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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스칸데르베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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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제르지 카스트리오티(Gjergj Kastri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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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지 카스트리오티'''({{llang|sq|Gjergj Kastrioti}}, [[1405년]] [[5월 6일]] ~ [[1468년]] [[1월 17일]])는 흔히 '''스컨데르베우'''({{llang|sq|Skënderbeu}}) 또는 '''스칸데르베그'''(Skanderbeg)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알바니아]]의 군주이자 민족 영웅이다.
'''제르지 카스트리오티'''({{llang|sq|Gjergj Kastrioti}}, [[1405년]] [[5월 6일]] ~ [[1468년]] [[1월 17일]])는 흔히 '''스컨데르베우'''({{llang|sq|Skënderbeu}}) 또는 '''스칸데르베그'''(Skanderbeg)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알바니아]]의 군주이자 민족 영웅이다.


[[1405년]] 중부 알바니아의 영주인 카스트리오티(Gjon Kastrioti)의 아들로 태어났다. [[1423년]]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오스만 제국]]의 술탄인 [[무라트 2세]]의 인질로 끌려가면서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알렉산더 대왕]] 아들"을 뜻하는 [[터키어]] 단어인 "스칸데르베그"({{llang|tr|İskender Bey}}, 이스켄데르 베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스칸데르베그"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다.
[[1405년]] 중부 알바니아의 영주인 지온 카스트리오티(Gjon Kastrioti)의 아들로 태어났다. [[1423년]]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오스만 제국]]의 술탄인 [[무라트 2세]]의 인질로 끌려가면서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오스만인들이 그의 군사적 재능이 [[알렉산더 대왕]] 비교될 만하다고 하여 알렉산더의 [[터키어]] 이름인 '이스켄데르'와 그가 받은 '베이'라는 작위를 합쳐서 "스칸데르베그"({{llang|tr|İskender Bey}}, 이스켄데르 베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스칸데르베그"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다.


[[1443년]] [[11월 28일]] 300여 명의 [[알바니아인|알바니아인들]]을 이끌고 오스만 제국에 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으며 [[기독교]]로 개종한 뒤에는 [[베네치아 공화국]]과 [[나폴리 왕국]], [[교황령]]과 동맹을 맺고 [[알바니아]] 북부 지역을 통일했다. 그가 이끈 알바니아 군대는 [[1448년]] [[코소보 전투 (1448년)|코소보 전투]]에서 유럽 연합 진영에 서서 오스만 제국과 싸웠지만 패배하였다. 알바니아는 [[1443년]]부터 [[1468년]]까지 25년 동안 자치권을 유지했지만 [[1479년]] 오스만 제국에 합병당하고 만다.
[[1443년]] [[11월 28일]] 300여 명의 [[알바니아인|알바니아인들]]을 이끌고 오스만 제국에 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으며 [[기독교]]로 개종한 뒤에는 [[베네치아 공화국]]과 [[나폴리 왕국]], [[교황령]]과 동맹을 맺고 [[알바니아]] 북부 지역을 통일했다. 그가 이끈 알바니아 군대는 [[1448년]] [[코소보 전투 (1448년)|코소보 전투]]에서 유럽 연합 진영에 서서 오스만 제국과 싸웠지만 패배하였다. 알바니아는 [[1443년]]부터 [[1468년]]까지 25년 동안 자치권을 유지했지만 [[1479년]] 오스만 제국에 합병당하고 만다.

2018년 12월 5일 (수) 01:54 판

스칸데르베그
알바니아의 군주
재위 1443년 11월 28일 - 1468년 1월 17일
전임 지온 카스트리오티
후임 지온 카스트리오티 2세
이름
제르지 카스트리오티(Gjergj Kastrioti)
신상정보
출생일 1405년 5월 6일
사망일 1468년 1월 17일
사망지 베네치아 공화국 레저
가문 카스트리오티 가문
부친 지온 카스트리오티
모친 보이사바 트리발다
배우자 도니카 아리아니티
자녀 지온 카스트리오티 2세

제르지 카스트리오티(알바니아어: Gjergj Kastrioti, 1405년 5월 6일 ~ 1468년 1월 17일)는 흔히 스컨데르베우(알바니아어: Skënderbeu) 또는 스칸데르베그(Skanderbeg)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알바니아의 군주이자 민족 영웅이다.

1405년 중부 알바니아의 영주인 지온 카스트리오티(Gjon Kastrioti)의 아들로 태어났다. 1423년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오스만 제국의 술탄인 무라트 2세의 인질로 끌려가면서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오스만인들이 그의 군사적 재능이 알렉산더 대왕에 비교될 만하다고 하여 알렉산더의 터키어 이름인 '이스켄데르'와 그가 받은 '베이'라는 작위를 합쳐서 "스칸데르베그"(튀르키예어: İskender Bey, 이스켄데르 베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스칸데르베그"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다.

1443년 11월 28일 300여 명의 알바니아인들을 이끌고 오스만 제국에 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으며 기독교로 개종한 뒤에는 베네치아 공화국나폴리 왕국, 교황령과 동맹을 맺고 알바니아 북부 지역을 통일했다. 그가 이끈 알바니아 군대는 1448년 코소보 전투에서 유럽 연합 진영에 서서 오스만 제국과 싸웠지만 패배하였다. 알바니아는 1443년부터 1468년까지 25년 동안 자치권을 유지했지만 1479년 오스만 제국에 합병당하고 만다.

일화

스칸데르베그는 자기 부하인 병졸 하나를 죽이려고 쫓아갔다. 그때 이 병졸은 그의 마음을 달래어 보려고 갖은 탄원으로 공손히 애걸해 보아도 소용이 없자, 궁극에 몰린 나머지 악이 나서 칼을 뽑아 들고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그러자 이 굳은 결심을 본 스칸데르베그는 그만 분한 마음을 풀고 장한 태도를 가상히 여겨, 도리어 그를 총애하게 되었다.[1]

각주

  1. 미셸 드 몽테뉴(1580), 《수상록》, Traduction Michaud. Firmin Didot, 1907 〈Livre I/Chapitre 1〉“Scanderberg, prince d'Épire, poursuivait avec l'intention de le tuer, un de ses soldats ; celui-ci, après avoir essayé en vain de l'apaiser par des protestations de toutes sortes et les plus humbles supplications, se résolut, en désespoir de cause, à l'attendre l'épée à la main. Cet acte de résolution arrêta net l'exaspération de son maître qui, en le voyant prendre un si honorable parti, lui fit grâce.”; 손우성(孫宇聲) 역 (1983), 학원출판공사(學園出版公社), 34쪽. “에피로스 공 스칸데르베그는 자기 부하인 병졸 하나를 죽이려고 쫓아갔다. 그때 이 병졸은 그의 마음을 달래어 보려고 갖은 탄원으로 공손히 애걸해 보아도 소용이 없자, 궁극에 몰린 나머지 악이 나서 칼을 뽑아 들고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그러자 이 굳은 결심을 본 그의 상전은 그만 분한 마음을 풀고 장한 태도를 가상히 여겨, 도리어 그를 총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