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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봉건 제도 ==
[[중세]] 유럽에서 형성된 지방 행정 제도이자 정치·사회 체제이다. 영주와 농노로 이루어진 장원(莊園)을 기초 단위로 하여 각 장원의 통치자인 영주([[기사]])는 쌍무적 계약을 통해 상위 영주(대영주)의 가신(家臣)이 되고 대영주 또한 더 상위의 영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국왕 또는 황제와 쌍무적 계약 관계를 맺어 계층적인 가신 관계가 형성된 체제이다. 국왕을 포함한 모든 계층의 지배자들은 모두 장원을 다스리는 영주이며, 국왕 등의 대영주는 소유하에 있는 다수의 장원을 영주에게 분봉하여 다스리게 하거나, 한 단계 낮은 중소영주의 충성을 얻음으로써 광대한 영토를 유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영국]]의 국왕은 영국이라는 나라를 구성하는 모든 대영주들의 수장이면서 동시에 국왕령에 속하는 영주들의 수장인 대영주였으며, 또한 수도 런던을 포함한 국왕 직할령을 다스리는 영주였다. 이러한 누층적인 관계는 영주가 가지는 작위에서도 드러나는데, 영국의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공식 작위를 예시로 보면 영국 및 영연방 국가의 국왕 이외에도 노르망디 공작, 랭커스터 공작, 맨 섬의 영주, 에든버러 공작(女), 메리오네스 백작(女), 그리니치 남작(女) 등 다양한 작위가 있다.
=== 봉건 제도의 개념 ===
학문상 통일된 개념이 없으나, 주로 3가지 개념으로 대변된다.
 
이렇게 계층적인 관계는 휘하 영주 및 기사들의 봉건법 상의 충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직할령의 규모가 작은 국왕은 휘하의 대영주를 지배할 실질적인 권력 및 권위를 쉽게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 [[카페 왕조]] 초기의 상황이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국왕으로 영주들에 의해 선출된 [[위그 카페]]는 [[일드프랑스]] 지역의 영주로 다른 대영주를 압도할 수 있는 권력이 부족하였고 사실상 일드프랑스와 [[오를레앙]] 지역만 다스릴 수 있었다. 반대로 영국 [[노르만 왕조]]는 정복을 통해 형성된 강력한 권력과 함께 본거지인 [[노르망디]] 지역의 힘을 바탕으로 휘하 대영주를 압도할 수 있었다.
==== 법제사적 의미 ====
 
주군과 기사간의 [[주종서약]]이라는 [[신분관계]]와 거기 대응하는 토지에 수수라는 불가분의 결합체제를 말한다. 토지에 수수에는 단순히 토지만이 아니라 토지에 소속된 [[농노]]등을 함께 포함한다. 서유럽에서는 대략 8세기 말엽~13세기 중엽까지 해당한다.
 
==== 사회경제사적 의미 ====
 
[[노예 제도]]의 붕괴 후에 성립되어 [[자본주의]]에 전에 존재하였던 주군과 기사, 농노사이의 지배·예속관계가 기초를 이룬 생산체제를 말한다. 봉건 제도에서 주군과 기사, 농노는 토지를 매개로 봉건지대를 수취 ·수납하였다. 봉건 시대에는 토지를 주군으로부터 빌려 쓰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 대가로는 부역과 생산물이 있었는데, 화폐로 바뀌어 가며 농민의 지위가 향상되어 갔다. 그러나, 여전히 주군의 경제외적인 지배와 공동체의 규제가 농민을 극심하게 속박하였다. 서유럽에서는 6세기말엽,7세기 초~ 18세기 [[시민혁명]] 때까지가 봉건시대에 해당된다.
 
==== 사회 유형으로서 의미 ====
 
국왕 또는 황제를 정점으로 계단형 질서체계를 이루고, 신분제도의 유지, 전통의 고수라는 형태로 개인 기량의 발휘와 내면적 인간적 권위의 존중 등이 억압된 사회를 말한다. 봉건사회는 일반적으로 [[씨족제]]의 붕괴 과정에 있는 사회가 보편적인 국가이념과 종교를 이용하여 새로운 정치형성을 도모해 나갈 때에 생긴 역사적 조건의 우연한 산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봉건 제도를 사회 유형으로서 필연적인 한 단계라고는 하지 않는다. [[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토지를 중심으로 주종관계라고 하는 인적 결합의 강화를 통한 통일이 국가 통치의 한 방법이었다.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