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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왕후 박씨'''(思道王后 朴氏, ? ~ [[614년]] 2월)는 신라 [[진흥왕]]의 왕후로, [[동륜태자]]와 [[진지왕]]의 어머니이다. 후에 출가하여 [[불교]] 승려로서의 법명은 '''묘법'''(妙法)이다.
 
== 생애 ==
사도왕후 박씨는 모량리 각간 영실의 딸로 일찍이 [[진흥왕]]과 혼인하였다. [[진흥왕]]과의 사이에서 [[동륜태자|김동륜]](金銅輪)과 [[진지왕|김사륜]](金舍輪), 구륜공을김구륜(金仇輪)을 낳았다. [[진흥왕]]이 말년에 출가하여 [[영흥사]](永興寺)에서 불도를 닦았는데, 사도왕후도 이를 본받아 출가하였다. [[묘법]](妙法)을 법명으로 받아 [[진흥왕]] 사후에도 계속 영흥사에 머물렀으며, [[614년]](진평왕 36년) 2월에 영흥사에서 사망하였다.
 
한편 학계에서 [[위서 (문헌학)|위서]]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따르면, 사도왕후는 영실과 [[옥진궁주]]의 딸이라고 한다. 7세에 [[진흥왕]]과 결혼하여 매우 금슬이 좋았다. [[지소태후]]가 [[숙명공주 (신라)|숙명공주]]를 [[진흥왕]]과 결혼시켜 [[정숙]](貞肅)을 낳았고, 그를 태자로 삼았으나 숙명궁주가 [[이화랑]]과 사통하여 도망쳤기 때문에 정숙은 폐위되고 사도왕후의 아들 동륜이 태자가 될 수 있었다. 사도왕후는 [[대원신통]]으로 왕위를 잇기 위해 아들 [[동륜]]에게 조카 [[미실]]을 몰래 짝지워 주었으나 [[미실]]이 [[진흥왕]]을 받들게 되면서 실패하였다고 한다. [[576년]], [[진흥왕]]이 사망하자 사도왕후는 이를 감추고 둘째 아들 [[진지왕]]으로 즉위시켜 [[미실]]을 왕후로 삼아 대원신통을 이으려 하였는데, [[진지왕]]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지자 [[노리부]]를 통하여 [[진지왕]]을 폐위시켰다. [[진평왕]]의 즉위 초기에는 태상태후(太上太后)의 신분으로 [[579년]]부터 [[584년]]까지 [[섭정]]을 하였고, [[미실]]은 [[새주]](璽主)가 되었으며, [[이찬]](伊湌)이었던 [[노리부]]는 [[상대등]]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