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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유대인 ==
== 오늘날의 유대인 ==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전 세계의 유대인 인구가 약 1천 8백만 명 정도였으나 [[아돌프 히틀러|히틀러]]가 집권하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약 1천만 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오늘날 전 세계 134개국에 약 1천 4백만 정도가 살고 있다. [[미국]]에 약 580만 명, 이스라엘에 약 6백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그밖에 [[캐나다]], [[헝가리]], [[우크라이나]], [[프랑스]], [[아르헨티나]], [[러시아]], [[독일]] 등에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 [[유럽]]의 유대인 인구는 240만 명, [[라틴 아메리카]] 50만 이상으로 추정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전 세계의 유대인 인구가 약 1천 8백만 명 정도였으나 [[아돌프 히틀러|히틀러]]가 집권하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약 1천만 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오늘날 전 세계 134개국에 약 1천 4백만 정도가 살고 있다. [[미국]]에 약 580만 명, 이스라엘에 약 6백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그밖에 [[캐나다]], [[헝가리]], [[우크라이나]], [[프랑스]], [[아르헨티나]], [[러시아]], [[독일]] 등에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 각각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피해 도망친 유대인의 후손이며 [[소련]]의
경우 자국으로 피해서 들어온 유대인들을 거의 [[대한민국]] 근처까지 도피시켰는데 그 일대에 [[유대인 자치구]]가 형성되었다. 훗날 [[나치 독일]]이 패망하자 [[유대인 자치구]]에 살던 유대인 대부분이 [[독일]]로 되돌아갔다. [[유럽]]의 유대인 인구는 240만 명, [[라틴 아메리카]]는 약 5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1948년]] [[5월 14일]] 건국된 [[이스라엘 공화국]]은 유대인이면 누구나 시민권을 발급할 수 있게 허용한다. 이는 [[귀환법]] 또는 [[귀향법]]([[the Law of Return]])이라고 한다. 이 법률상 조부모 중 유대인이 있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 모두 유대인으로 간주된다. 또 유대인 이민자들과 가족관계인 비(非)유대인들에게도 이스라엘 이민을 허용한다. 이스라엘의 귀환법이 유대교에서 전통적으로 따르는 유대인의 정의보다 일부러 더 광범위하게 정의한 이유는 유대인의 친척들도 외부에서는 유대인으로 여겨 반유대주의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1948년]] [[5월 14일]] 건국된 [[이스라엘 공화국]]은 유대인이면 누구나 시민권을 발급할 수 있게 허용한다. 이는 [[귀환법]] 또는 [[귀향법]]([[the Law of Return]])이라고 한다. 이 법률상 조부모 중 유대인이 있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 모두 유대인으로 간주된다. 또 유대인 이민자들과 가족관계인 비(非)유대인들에게도 이스라엘 이민을 허용한다. 이스라엘의 귀환법이 유대교에서 전통적으로 따르는 유대인의 정의보다 일부러 더 광범위하게 정의한 이유는 유대인의 친척들도 외부에서는 유대인으로 여겨 반유대주의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2018년 9월 9일 (일) 20:42 판

유대인
יהודים (Yehudim)

유다 마카베오 ·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 아키바 벤 요셉 · 마이모니데스 · 바뤼흐 스피노자 · 지그문트 프로이트 · 샬롬 알레이켐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에미 뇌터 · 다비드 벤구리온 · 마르크 샤갈 · 나탈리 포트만

총인구
1천 4백만 ~ 1천 4백 50만 명[1]
언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영어, 아람어, 아랍어, 독일어, 암하라어, 페르시아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기에즈어, 브린어, 네덜란드어, 중국어, 터키어, 히브리어, 이디시어, 라디노어
종교
유대교, 기독교, 불교, 천주교, 극소수 기타
민족계통
근연민족 사마리아인, 레바논인, 가나안인, 아시리아인, 아랍인, 아르메니아인, 페르시아인,

유대인(히브리어: יהודי 유대인; Yehudim[2]) 또는 유태인(猶太人), 유다인은 고대 근동의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기원한 민족적, 종교적, 문화적 집단이다.

