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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선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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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
국왕 선거의 실시는 1386년 [[리투아니아]] [[대공]] 요가일라(Jogaila, [[요가일라브와디스와프 2세]](Jogaila)을 폴란드 제2왕조의 시조로써 폴란드 왕에 선출된 것이 첫 시초였다. 이 선거제 원리는 2세기 반에 걸쳐 계속된 [[야기에우오 왕조]]의 통치기간에도 영향을 미쳤으나, 새로운 통치자를 승인하는 정도의 의미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1572년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Zygmunt II August)가 후사를 남기지 않고 죽었기 때문에 [[야기에우오 왕조]]는 단절되었다. [[공위 기간]](interregnum)이 시작되자 연방의 존속에 불안을 느낀 정치계급([[슐라흐타]])은 새로운 왕을 미정한 채 아래의 약속에 합의했다. 즉, 주권을 국교인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석 대주교에게 넘겨주고, ''인테레크스''(interrex, 라틴어: 공위기간의 섭정)이 되는 것. 귀족의 조직인 [[콘페데라치아]]({{llang|pl|konfederacja}}, [[연맹]])가 각 지역의 통치 임무를 인수받는 것. 그리고 1573년 성립된 "[[바르샤바 연맹]]"(Warsaw Confederation) 협약에 의해 국내의 다종교의 공존을 인정해 평화를 지키는 것 등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결정은 차기 국왕을 선거로 선택하고, 최종적으로 [[세임]](sejm konwokacyjny)에 의해 승인하는 것이었다. 선거의 도입은 [[대법관]](great chancellor)이며 [[헤트만]](hetman)인 [[얀 자모이스키]](Jan Zamoyski)를 중심으로 한 폴란드 남부 귀족들의 주도로 이루어져 선거권은 투표를 바라는 모든 남성 [[슐라흐타]](귀족, 참정권자)에 주어지는 것으로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