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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밀은 1818년에 《[[영국령 인도의 역사]]》를 출판했다. 그 즈음에 열 두 살이 된 존 밀은 스콜라철학의 논리학을 치밀하게 공부하는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서들을 원전으로 읽었다. 이듬해에는 정치경제학 공부를 시작하여,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서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를 공부했다. 이는 자본, 노동, 토지를 생산의 삼요소로 바라보는 고전경제학의 시각이 밀 부자에 의해 완성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버지 밀은 산책시간을 이용해서 아들 밀에게 정치경제학을 강의했고, 아들은 배운 내용을 보고서로 만들어 제출하여 교정을 받았는데, 이 원고는 후일 아버지 밀이 출판한 『정치경제학 요론』의 초고가 되었다. 이 책은 리카도 경제학을 충실하게 답습한 교과서로서 당대를 풍미했다. 리카도는 아버지의 가까운 친구로, 소년 존을 자주 집으로 불러서 함께 산책하면서 정치경제학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밀은 아버지의 교육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인용문|그 교수법은 한 사람의 사상가를 양성하기 위해위한 것으로는 빼어난 고안이었지만, 내 아버지만큼 치밀하고 정력적인 사상가가 시행해야 성공할 수 있는 종류였다. 심지어 그로서도 가시밭길을 뚫고 나가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비록 내가 주제에 강한 흥미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내게도 분명히 가시밭길이었다고 확언할 수 있다. 애당초 나로서 당장 터득할 수 없는 내용도 많았는데, 아버지는 그럴 때에 이치에 어긋나게 속상해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의 방법은 옳았고 성공을 거뒀다. 아버지가 논리학과 정치경제학을 내게 가르친 방법만큼 철저했거나 소양을 기르는 데 적합했다고 할 수 있는 과학적 교육은 전례가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나로 하여금 스스로 찾아내게 함으로써 내 능력을 활성화하려고 조금 지나칠 정도로 노력하는 일환으로, 아버지는 설명을 먼저 해주지 않고 내가 목전에 봉착한 난점의 어려움을 완전히 느끼게 된 다음에 해줬다. 그리하여 논리학과 정치경제학이라고 하는 굉장한 학문에 관해서 당대에 알려진 모든 지식을 정확하게 전수해줬을 뿐만 아니라, 나를 그 분야에 관한 독자적인 사상가로 만들었다. 나는 거의 처음부터 나름대로 생각을 가질 수 있었고, 아버지와 견해가 다를 때도 종종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의견 차이는 사소한 문제에 관한 것이었고 또 결국은 아버지의 견해를 표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나중으로 가면서는 때로 내가 아버지를 설득하여 세부사항에서 의견을 수정하도록 한 경우도 있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까닭은 단지 나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함일 뿐이다. 이런 사례는 아버지의 완벽한 솔직성과 교수방법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자서전』}}
 
열 네살 때 밀은 [[제러미 벤담]]의 동생 [[사뮤엘 벤담]]의 가족과 함께 프랑스에서 일년을 보냈다. 프랑스 산악지방의 풍경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일생동안 산골 경치를 좋아하도록 이끌었다. 아울러 프랑스 사람들의 활발하고 친근한 생활태도에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몽펠리에의 과학대학({{llang|fr|Faculté des Sciences}})에서 화학, 동물학, 논리학 강의를 들었고, 개인교습을 통해 고등수학을 배웠다. 오가는 길에 파리에 들러서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유명한 경제학자 [[세이]]의 집에서 며칠 묵기도 했다. 거기서 밀은 자유당의 여러 지도자들을 만났고, 또 생시몽과 같은 파리의 저명인사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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