는 [[2010년]]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제구 난조로 강판당한 후 자진해서 2군으로 내려갔고, 2군에 있던 중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후 2군에서 부활을 위해 성실히 도약 준비를 하였다.
그는 [[2010년]]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제구 난조로 강판당한 후 자진해서 2군으로 내려갔고, 2군에 있던 중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후 2군에서 부활을 위해 성실히 도약 준비를 하였다.
[[2011년]] [[6월 11일]] 무려 1년 2개월 만에 [[삼성 라이온즈]]전에 구원 등판해 3.2이닝동안 3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부활을 예고했다. 마침내 [[2011년]] [[9월 28일]]에는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6⅓이닝동안 3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달성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280419 넥센 김수경, 노련미 빛난 745일 만의 승리] 《OSEN》, 2011년 9월 28일</ref>
[[2011년]] [[6월 11일]] 무려 1년 2개월 만에 [[삼성 라이온즈]]전에 구원 등판해 3.2이닝동안 3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부활을 예고했다. 마침내 [[2011년]] [[9월 28일]]에는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6⅓이닝동안 3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달성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280419 넥센 김수경, 노련미 빛난 745일 만의 승리] 《OSEN》, 2011년 9월 28일</ref>


===한국 독립야구 시절===
=== 한국 독립야구 시절 ===
====[[고양 원더스]] 시절====
==== [[고양 원더스]] 시절 ====
여전히 현역 의지를 보였던 그는 잠깐 동안의 코치 생활을 접고 당시 감독이었던 [[김성근 (야구인)|김성근]] 밑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취지에서 [[2013년]] [[10월 18일]] 독립 야구단인 [[고양 원더스]] 입단을 선언했고 1년 만에 다시 선수로 복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donga.com/3/all/20131018/58314257/1|제목=100승 투수 김수경, 전격 현역 복귀 선언|출판사=스포츠 동아|날짜=2013-10-19|저자=김도헌}}</ref>
여전히 현역 의지를 보였던 그는 잠깐 동안의 코치 생활을 접고 당시 감독이었던 [[김성근 (야구인)|김성근]] 밑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취지에서 [[2013년]] [[10월 18일]] 독립 야구단인 [[고양 원더스]] 입단을 선언했고 1년 만에 다시 선수로 복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donga.com/3/all/20131018/58314257/1|제목=100승 투수 김수경, 전격 현역 복귀 선언|출판사=스포츠 동아|날짜=2013-10-19|저자=김도헌}}</ref>
[[고양 원더스]] 해체 1년 후에 완전 은퇴를 선언했다.
[[고양 원더스]] 해체 1년 후에 완전 은퇴를 선언했다.


==야구선수 은퇴 후==
== 야구선수 은퇴 후 ==
[[2012년]] [[2012년 한국 프로 야구|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고 [[넥센 히어로즈]] 불펜 투수[[야구 코치|코치]]로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12년]] [[2012년 한국 프로 야구|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고 [[넥센 히어로즈]] 불펜 투수[[야구 코치|코치]]로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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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인천고등학교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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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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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7일 (금) 11:00 판

김수경
NC 다이노스 No.98 본인의 데뷔연도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9년 8월 20일(1979-08-20)(44세)실제생일 5월8일
출신지 대한민국
신장 183cm
체중 86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98년
드래프트 순위 1998년 고졸우선지명(현대 유니콘스)
첫 출장 KBO / 1998년 4월 17일
인천쌍방울전 선발
마지막 경기 KBO / 2012년 8월 1일
문학SK전 구원
획득 타이틀
계약금 2억 1,000만원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프런트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0년 시드니
메달 기록
남자 야구
올림픽
2000 시드니 야구

김수경 (金守經, 1979년 8월 20일 ~ )은 전 KBO 리그 현대유니콘스넥센히어로즈에서 선수생활 마치고, 넥센 1군 투수코치생활 1년 후, 고양다이노스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끝까지 선수로 노력하였으며, NC스카우트를 거쳐 현재 NC 다이노스의 1군 불펜 투수코치이다.

선수 시절

한국 프로야구 시절

현대 유니콘스 시절

1998년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졸우선지명을 받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여 첫 해에 12승 4패, 2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여 당시 삼성 외야수 강동우를 물리치고 그 해 신인왕을 차지하였다. 특히 이 해에 기록한 168탈삼진은 김시진이 기록했던 154개를 경신, 역대 신인 최다 탈삼진을 기록하여 '닥터 K'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1] 1999년에는 약간 주춤하여 선발로 8승, 구원으로 2승을 획득하여 10승을 거뒀다. 그 후 2000년에는 팀의 동료 투수 임선동, 정민태과 함께 최강의 선발진을 구축하며 54승을 합작, 각각 18승 트리오를 결성해 공동 다승왕을 수상했고, 팀을 2000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리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해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하였다. 2001년에는 주춤하여 6승,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연속 10승 이상을 달성해내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해였던 2007년에는 마지막으로 다시 12승을 거뒀다. 그 후 팀이 해체되고 인계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히어로즈 선수가 됐다.

넥센 히어로즈 시절

2008년 우리 히어로즈 창단 후 꾸준히 호투는 이어 갔으나 전성기 때만큼의 실력이 나오지 않았다. 창단 첫 해에 선발로 16경기 등판하여 3승 6패의 성적을 거두고, 이듬해인 2009년에는 6승 11패, 6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했다. 그는 2010년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제구 난조로 강판당한 후 자진해서 2군으로 내려갔고, 2군에 있던 중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후 2군에서 부활을 위해 성실히 도약 준비를 하였다. 2011년 6월 11일 무려 1년 2개월 만에 삼성 라이온즈전에 구원 등판해 3.2이닝동안 3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부활을 예고했다. 마침내 2011년 9월 28일에는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6⅓이닝동안 3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달성했다.[2]

한국 독립야구 시절

고양 원더스 시절

여전히 현역 의지를 보였던 그는 잠깐 동안의 코치 생활을 접고 당시 감독이었던 김성근 밑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취지에서 2013년 10월 18일 독립 야구단인 고양 원더스 입단을 선언했고 1년 만에 다시 선수로 복귀했다.[3] 고양 원더스 해체 1년 후에 완전 은퇴를 선언했다.

야구선수 은퇴 후

2012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고 넥센 히어로즈 불펜 투수코치로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출신 학교

주요 기록

각주

  1. 김효경, '내년을 노린다 - FA 포기하고 히어로즈에 남은 투수 김수경, 《SPORTS 2.0》, 2008, 12, 1
  2. 넥센 김수경, 노련미 빛난 745일 만의 승리 《OSEN》, 2011년 9월 28일
  3. 김도헌 (2013년 10월 19일). “100승 투수 김수경, 전격 현역 복귀 선언”. 스포츠 동아.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