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교황 마르첼로 2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교황==
[[File:Tomb of Marcellus II.jpg|thumb|right|210px|[[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 있는 교황 마르첼로 2세의 무덤]]
마르첼로 2세는 교회 쇄신 열정이 대단하여 교회 활동의 많은 요소를 개혁하고자 했지만, 체질이 허약한 데다가 콘클라베와 이후 주교 서임식 및 교황 대관식을 치르면서 피로가 누적되고 공무에 대한 깊은 불안감, [[성주간]]과 [[부활절]] 행사를 무리하게 집전하고자 했기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었다.<ref>Panvinio, "Life of Marcellus II", 430: Quum satis (ut dixi) firmus non esset viribus, & propterea anno superiori diu etiam febre laborasset, corpore quoque tam comitiorum incommodis, quam obeundis publicis muneribus, quae vetere Christiani populi instituto, annuis Dominici Cruciatus [Good Friday] & Resurrectionis [Easter] diebus per Maximum Pontificem fieri consuerunt, fatigato, duodecimo pontificatus die gravius e pituita, & non levi febre decubuit.</ref> 결국 그는 곧 몸져 누웠다.
 
그는 피까지 흘렸을 정도로 상태가 위독했으나 서서히 기력을 되찾아갔다. 추기경들과의 알현 자리에서 그는 교황 선출 조건으로 더이상 추기경들을 서임하지 않겠다고 보장한다는 문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받았으나, 그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며 거부하였다. 프랑스와 스페인 대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두 나라 군주들이 서로 합의한 평화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만약 이를 어길 시 교황 대사와 사절들을 보낼 뿐만 아니라 교황인 자신이 직접 그들에게 가서 꾸짖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르첼로 2세는 재임하는 동안 카를 5세와 잉글랜드의 [[메리 1세]], 레지널드 폴 추기경 등에게 편지를 썼다. 특히 레지널드 폴에게는 그가 잉글랜드에서 교황 특사 자격을 갖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ref>Paul Friedmann (editor), ''Les dépêches de Giovanni Michiel, Ambassadeur de Venise en Angleterre pendent les années 1554–1557'' (Venice 1869), p. 36, dispatch of 6 May 1555. This is confirmed by Sir John Masone, the English ambassador in Bruxelles: William B. Turnbull (editor), ''Calendar of State Papers, Foreign Series, of the Reign of Mary, 1553–1558'' (London 1861), p. 164 #348 (26 April 1555).</ref> 스페인 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그가 한 사람을 죽인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하자, 교황은 자신의 치세를 살인 면제로 시작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면서 법정에 가서 재판을 받고 판결에 따르라고 권고하였다.
 
마르첼로 2세는 자신의 일가가 로마에 몰려오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귀족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복 형제 알레산드로의 아들들이며 자기 조카들인 리카르도와 헤레니오가 로마에 와서 자신의 후원을 받으며 사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바티칸의 지출을 줄이는 정책을 즉각적으로 단행하였다. 4월 28일에 교황은 우르비노 공작을 만났으며, 4월 29일에는 페라라 공작을 만났다. 또한 파르네세, 데스테, 루이 데 기즈, 아스카니오 스포르차 등 프랑스파를 대표하는 네 명의 추기경들과도 만남을 가졌다. 그날 밤 마르첼로 2세는 잠자는데 불편함을 호소하였다. 다음날 30일 아침, 그는 뇌졸중으로 혼수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그날 밤에 그는 교황으로 선출된지 22일 만에 선종하였다.<ref name="Priere"/>
== 생애 ==
 
마르첼로 2세는 안젤로 마사렐리를 공의회의 사무 총장으로 임명하여 전임자 율리오 3세의 개혁안을 신속히 출판하게 하였다. 외교는 중립적인 정책으로 일관하였고 [[예수회]]를 좋아하여 그 수도회 [[신부 (기독교)|신부]] 중의 하나를 자신의 고해 신부로 삼기도 하였다. 마르첼로 2세는 교회 쇄신 열성이 대단하였지만 22일만에 선종하였다. 마르첼로 2세는 [[세례명]]을 교황의 이름으로 사용한 마지막 교황이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