히브리 성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의 가계는 기원전 18세기경에 가나안과 그 주변 지역에 살았던 성서 속 족장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그 부인들인 사라, 리브가, 레아, 라헬로 거슬러 올라간다. 야곱은 자신의 아들이자 당시 이집트의 고관이었던 요셉과 고센 지역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파라오가 초청하여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이집트로 이주하였다. 하지만 이들 족장들의 후손들은 나중에 이집트의 노예로 전락했으며 이후 모세의 지도 하에 이집트를 탈출하게 된다. 보통 이 당시 이스라엘인들의 탈출 시기를 기원전 13세기로 본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주로 유다 지파시므온 지파의 후손이며 부분적으로는 베냐민 지파레위 지파의 후손이기도 하다. 이들 지파는 고대 유다 왕국을 형성했었으며 이 중 유다 지파가 주류였고 베냐민과 레위 지파는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에도 속했었다. 유대인과 가장 가까운 민족은 사마리아인인데, 이들은 연합 왕국 분열 이후 형성된 이스라엘 왕국의 후손이며 그들의 전승에 따르면 에브라임 지파므낫세 지파가 이들의 조상이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유대 민족성과 종교는 매우 밀접한 관계인데 이는 유대교가 유대 민족의 전통적인 신앙이기 때문이다. 유대교로의 개종자들은 보통 유대인 사회 내에서 태어날 때부터 유대인이었던 이들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주류 유대교에서 개종은 권장되는 것은 아니며 어려운 일로 여겨지며 주로 유대인과 비유대인과의 결혼이 이에 해당된다.

현대 국가 이스라엘은 유대 국가로 수립되었으며 기본법에서 스스로를 유대 국가로 규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귀환법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요구하는 모든 유대인에게 국적 취득을 승인한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유일한 나라이다.

성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은 고대에 두 번 정치적으로 독립을 달성했었다. 첫번째 시기는 판관 시대와 이후 이어지는 연합 왕국 시대였으며 연합 왕국의 몰락 이후 그 영토는 이스라엘과 유다로 분열된다. 유대인이라는 용어는 로마 시대의 유다의 지명이었던 유대아(Judea)에서 유래되었으며 남유다 왕국 출신의 사람을 의미한다. 기원전 587년에는 신바빌로니아의 왕이었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제1차 성전을 파괴하였으며 유다의 지배층을 추방하였다. 기원전 586년엔 유다가 신바빌로니아의 일부가 되었으며 유다에 남은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게 되었다. 바빌론 유수는 기원전 539년에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정복하고 추방된 유대인들이 유다로 돌아와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끝났다. 제2차 성전은 기원전 515년에 건설이 끝났다. 페르시아령 유다는 페르시아 제국이 알렉산드로스 대제에게 멸망하는 기원전 333년까지 제국에서 평화로운 지역에 속했다. 유대인들은 이후 다시 기원전 140년에서 36년까지 하스모니안 왕조 아래에서 정치적으로 독립을 유지한다.

역사

구약성서에 따르면 하느님의 명에 따라, 영원하고 고대 이스라엘인과 고대 히브리인은 아브라함의 후예로서 가나안 땅에서 사울을 초대 왕으로 고대 히브리 왕국을 세웠다. 2대 다윗왕은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왕국의 수도로 삼았으며, 사울 왕가와 필리시테인의 전투에서 전사하여 하느님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다윗왕이 그 뒤를 이었다. 그의 아들 3대 솔로몬왕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였다. 북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의 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어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살마네세르 5세에게 멸망하고 남유다는 기원전 6세기 신(新)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에 멸망하였다.

