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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정보
{{유형문화재 정보|소재_국가={{국기|대한민국}}|유형=[[대한민국의 중요민속문화재 (제101호 ~ 제200호)|중요민속자료]]|이름=영양 서석지<br />(英陽 瑞石池)<br>Yeongyang Seoseokji|그림=|지정_번호=108|소재지=[[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394-2번지|소유자=정경정|제작시기=[[조선]]|비고=|지정연월일=[[1979년]] [[12월 31일]]}}
| 이름 = 영양 서석지<br />(英陽 瑞石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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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108
| 지정 = [[1979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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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394-2번지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 = 정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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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적 =
| 수량 = 일곽
| 전승지 =
| 전승자 =
| 지도 = 대한민국
| 띄움 =
| 꼬리표 = 영양 서석지
| 너비 =
| 대체지도 =
| 설명 =
| 위도도 = 36.611672
| 경도도 = 129.069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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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 = 18,01080000,37
}}
 
'''영양 서석지'''(英陽 瑞石池)는 석문(石門) [[정영방]] 선생이 1613년(광해군 5년)에 축조한 연못과 정자이다. 1979년 12월 31일 [[경상북도]]대한민국의 [[영양군중요민속문화재]] 입암면 연당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못과 경정(敬亭), 주일재(主一齋), 서하헌(棲霞軒), 수직사(守直舍)로 구성되어제108호로 있다지정되었다.
 
== 개요 ==
정영방이 광해군 5년(1613)에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연못과 정자이다. 자양산의 남쪽 완만한 기슭에 위치한 연못을 중심으로 경정·주일재·수직사·남문 등의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석문(石門) 정영방은 29세가 되던 해인 1605년(선조 38)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이 즉위한 이후 실정(失政)이 계속되고 당파싸움이 심해지자 벼슬을 단념하고 진성(眞城) 임천(臨川)(현 영양군 입압면 연당리)으로 들어갔다. 이곳에 연못을 판 것을 서석지(瑞石池)라고 이름을 지었으며, 정자인 경정(敬亭), 서재인 주일재(主一齋), 그리고 서하헌(棲霞軒), 수직사(守直舍) 등을 함께 축조하였다. 연못의 북변에는 주일재(主一齋) 앞으로 연못쪽으로 돌출된 석단을 만들어 사우단(四友壇)으로 이름을 지었고, 이곳에 소나무(松), 대나무(竹), 매화(梅), 국화(菊)를 심었다 한다.
 
경정은 넓은 대청과 방 2개로 되어있는 큰 정자이며, 주일재는 ‘운서헌’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는 서재이다. 주일재 앞에는 연못쪽으로 돌출한 석단인 '사우단'을 만들고 소나무·대나무·매화·국화를 심었다.
 
연못은 사우단을 감싸는 'U'자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연못의 동북쪽 귀퉁이에는 산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도랑을 만들었고, 반대편의 서남쪽 귀퉁이에는 물이 흘러나가는 도랑을 만들었다. 각양각색의 형태로 솟아있는 연못 안의 크고 작은 돌을 '서석군'이라 하는데, 이 연못의 이름은 서석군에서 유래하였다. 돌 하나하나에 모두 이름이 있어 정영방 선생의 학문과 인생관은 물론, 은거생활의 이상적 경지와 자연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심취하는 심성을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 같이 보기 ==
 
== 바깥 고리 ==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문화재청 문화재|18,01080000,37 |영양 서석지: 문화재청]}}
 
[[분류: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분류:영양군의 문화재|서석지]]
[[분류:조선의 건축물]]
[[분류:연못]]
[[분류:유적]]
[[분류:조선시대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