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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년]] 몽골은 금으로부터 막대한 금액의 보상금을 받고 철수했다. 금 선종은 칭기스칸이 철수하자마자 오도보와 회의를 나누고 곧장 도성을 베이징에서 황하 이남의 카이펑(개봉)으로 옮겼다.
 
이듬해인 [[1215년]] 금선종과금 선종 오도보가 개봉으로 천도했다는 소식을 듣자 칭기즈 칸은 그것을 금나라를 지워버릴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다시 전쟁을 재개, 곧장 북경[北京]을 함락시켜 건물들을 모두 잿더미로 만들고 그 지역 주민들을 철저하게 학살하였다. 초원의 거주자들이 아무런 과도기적 단계도 없이 찬란한 문명을 가진 거대한 도시를 소유하게 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더 나은 방법을 알지 못했던 그들은 당황해서 방화와 살육을 하게 된것이다. 개인적인 약탈은 그들의 규범인 야삭에서 금하는 것이 었는데 그들은 북경에 들어가서 한달 동안이나 약탈을 계속 하였다. 이것은 10세기의 거란이나 12세기의 여진 사람들이 살육을 최소화하고 그들의 재산을 파괴하지 않고 이전 왕조를 계승하여 차지한 것과 비교해 볼 때 퇴보한 것이었다. 그 뒤 중국 북부의 완전한 장악은 부장인 무칼리에게 맡겨졌다.
 
금은 개봉 천도이후 섬서성의 일부와 하남성 지역 정도로 축소되면서 사실상 멸망하였다. 그렇지만 몽골이 중앙아시아에서 전쟁을 하고 있어 여력이 없을 때, 금은 잠시나마 북경을 제외한 일부 성을 수복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