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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시절==
===[[한화 이글스]] 시절===
입단 당시 등번호는 15번이었으나, [[한화 이글스]]에서 15번을 달고 오랜 기간 활동했던 [[투수]] [[구대성]]이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뉴욕 메츠]]에서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99번으로 변경되었다. 그 때 그는 별 생각 없이 99번으로 변경했으나, 이후에는 소속 팀의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재현을 위해 99번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재현하지 못했다고 한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794762.htm?imgPath=baseball/pro/2010/0210/ 류현진, 등번호 '99번' 선택 왜?] - 스포츠서울</ref>
[[2006년]] 프로 야구 데뷔 첫 해 데뷔하자마자 다승왕, 최다탈삼진, 평균자책 부분 1위로 투수 3관왕에 오르며 [[한국 프로 야구 신인왕|신인왕]]과 [[한국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최우수 선수상]]을 프로야구 사상최초로 동시에 석권했다. 신인이라고 하기엔 믿기 힘든 뛰어난 활약으로 '괴물'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데뷔 첫 해 [[한국시리즈]]에도 등판하였다.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2006년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에 선출되기도 했다.
 
[[2007년]]에는 2년차 징크스를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17승을 거두고 2년연속 최다탈삼진 타이틀을 획득하는 등 여전히 압도적인 구위를 보였다.
 
[[2008년 하계 올림픽|2008년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 대표]]로 참가해 예선전인 [[캐나다]]전과 결승전인 [[쿠바]]전에 선발 등판했다. [[캐나다]]전 완봉승<ref>[http://www.yonhapnews.co.kr/sports/2008/08/15/1001000000AKR20080815083100007.HTML <올림픽> 캐나다 전 완봉투 류현진, 역시 에이스] 《동아이로》, 2008년 8월 15일 작성</ref> 을 포함, 17 1/3 이닝을 던져 2승0패, 평균 자책 1.04, 13탈삼진의 뛰어난 성적으로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며 병역도 해결하였다.<ref>[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306416.html 김양희, '류현진, 김광현 경쟁하며 쑥쑥 크네'] 한겨레신문 기사, 2008년 8월 25일</ref>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했다. [[2009년]] [[3월 6일]] 벌어진 [[아시아]] 라운드 첫 경기 [[중화민국|대만]]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3이닝을 1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승리를 거두었다.<ref>[http://spn.edaily.co.kr/sports//newsRead.asp?sub_cd=EB21&newsid=01426806589620696&DirCode=0020201 류현진 "타선 폭발, 박경완 선배 리드 덕에 호투"] 《이데일리》, 2009년 3월 6일 작성</ref> 류현진은 이 대회에서 주로 중간계투로 출전해 1승0패 방어율2.57을 기록하며 WBC준우승에 기여하였다.
 
[[2010년]] 정규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 (야구)|트리플 크라운]]이 유력할 정도로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지만 시즌 막판에 부상을 당하며 이탈하고 만다. 결국 다승왕을 구원으로 1승을 추가한 [[김광현 (야구 선수)|김광현]]에게 내주며 아쉽게도 2관왕에 머물렀다. 그렇지만 스포츠토토 올해의 투수상, 조아제약 최고 투수상, 골든글러브 상, 최다탈삼진 상, 최우수 평균자책점 상, 한경기 정규이닝 최다탈삼진 상등 수많은 상을 획득하며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투수임을 입증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로도 출전하였으며 [[중화민국|대만]]과의 결승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철벽 마운드를 구축,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공헌했다.
 
[[2011년]] 개인통산 1000탈삼진을 달성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시즌 도중 이탈하며 공백이 있었다.
 
[[2012년]] 류현진은 불운한 한 해를 보냈다. [[한화 이글스]] 타자들의 심각할 정도의 부진과 야수들의 형편없는 수비로 류현진을 제외한 모든 한화 선수들은 큰 질타를 받았다. 10승을 위해 등판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도 홀로 10이닝을 책임지며 7회 초, [[강정호]]에게 맞은 솔로홈런 이외에 별다른 실점없이 1실점으로 호투하였다. 그럼에도 노 디시전으로 경기가 마무리 되어 결국 류현진은 시즌 9승 9패로 두자리 수 승리에 실패해 데뷔 이래 처음으로 10승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최하위를 전전하는 팀 사정에도 불구하고 많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구단 스카우트들이 류현진의 선발 등판 경기를 보기 위해 매경기를 방문했다. 비록 류현진은 통산 100승, 시즌 10승을 달성하지 못한채로 2012 시즌을 마감했지만 6년 만에 200K대의 탈삼진왕이 되었고 [[최동원]], [[선동열]]에 이어 시즌 200탈삼진 이상을 2번 이상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시즌 이후에는 구단의 동의하에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 리그]] 진출을 시도했다. [[11월 9일]]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포스팅 시스템]] 기간이 종료된 결과 2573만7737달러33센트(한화 약 279억8978만원)의 포스팅 응찰액을 받았으며<ref>[http://osen.mt.co.kr/article/G1109497509 '2573만 달러 초대박' 한화, 류현진 MLB 포스팅 수용] 《OSEN》, 2012년 11월 10일</ref> 최고 금액 입찰팀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밝혀졌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211110927152226&ext=na '류현진 합류' 다저스, 좌완 트로이카 뜬다] 《마이데일리》, 2012년 11월 11일</ref> [[12월 10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협상 끝에 계약 기간 6년 동안 총액 36000만달러(한화 약 390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하였다.
 
==미국 프로야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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