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용 (조선귀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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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7월 15일]] 자신의 아버지인 [[이재각]]이 받았던 후작 작위를 승계받았으며 [[1943년]] [[4월 15일]] 일본 정부로부터 종5위에 서위되었다. 광복 이후인 [[1949년]] [[8월 30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송치되어 조사를 받았다.
[[1935년]] [[7월 15일]] 자신의 아버지인 [[이재각]]이 받았던 후작 작위를 승계받았으며 [[1943년]] [[4월 15일]] 일본 정부로부터 종5위에 서위되었다. 광복 이후인 [[1949년]] [[8월 30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송치되어 조사를 받았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조선귀족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수작/습작 부문,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조선귀족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수작/습작 부문,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
== 참고자료 ==

2015년 8월 19일 (수) 19:01 판

이덕용(李德鎔, 1923년 4월 4일 ~ 1952년 9월 16일)은 일제 강점기조선귀족으로, 본적은 경성부 계동이며 후작 이재각의 아들이다.

1935년 7월 15일 자신의 아버지인 이재각이 받았던 후작 작위를 승계받았으며 1943년 4월 15일 일본 정부로부터 종5위에 서위되었다. 광복 이후인 1949년 8월 30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송치되어 조사를 받았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조선귀족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수작/습작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참고자료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9). 〈이덕용〉.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2》. 서울. 365~3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