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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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이름 = Alessandro Del Pi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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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9일 (일) 20:14 판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파일:Ale2.jpg
개인 정보
본명 Alessandro Del Piero
출생일 1974년 11월 9일(1974-11-09)(49세)
출생지 이탈리아 코넬리아노
174cm
포지션 세컨드 스트라이커
청소년 구단 기록
1982-1988
1988-1993
1993-1994
산벤데미아노
칼초 파도바
유벤투스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91-1993
1993-2012
2012-2014
2014-
칼초 파도바
유벤투스
시드니 FC
델리 다이너모스
00014 000(1)
00513 0(208)
00048 00(24)
00010 000(1)
국가대표팀 기록
1993-1996
1995-2008
이탈리아 U-21
이탈리아
0110(3)
0910(27)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또한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14년 12월 9일 기준임.
‡ 국가대표팀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14년 1월 27일 기준임.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이탈리아어: Alessandro Del Piero, Ufficiale OMRI, 1974년 11월 9일, 이탈리아 코넬리아노 ~ )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다.

델 피에로는 19년간 유벤투스 FC에서 뛰었으며 또한 유벤투스의 주장도 하면서 여러 클럽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델 피에로는 파올로 로시, 로베르토 바조와 함께 이탈리아 축구계의 판타지스타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는 FIFA 창립 10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펠레가 선정한 FIFA 100에 선정되었다.

2011-12 시즌을 끝으로 유벤투스와 계약이 만료되어 팀을 떠나게 되었다. 2012년 5월 20일 나폴리와의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이 그가 유벤투스에서 뛴 마지막 경기다.

경력

유,청소년시절

델 피에로는 7세가 되던 해에 AC 산 벤데미아노의 유소년 클럽에 입단했다. 하지만 경기에 나서는 것을 간절히 원한 그는 골키퍼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의 공격적재능을 알아본 형의 권유로 공격수로 나서게 되었고 91년 세리에 B칼초 파도바로 이적하면서 프로선수로의 첫발을 딛게 된다.

프로시절

93년 19세의 나이로 유벤투스로 이적하게 되었고 파르마와의 세리에 A 데뷔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새로운 판타지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또한 이 시즌 유벤투스는 8년만에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95년 로베르토 바조유벤투스에서 방출당하면서 팀내에서 주전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98-99시즌 세리에 A의 약물 파동이 일어나면서 폼이 떨어진 그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지네딘 지단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였으나, 그의 대체자로 들어온 파벨 네드베트와 함께 01-02시즌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2006년 승부조작으로 세리에 B로 강등당한 유벤투스에 남은 그는 1년 만에 재승격을 이끌었다. 꾸준한 활약을 이어온 그였으나 11-12시즌의 소속팀의 무패 우승을 마지막으로 그는 호주 A-리그시드니 FC로 이적하였다. 그는 마라도나, 호나우지뉴, 이니에스타와 함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레알 마드리드 팬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은 선수 중 한명이다.

국가대표팀 경력

델 피에로는 유로 96 대회에서 첫 메이저 대회를 치렀으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이탈리아의 핵심 선수로 자리잡는다. 이후 1998년 FIFA 월드컵에는 로베르토 바조와 번갈아가면서 주전으로 기용됐으며, 다음 유로 2000 대회에서는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스웨덴과의 조별리그에서는 그 경기의 결승골이자 자신의 국제 대회 첫 골을 넣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 FIFA 월드컵에서는 멕시코와의 최종전에서 동점골을 넣기도 했다. 특히 이 대회에서는 그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판론이 일었는데, 그 문제는 대한민국과의 16강전에서 불거졌다. 당시 감독이었던 트라파토니비에리의 골로 앞서가자, 후반전에는 이를 지켜내려는 듯이 델 피에로를 빼고 가투소 등 수비형 미드필더들을 투입했는데, 경기를 창조적으로 이끌어나갈 선수가 부족해 막판에 득점을 허용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리고 유로 2004에서는 스웨덴, 덴마크와 1승 2무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차에서 밀리면서 탈락했다. 다음 2006년 FIFA 월드컵에서는 주로 조커로 기용되었고,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인저리 타임에 질라르디노의 패스를 받아 추가 득점을 기록했다. 이 골은 이 대회에서 가장 늦은 시간에 터진 골이기도 했다. 그리고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도 교체로 나갔고, 승부차기에서 4번째 키커로 나서 슛을 성공시켰고, 마지막 키커로 나섰던 그로소가 성공하면서 이탈리아는 4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다음 유로 2008 대회에서는 부상으로 대회에 나가지 못한 파비오 칸나바로를 대신해 주장으로 출전했지만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고 대표팀은 스페인과의 16강전 승부차기에서 패하고 말았고, 델 피에로의 국가대표 생활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플레이 스타일

처진 스트라이커에 능숙하며 중거리 슛팅, 킬패스 등을 통한 공격 지원을 하며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에서 정확도가 높은 슛팅을 구사하는데 이 위치를 델 피에로 존이라고 하기도 했다.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수비 가담 또한 많이 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게임의 승패를 결정짓는 골을 많이 넣는다고 해서 그를 판타지스타라고 불렀다.

기타

델 피에로는 2000년 이탈리아 공화국 Cavaliere 훈장 (5등급)을 받았고,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한 공헌으로 Ufficiale 훈장 (4등급)을 추가로 받았다.

수상

이탈리아 유벤투스


이탈리아


개인

훈장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