그 후 유대인들의 땅은 페르시아 제국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당한 후, 시리아 지역에서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승계 셀레우코스(Seleucid) 왕조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의 성전을 제우스 신전으로 바꾸려 하자 유대교 정통파들은 마카비 가문(Maccabees)의 지도로 반란을 일으켜 독립된 유대인 왕국을 세웠는데 당시 에피파네스 왕조의 반유다주의 및 마카비 가문의 반란은 구약성서의 외경 중 '마카비 상,'에 나와 있다. 마카비 가문의 반란으로 세워진 왕조를 하스모니안 왕조(Hasmonaean Dynasty)라 하는데 기원전 165년부터 기원전 63년 약 100년간 독립을 유지했다. 하지만 기원전 63년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유다이아(Judaea) 주로 편입되었다. 기원후 66년 유대인들은 총독과 세리를 통해 자신들을 탄압하고 수탈하는 로마 제국에 대해 제1차 유다-로마 전쟁을 일으켜 저항하였으나 베스파시아누스티투스는 이를 철저히 진압하고 성전을 파괴했다. 그러나 그들 땅에서 유대교를 믿도록 허용했다.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 전역에 살았으며 이슬람교가 성장하면서는 일부가 인도중국까지 진출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유대인 중 일부는 지중해 연안 외의 지역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의 후손인데 하자르인(Khazars), 이두매아인(Edomites), 에티오피아인, 아랍인 등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일이 많았다.

유대인의 분파

흔히 사용하는 아슈케나짐(Ashkenazim)와 세파라딤(Sephardim)의 구분은 종교적 차이와 민족적 차이를 다 포함한다. 어떤 학자들은 아슈케나짐 유대인들은 팔레스틴이나 유대교 전통을 따른 이들의 후손이며 세파라딤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식 유대교 전통을 따른 이들의 후손이라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유다 민족의 4대 분파는 다음과 같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소수 분파가 있다.

  • 예멘 유대인 (Yemenite Jews) - '테이마님(Teimanim)'이라고도 한다. 동방 유대인이었는데 지리적·사회적으로 다른 유대인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특이한 예배식과 의례가 발전하였다.
  • 베네 이스라엘 - 인도뭄바이(봄베이)에 살았다.
  • 코친 유대인 - 이들도 인도에 살았다.
  • 로마니오트 (Romaniotes) - 헬레니즘 시대부터 현재까지 발칸 반도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이다. 전 세계에 6천 명 정도 있다.

아슈케나짐은 전통적으로 이디시어를, 세파라딤은 라디노어(유다 포르투갈어)를 사용했다. 동방 유대인은 대부분 아랍어를 사용했으나 아람어, 페르시아어(파르시어)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스페인의 종교재판(Spanish Inquisition) 이후 세파라딤 유대인들은 흩어져 유럽에 이주, 아슈케나짐와 동화되거나 중동으로 이주, 동방 유대인들과 동화되었다.

오늘날 유대인의 80% 정도가 아슈케나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범 세파라딤계이다.

유대인 하위 집단에는 '그루짐(Gruzim)' 즉 카프카스 조지아 지방의 유대인, '유후림(Juhurim)' 즉 코카서스 동부 다게스탄의 산악 유대인, '마크레빔(Maghrebim)' 즉 북아프리카 유대인, '아바유다야(Abayudaya)' 즉 우간다 유대인 등이 있다. 그밖에도 러시아러시아 유대인,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중앙아시아 유대인, 싱가포르, 필리핀, 중국, 일본아시아유대인도 있다.

한편 헝가리계 유대인 역사학자 아서 쾨슬러와 일본 학자 우노마사미 등은 아슈케나짐이 인종적으로 셈족이 아닌 백인계 투르크족 하자르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에서 중세사 교수를 지낸 폴리악도 1944년에 <하자르 왕국과 유대교 개종>이란 연구논문을 발표하여 이런 주장에 동조했다. 이들이 하자르 멸망 후 동유럽·중앙유럽으로 흩어져 아슈케나짐이 되었다는 것이다. 보통 셈족 유대인들에게는 금발이나 푸른 눈이 없으나 아슈케나짐 중에는 백인과 비슷한 외모를 지닌 이들이 많은 이유라 한다. [3] 2005년 유럽 유전체 학술지에 따르면 최근 인류학과 유전학 연구의 성과로 아슈케나짐과 세파라딤을 비롯한 기타 유대인의 인종학적 차이가 미미하다는 것이 밝혀져 아서 쾨슬러 등이 주장한 아슈케나짐의 하자르 설은 비판을 받고 있다.[4]

