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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돈스코이 (장갑순양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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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논란 ==
[[File:AdmiralNakhimov1899.jpg|thumb|러시아 해군의 [[아드마랄 나키모프]] 순양함]]
2018년 7월 17일, 신일그룹이 "지난 15일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서 1.3㎞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에 금화와 금괴 5000상자 등 현재시세 150조원 가치의 200톤의 보물이 실려 있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 |제목=‘보물선’ 돈스코이호 인양한다는데… 첫발견자 소유권 기술력 등 곳곳 암초 |url=http://www.segye.com/newsView/20180718005449 |출판사=세계일보 |저자=안승진 |날짜=2018-07-19 |확인날짜=2018-07-19 }}</ref> 그러나 동아건설은 자신들이 먼저 발견했으며, 500Kg 정도로 현재시세 220억에 해당하는 양만 있다고 주장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동아건설 '돈스코이' 권리 주장…"220억원 가치 금 추정"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7/19/0200000000AKR20180719049000008.HTML |출판사=연합뉴스 |저자1=윤선희 |저자2=전명훈 |날짜=2018-07-19 |확인날짜=2018-07-19 }}</ref>
 
돈스코이호 침몰 전날인 1905년 5월 28일, 대마도 근해에 침몰한 [[아드마랄 나키모프]] 순양함에 보물이 실려 있었다. [[:en:Russian armoured cruiser Admiral Nakhimov]] 참조. 군자금과 일본 정벌 후 쓸 자금으로 약 24조원에 달하는 금화와 백금괴 등 보물로서, [[러일전쟁]] 후 전쟁포로로 잡혀 있다 돌아온 [[발틱 함대]]의 한 사령관이 남겼다는 기록에 근거한다. [[아드마랄 나키모프]]는 대마도에서 침몰 직전 보물을 돈스코이호로 옮겼다.
 
1999년 김대중 정부의 해양수산부가 정부 주도의 돈스코이호 발굴작업을 벌였다. 동아건설과 해양수산부는 1999년 8월 부터 2004년 12월까지 4단계의 돈스코이호 발굴작업을 벌였다. 2000년 8월부터 2001년 3월까지 [[노무현]]이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으며, 바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즉 노무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정부주도로 추진했던 보물선 찾기 사업이다.<ref>죽지 않고 또 돌아온 돈스코이 소동, 경향신문, 2018-07-22</ref>
 
돈스코이호의 24조원 어치 군자금은 현재 시세로 150조원에 해당한다는 것인데, 일본이 1980년대 탐사를 하다가, 러시아 정부가 보물의 소유권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탐사가 중단된 적이 있다. 김대중 정부는 러시아와 매우 친하게 많은 사업을 했으며, 1999년에는 러시아가 ICBM 완제품 까지 한국 국정원에 판매했다는 시절이다. 즉,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군함의 군자금인 보물을, 러시아가 국제법 등의 소멸시효와 무관하게, 강력하게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이 정부 주도로 보물선 탐사를 벌였다는 것은, 러시아 정부의 동의가 없이는 힘든 일이다. 푸틴은 1999년 8월에 러시아 총리가 되었다. 한국 정부 주도의 돈스코이호 발굴사업 시작 시기와 같다.
 
법률은 권력에 복종하며, 권력자의 폭력을 학문화 한 것이 법학이라고 알려져 있다. 즉, 세계적인 군사 강대국인 러시아가, 법률의 소멸시효 등을 무시하고, 내 보물이라서 내놓지 않으면 몇배의 보복을 하겠다고 하면, 법률은 아무 의미가 없다.
 
동아건설은 상장폐지 후에도 해양연구원과 탐사를 계속해 2003년 6월 울릉도 저동 앞바다 약 2km 지점의 수심 400여m에서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침몰선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채권단 반대로 인양에는 나서지 못했다.
 
1999년 동아건설은 해양수산부의 [[한국해양연구소]]에 돈스코이호 발굴을 의뢰했다. 한국해양연구소는 3년 동안 보물선을 찾아다녔지만, 실패했다. 해저탐사 전문업체에 외부의뢰를 하여, 2003년 5월 찾아냈지만, 배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으며, 2004년 정부가 동아건설에 허가한 발굴기간이 종료한 이후에는 그곳을 탐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2000년대 초 돈스코이호 탐사 때 정부와 동아건설에 선박 인양에 따른 국제법상 문제의 자문을 제공했던 [[이석용]] 한남대 법대 명예교수는 "([[러일전쟁]] 때) 금괴나 금화가 중요 가치저장 수단이었을 테니 필요한 돈은 갖고 다닌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발틱 함대]]의 철갑 순양함은 유럽의 [[발트해]]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희망봉]]을 거쳐서, 지구를 거의 한바퀴 도는 장거리 항해를 하여 대마도에서 일본 해군과 함포전을 하여 1차 패배하고, 울릉도 독도에서 2차 교전하여 패배했다.
 
그러나 돈스코이호가 침몰될 때, 승무원들이 섬에 모두 상륙, 일본 해군에 체포되어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일본 해군 몰래 독도나 울릉도 모처에 보물을 숨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람이 사는 울릉도 보다는 오히려 무인도인 독도 등에 보물을 숨겼을 가능성도, 근거는 전혀 없지만, 충분히 추측해 볼 수 있다. 울릉도 주변과 독도 주변에는 사람이 전혀 접근하지 않는 작은 암초도 매우 많이 있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