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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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등록]]의 [[1812년]] [[2월]] [[강화부]]로 파견된 금부도사 심노숭(沈魯崇)이 조정에 보고한 보고서에 의하연 그는 당시 만32세였으며, 당시 미혼이었다 한다. 한때 그는 [[풍계군]]과도 동일인물로도 추정되었으나 [[풍계군]]은 선원록 선원보략에 의하면 [[1783년생]] 이라 한다.
 
[[1801년]](순조 1) [[3월]] 적모 [[상산군부인 송씨]]와 적형수 [[평산군부인 신씨 (상계군)|평산군부인 신씨]]가 [[천주교]]에 귀의한 일로 사사당한 뒤 아버지 [[은언군]] 이인도 [[5월 29일]] 사사령을 받고 [[6월 30일]] 사사되었다. 그는 [[천극죄인]]의 신분이 되어 형제인 [[이성득 (조선 왕족)|이성득]], [[풍계군|이당]], [[전계대원군|이광]] 등과 함께 [[강화도]]의 한 민가에 감금되었다.
 
[[1805년]] [[8월 27일]] [[강화도]]에 이철득, 이성득, 이쾌득이 감금당한 집에 불이 나 [[강화부]]유수 오재소(吳載紹)가 조정에 장계를 올려 보고하였다.<ref>승정원일기 1898권 1805년(순조 5년, 청 가경 10년) 8월 29일 기유 19번째 기사</ref>
 
[[전산군부인 이씨]]의 묘비문에 의하면 전산군부인 이씨가 낳은 첫 아들은 요절하였다 하며<ref>전계군의 친형, 김포시 통진면 마송리 전산군부인 이씨 묘비문</ref>, 그가 [[이성득]]의 동복 친동생인지 혹은 [[전계대원군]]의 동복 친형인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1812년 무렵까지는 생존해 있었는데 덩시까지도 그는 미혼이었다. [[1813년]] 이후로 기록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망 장소와 사망 원인은 미상이며 묘소의 위치도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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