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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용 (1870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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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Youngseongun.jpg|thumb|right|200px|영선군 이준용 신도비]]
'''영선군 이준용'''(永宣君 李埈鎔, [[1870년]] [[7월 23일]]([[음력 6월 25일]]) ~ [[1917년]] [[3월 22일]] (양력))은 [[조선]]의 왕족, 문신, 군인이자군인, 친일파이자, [[대한제국]]의 황족, 군인, 교육인으로, [[대한제국 고종|고종황제]]의 형 흥친왕 [[이재면]]의 아들이자, [[흥선대원군]]의 적장손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로 자(字)는 경극(景極), 호는 석정(石庭) 또는 송정(松亭). 별칭은 무루공자(無淚公子). 영선군(永宣君)의 작위를 받았으며, [[조선]]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조카이자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초기에는 반일적 성향이었으나, 만년에는 [[신궁봉경회]] 총재를 지냈다.
 
[[1886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상보국숭록대부]]에 이르렀다.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잠재적 대안자이자 경쟁자였으며, 할아버지 [[흥선대원군]]은 [[대한제국 고종|고종]]을 폐위시키고 [[완은군]], [[흥친왕]]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기도를 하였으나 실패했다. 이후 대원군은 그에게 기대를 걸고,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모두 실패했다. 김홍집 내각의 [[내부]][[협판]]·통위사 등에 등용되었고, [[보국숭록대부]]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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