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보병사단 (대한민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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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사단 관할구역에서 [[2012년 조선인민군 병사의 노크 귀순 사건|조선인민군이 철책을 넘고 노크하여 귀순하였다.]] 그 동안 해당 부대에서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
* 22사단 관할구역에서 [[2012년 조선인민군 병사의 노크 귀순 사건|조선인민군이 철책을 넘고 노크하여 귀순하였다.]] 그 동안 해당 부대에서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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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6월 21일 20시 15분에 한 병사가 [[강원도 고성 군부대 총기 난사 사건|총기를 난사하여 5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당했다.]] 이후 해당 병사는 탈영한 후 교전과정에서 1명이 더 부상당했다. 이 사건으로 22사단장 서상국(소장·육사 40기),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이 보직해임 및 징계위원회 회부 처분을 받았다.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GOP 긴급진단을 실시하여 관심병사 100여명을 후방지역으로 보직 조정하는 등 관심병사에 대한 군의 관심이 높아졌다. |
* 2014년 6월 21일 20시 15분에 한 병사가 [[강원도 고성 군부대 총기 난사 사건|총기를 난사하여 5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당했다.]] 이후 해당 병사는 탈영한 후 교전과정에서 1명이 더 부상당했다. 이 사건으로 22사단장 서상국(소장·육사 40기),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이 보직해임 및 징계위원회 회부 처분을 받았다.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GOP 긴급진단을 실시하여 관심병사 100여명을 후방지역으로 보직 조정하는 등 관심병사에 대한 군의 관심이 높아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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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7월 27일 5시 18분경 신모 이병(22)이 끝내 민간병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모 이병은 영내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군 소식통은 이날 "신 이병은 이날 오후 4시 35분경 영내 화장실 좌변기 출입문 옷걸이에 군번줄로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6월 21일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22사단에서 벌어진 것이어서 우려를 더하고 있다. |
* 2014년 7월 27일 5시 18분경 신모 이병(22)이 끝내 민간병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모 이병은 영내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군 소식통은 이날 "신 이병은 이날 오후 4시 35분경 영내 화장실 좌변기 출입문 옷걸이에 군번줄로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6월 21일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22사단에서 벌어진 것이어서 우려를 더하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임병장 총기 난사' 22사단, 이번엔 신병 자살 사고 "A급 관심병사였다"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28/2014072802809.html |출판사 = 조선일보 |저자 = |날짜 = 2014-07-28 |확인날짜 = 2015-01-13}}</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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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 같이 보기 == |
2015년 1월 13일 (화) 17:05 판
제22보병사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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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기간 | 1953. 4. 16. ~ 1958. 12. 24. 1970. 4. 21. ~ 현재[1] |
국가 | 대한민국 |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병과 | 보병 |
규모 | 사단 |
명령 체계 | 8 군단 |
본부 | 강원도 고성군 |
별칭 | 율곡 |
참전 | 한국 전쟁 |
제22보병사단(第二十二步兵師團, The 22nd Infantry Division, 별명: 율곡부대)은 8 군단 예하 보병 사단이다. (사단창설시 이름은 뇌종부대 였으나 후에 율곡으로 바뀜) 강원도 양양에서 1953년 4월 21일 육군 본부 직할대로 창설되어 한국전쟁 말기에 활약하고 1958년 12월 24일 해체되었다. 동해안 방어 사령부가 1 해안 전투단으로 재편성되고 동해안경비사령부(현재 7 기동 군단) 예하 56 보병 연대와 통합, 1975년 8월 1일 새로 창설된 88 보병 여단과 또다시 통폐합 및 증편되면서 1982년 8월 16일, 재창설되었다.[2]
사건 및 사고
- 56연대 4대대에서 근무하던 한 병사가 내무실에 총기를 난사한 후 수류탄을 투척해 15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했다. 해당 병사는 월북하였다. [3]
- 22사단에서 2009년 10월 강동림이라는 사람이 철책을 절단하고 월북하는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22사단장과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은 보직해임과 징계 위원회에 회부하고 경계를 서고 있던 장병들은 근무태만을 물어 사법처리 하기로 했다.[4]
- 22사단 관할구역에서 조선인민군이 철책을 넘고 노크하여 귀순하였다. 그 동안 해당 부대에서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 2014년 6월 21일 20시 15분에 한 병사가 총기를 난사하여 5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당했다. 이후 해당 병사는 탈영한 후 교전과정에서 1명이 더 부상당했다. 이 사건으로 22사단장 서상국(소장·육사 40기),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이 보직해임 및 징계위원회 회부 처분을 받았다.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GOP 긴급진단을 실시하여 관심병사 100여명을 후방지역으로 보직 조정하는 등 관심병사에 대한 군의 관심이 높아졌다.
- 2014년 7월 27일 5시 18분경 신모 이병(22)이 끝내 민간병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모 이병은 영내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군 소식통은 이날 "신 이병은 이날 오후 4시 35분경 영내 화장실 좌변기 출입문 옷걸이에 군번줄로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6월 21일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22사단에서 벌어진 것이어서 우려를 더하고 있다.[5]
같이 보기
출처
- ↑ “육군 제22사단 21일 사단 창설 기념행사 열어”. 뉴시스. 2012년 2월 2일에 확인함.
- ↑ 이방현. “'군대스리가' 우리가 육군의 4대천왕!”. 중앙일보 일간스포츠. 2012년 2월 2일에 확인함.
- ↑ “'총기난사' 22사단…30년 전에도 15명 사망”. YTN. 2014년 6월 22일. 2014년 6월 22일에 확인함.
- ↑ 정충신 기자 (2009년 6월 22일). “'철책 절단 월북' 軍발표 의혹 투성이”. 문화일보. 2014년 7월 13일에 확인함.
- ↑ “'임병장 총기 난사' 22사단, 이번엔 신병 자살 사고 "A급 관심병사였다"”. 조선일보. 2014년 7월 28일. 2015년 1월 1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