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즈 다다요시 (184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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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29일 (금) 00:04 판

시마즈 다다요시
島津 忠義
시마즈 다다요시
시마즈 다다요시
제29대 시마즈 종가 당주
1858년 ~ 1897년
무사 정보
시대 에도 시대 후기 ~ 메이지 시대
출생 1840년 5월 22일
사망 1897년 12월 26일
개명 壮之助 (아명)
忠徳 (첫 이름)
茂久
다다요시
별명 마타지로(통칭)
신호 照国大明神
막부 에도 막부
관위 종일위, 참의
씨족 시마즈 씨(島津氏)
부모 아버지: 시마즈 히사미쓰
양부: 시마즈 나리아키라
자녀 다다시게, 다다히로
묘소 가고시마 시 이케노우에 초

시마즈 다다요시(島津忠義)는 에도 시대 후기의 다이묘이자 메이지 시대화족이다. 사쓰마 번의 제12대 번주로 시마즈 씨 제29대 당주이다. 벼슬은 종1위 참의, 훈등은 훈1등, 공작이다.

아명은 ‘소노스케’(壮之助), 통칭 ‘마타지로’(又次郎)이다. 원복 후 첫 이름은 타다노리(忠徳)였지만, 번주 재임 중은 ‘모치히사’(茂久)로 자칭했다. 또한 다다요시(忠義)는 메이지 유신1868년(게이오 4년) 1월 16일에 개명한 이름이다.

생애

시마즈 씨의 분가인 에치젠 가의 당주 시마즈 히사미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백부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양자가 되어, 1858년(안세이 5년) 나리아키라 사후 그 유언에 따라 호적을 잇게 되었다. 유언은 나리아키라의 아들 아키라마루(哲丸)가 어리기 때문에 임시로 입양한 형태였지만, 아키라마루도 어려서 사망했다. 그러나 번정의 실권은 당초 조부 시마즈 나리오키(島津斉興)와 후견인이 된 아버지 시마즈 히사미쓰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등에게 장악되어 다다요시 자신은 젊은이라고 하여도 주체성을 발휘하지 못했다.(그러나 다다요시가 실권을 되찾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사쓰마 번이 일치단결하여 막부 타도 운동을 하는 데 기여한 측면도 있었다)

같이 보기

전임
시마즈 나리아키라
제29대 시마즈 가문 당주
1858년 ~ 1897년
후임
시마즈 다다시게
전임
시마즈 나리아키라
제12대 사쓰마 번 번주
1858년 ~ 1869년
후임
판적봉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