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 (진 장양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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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나라의 태후 ===
[[기원전 246년]], [[진 장양왕]]이 죽고 태자 [[진 시황제|진왕 영정]]이 즉위하였다.<ref>《사기》 권5 진본기, 《사기》 권6 진시황본기, 《사기》 권85 여불위열전</ref> 그에 따라서 진왕 정의영정의 생모였던생모 조희는 이후로 태후(太后)라 불리게 되었으며, 진나라의 상국(相國)이 된 여불위와 몰래 간통하였다. 이후 진왕 정이영정이 성장한 후에도 조희가 여불위와 간통하려하자간통하자, 여불위는 이 일이 들통날까 두려워하였다.<ref>《사기》 권85 여불위열전</ref>
 
그러자 여불위는 음경이 큰 노애라는 사람을 구해서 자신의 사인(舎人)으로 삼았다. 여불위는 노애로 하여금 오동나무노애애게 바퀴를 음경으로 들어올리는돌리는 공연을 자주 벌이도록 해서 이 소문이 조희의 귀에 들어가도록 유혹하였다했다. 조희가 이를 알고는 노애를 가지고자 하였는데, 여불위는 사람을 시켜서 노애를 모함하여 부형(腐刑, 궁형)을 당하게 하는 한편, 조희에게는조희에게 그를 부형에 처한 것으로 위장시켜 궁안으로 들여올 것을 권하였다.<ref>《사기》 권85 여불위열전</ref>
 
이에 조희는 부형을 집행하는 관리에게 뇌물을 주어서 노애에게 부형을 집행한 것 처럼것처럼 꾸미고는 그의 수염과 눈썹을 밀었다. 가짜 환관이 된 노애는 조희를 모시게 되었는데, 조희는 노애와 간통하며 그를 매우 총애하였다. 결국 임신을 하게 된 조희는 사람들에게 들킬까 두려워서 점을 치고는 잠시 궁을 떠나야 한다면서 거처를 옹(雍)으로 옮겼다.<ref>《사기》 권85 여불위열전</ref>
 
노애는 이후에도 늘 조희를 곁에서 모시면서 많은 상을 받았으며, 주변의 모든 일을 마음대로 결정하였다. 노애의 집에는 노복이 수 천 명이었고, 벼슬을 얻으려고 노애의 식객이 된 자들도 천 여 명에 이르렀다.<ref>《사기》 권85 여불위열전</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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