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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친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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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 이씨 (영보당)|귀인 이씨]]와 [[대한제국 고종|고종]]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로, 완화군(完和君)으로 봉해졌다. 어머니 영보당 이씨는 부왕 고종이 즉위하여 입궁한 직후, 궁녀 중 처음으로 연애를 하였던 여성이다. 그러나 [[명성황후]]가 가례를 올린 뒤 입궐하면서 경쟁관계가 형성된다.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아직 [[명성황후]]와 혼인하기 이전에 궁녀출신이었던궁녀 출신이었던 이씨를 총애하고 [[1868년]]에는 영보당 이씨에게서 아들이 태어나자 이를 사이에 두고 두 여인 간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다툼이 전개되었다고 한다.<ref name=dd /> [[흥선대원군]]은 첫 손자인 완화군을 총애하였다. 또한 명성황후가 낳은 아들 둘이 연이어 요절한데다, 두 번째 아기는 항문이 없는 기형아로 [[흥선대원군]]이 준 인삼을 달여 먹였다가 아이가 신열을 일으키다 갑자기 사망하면서, 둘의 관계는 묘하게 흐르게 된다.
 
[[영종정경]]부사에 임명되고, 조부 [[흥선대원군]]이 완화군을 매우 총애하여 세자의 자리에 염두에 두고 봉하려 했으나, [[명성황후]] 때문에 실패하였다<ref name=dd />. [[1880년]]에 병을 얻어 사망했는데, 이때 완친왕을 낳은 귀인 이씨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실어증이 걸려 병을 앓기 시작했다. 완친왕의 갑작스런 죽음은 명성황후의 모략이 개입되어있다는 설이 있다.{{출처|날짜=2007-12-9}}
[[분류:운현궁]]
[[분류:의문사한 사람]]
[[분류:유교 신자]]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분류:대한제국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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