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수군통제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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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좌수영 ===
=== 경상좌수영 ===
경상좌수영은 경상좌도수군 절도사의 진영으로, 주로 왜구의 침입경로인 낙동강에서 경주지역까지의 수로 방어를 담당하였다. 최초로 설치된 곳은 부산 동래현이었고, 태종 때 울산 개운포로 이전하였다가, 1592년 동래 남촌으로 옮겨갔다. 1635년 인조 13년에는 최초의 장소인 감만이포로 옮겼다가 [[왜관]]과 가깝다는 이유로 1652년 효종 3년에 다시 동래 남촌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경상좌수영은 경상좌도수군 절도사의 진영으로, 주로 왜구의 침입경로인 낙동강에서 경주지역까지의 수로 방어를 담당하였다. 최초로 설치된 곳은 부산 동래현이었고, 태종 때 울산 개운포로 이전하였다가, 1592년 동래 남촌으로 옮겨갔다. 1635년 인조 13년에는 최초의 장소인 감만이포로 옮겼다가 [[왜관]]과 가깝다는 이유로 1652년 효종 3년에 다시 동래 남촌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임란 당시에는 [[박홍]]이 맡았지만 일본군에 의해 와해되면서 임란이 끝날 때까지 경상좌수영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전 옥포만호 [[이운룡]]이 맡았으나 위치상 삼도 수군 본영이 있던 고금도와는 단절되어 경상좌수군은 당시 경상도 지역에서 육전에 참가하였다.


=== 전라좌수영 ===
=== 전라좌수영 ===

2015년 9월 19일 (토) 13:40 판

삼도 수군 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수군(水軍)을 총지휘하는 조선시대의 관직으로 종2품이다. 지휘 관청과 해군 기지로 삼도수군통제영을 두었다.

하삼도

하삼도(下三道)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일컫는 말이다. 이 지명은 1377년 6월에 쓰여진 《고려사》 133권 열전에도 등장한다.[1] 따라서 그 이전에도 쓰였던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통제사

임진왜란이 발발한 다음해인 1593년에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당시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였던 이순신이 임명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오늘날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종2품 관직으로 법제화되었다. 1895년 고종 32년에 폐지될 때까지 조선 수군의 최고 통치 관청으로서 기능을 하였다.[2]

역대 삼도수군통제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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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삼도 수군

조선의 수군은 하삼도인 전라, 경상, 충청과 평안도, 경기도 등지에 수영을 설치하였으며, 수영은 오늘 날의 해군 기지와 사령부에 해당한다. 통제영에서 관할하는 하삼도의 수군은 다음과 같다.

경상우수영

경상우수영(통제영)은 처음에 거제에 두었으나 1604년 고성(지금의 통영시)으로 옮겼다. 통제사의 본영(本營)을 ‘통제영’(統制營)이라 하는데, 처음에는 초대 통제사인 이순신 장군의 본영인 여수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이 통제영의 역할을 했고, 임진왜란이 끝난 후 제4대 통제사 이시언이 부임하면서부터 경상우수영(慶尙右水營)으로 옮겨졌다. 오늘날의 경상남도 통영시는 통제영에서 비롯된 지명이다.[4] 임란 초기에는 원균이 경상우수사를 맡았으나 1595년 충청병사로 승진한 이후에는 이순신의 부하 장수인 순천 부사 권준이 맡았고, 원균이 통제사로 부임한 이후에는 배설이 임명되었다. 명량해전 직후 전투 직전 도망친 배설의 뒤를 이어 당시 유도방호대장이자 역시 이순신의 부하 장수인 무의공 이순신이 임명되었다. 초기를 제외한 이후의 통제사는 거의 경상우수사가 겸직하게 된다.

경상좌수영

경상좌수영은 경상좌도수군 절도사의 진영으로, 주로 왜구의 침입경로인 낙동강에서 경주지역까지의 수로 방어를 담당하였다. 최초로 설치된 곳은 부산 동래현이었고, 태종 때 울산 개운포로 이전하였다가, 1592년 동래 남촌으로 옮겨갔다. 1635년 인조 13년에는 최초의 장소인 감만이포로 옮겼다가 왜관과 가깝다는 이유로 1652년 효종 3년에 다시 동래 남촌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임란 당시에는 박홍이 맡았지만 일본군에 의해 와해되면서 임란이 끝날 때까지 경상좌수영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전 옥포만호 이운룡이 맡았으나 위치상 삼도 수군 본영이 있던 고금도와는 단절되어 경상좌수군은 당시 경상도 지역에서 육전에 참가하였다.

전라좌수영

1479년 성종 10년 전라도 수군절도사영이 전라좌수영과 전라우수영으로 분리되면서 내례만호진 자리(현재 여수)에 설치되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591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 5관(순천, 흥양, 광양, 낙안, 보성), 5포(사도, 여도, 녹도, 방답, 발포)를 둔 작은 수군기지였지만 이순신이 연전연승을 하고, 통제사를 겸하게 되면서 통제영 역할을 수행하였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점차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전라우수영

1377년 고려 우왕 3년에 무안 당곶포에 수군이 처음 설치된 후, 1440년 세종 22년에 해남 황원관으로 옮겼다. 1465년 세조 11년에 수군절도사영으로 승격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이억기가 전라우수사로 재임하였으며 그가 칠천량 해전서 전사한 다음에는 김억추가, 명량해전 직후 거제현령 안위가 승진하여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때 명량해전의 주요 본거지가 되었다.

충청수영

고려말 왜구의 침입이 잦은 지역이었고, 간단한 형태의 방어진만 존재하다가 1447년 세종 29년 대마도 정벌과 함께 수군과 기지를 정비하고, 충청수영의 체계를 갖추었으며, 1466년 세조 12년에 충청수군절도사로 승격하였다. 왜구의 침탈로부터 방어하고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임란시에는 정걸과 선거이가 재임하였다. 정걸이 재임하던 당시 그는 행주대첩 당시 권율에게 화살등 물자를 지원하여 승리에 기여하였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최호가 맡았지만 그가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하여 후임으로 임란시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휘하의 장수였던 전 경상우수사 권준이 맡았다. 현재의 오천항 지역에 해당한다.

함께 보기

바깥 링크

주석

  1. 고려사, 권133 열전 제46권, 遣使于下三道
  2. “수군진영”. 이순신프로젝트. 2009년 2월 14일에 확인함. 통제영 
  3. 김병륜 1593~1890년 역대 삼도수군통제사 명단 수록 국방일보 2008.12.10 작성
  4. “조선수군의 진영”. 이순신프로젝트. 2009년 2월 1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