세파라딤아슈케나짐 사이엔 갈등이 많은데, 세력으로나 영향면에서 아슈케나짐이 압도적이다. [3]

오늘날의 유대인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전 세계의 유대인 인구가 약 1천 8백만 명 정도였으나 히틀러가 집권하는 나치 독일홀로코스트로 약 1천만 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오늘날 전 세계 134개국에 약 1천 4백만 정도가 살고 있다. 미국에 약 580만 명, 이스라엘에 약 6백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그밖에 캐나다, 헝가리, 우크라이나, 프랑스, 아르헨티나, 러시아, 독일 등에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 각각 나치 독일홀로코스트를 피해 도망친 유대인의 후손이며 소련

경우 자국으로 피해서 들어온 유대인들을 거의 대한민국 근처까지 도피시켰는데 그 일대에 유대인 자치구가 형성되었다. 훗날 나치 독일이 패망하자 유대인 자치구에 살던 유대인 대부분이 독일로 되돌아갔다. 유럽의 유대인 인구는 240만 명, 라틴 아메리카는 약 5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1948년 5월 14일 건국된 이스라엘 공화국은 유대인이면 누구나 시민권을 발급할 수 있게 허용한다. 이는 귀환법 또는 귀향법(the Law of Return)이라고 한다. 이 법률상 조부모 중 유대인이 있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 모두 유대인으로 간주된다. 또 유대인 이민자들과 가족관계인 비(非)유대인들에게도 이스라엘 이민을 허용한다. 이스라엘의 귀환법이 유대교에서 전통적으로 따르는 유대인의 정의보다 일부러 더 광범위하게 정의한 이유는 유대인의 친척들도 외부에서는 유대인으로 여겨 반유대주의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대인이 다수민족인 국가는 이스라엘뿐이다. 유럽에서 유대인이 가장 많은 곳은 프랑스로, 그 다음이 영국이다. 그 외, 독일, 헝가리, 네덜란드 등이며[5], 유럽에서 유대인 인구가 가장 빨리 증가하고 있는 국가는 독일과 동유럽으로 현재 많은 유대인이 많이 이주해 온다고 한다.

중국의 유대인

중국 송나라 시대에 유대인들이 서역을 경유하여 중국에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그들이 사용한 성씨로는 리(李), 장(张), 안(俺), 진(金)씨 등이 있다고 한다. 이들의 일부가 고려로 들어오기도 했다. 북송카이펑(开封)에 거주하여 카이펑유대인(开封犹大人) 또는 이츠러예(一赐乐业, 일사락업)인(人)으로 불렸다. 이츠러예(一赐乐业)는 북송 황제가 하사한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음역이다. 중국에 진출한 이슬람교무슬림처럼 유대인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종교신앙으로 인해,북송시대의 중국인들은 이 두 집단 모두를 고교(古教), 남모회회(藍帽回回) 등으로 불렀으며, 유대인을 죽흘(竹忽), 주오(主吾), 주호득(朱乎得), 축호(祝虎), 주혁(珠赫) 등으로 불렀다. 북송 카이펑이츠러예인들은 한족과 같이 과거시험을 칠 수 있었으며, 명(明)나라가 건국되자,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색목인(色目人), 회회인(回回人)은 본족내 통혼(本族内通婚)을 불허함을 명문으로 규정하였다.

관련 항목

각주

  1. 2013년 조사. (영어) [1], World Jewish Population, 2013
  2. 유대인의 유래 Jews, Origin, Etymology
  3. 세계사의 주역 유대인, 박재선 지음, 모아드림, 1999년
  4. 2005년 조사. (영어) [2], Y chromosome evidence for a founder effect in Ashkenazi Jews
  5. World Jewish Population (보고서). Berman Jewish Databank. 2015년. 6p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