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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선거와 집단지구 법령 ===
[[1948년]] 선거의 준비단계에서 국민당(the National Party (NP))은 아파르트헤이트를 공식정책으로 내걸었다. 국민당은 얀 스뮈츠의 연합당(Union Party)에 근소한 차이로 승리, [[개신교]] 성직자인 다니엘 프랑수아 말란의 리더쉽에 의해 [[아프리카너 정당]](AP)과 연정을 구성했다. 이들은 즉시 아파르트헤이트의 이행을 서둘렀다. 인종간 혼인금지법안이 통과됐고, 개인은 인종에 따라 분류되었으며, 의심쩍은 경우 확인할 수 있는 인종분류표가 만들어졌다. [[1950년]]의 집단지구법령은 아파르트헤이트의 핵심으로서, 인종별로 거주지역을 나누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1953년]]에는 인종별 시설분리법이 만들어졌는데, 인종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해변, [[버스]], [[병원]], [[학교]] 및 [[대학교]] 등을 분리시켰다. 이미 시행중이었던 통행법은 더욱 강화되었다. 모든 남아공 국민들은 신분증명서류를 휴대하도록 강요되었다. 흑인에게 이러한 신분증명서류는 백인지구로의 출입을 통제하는 "여권"과 같은 구실을 했다. 흑인은 백인거주지역에서 "이주허가"가 없는한 체류가 금지되었다. 흑인의 도시거주는 고용된 [[노동자]]에 한했고, 그들의 가족은 제외되었으며, 따라서 흑인 남성은 부인과 아이들과 생이별해야 했다. 데이빗 유델만이나 헤르만 길료메 같은 몇몇 저자들은 아파르트헤이트 시스템이 1907년의 영국 및 남아공의 노동운동과 이에 따른 정부대책의 선례에 따른 잔재라고 주장한다.
 
=== 유색인종 유권자의 공민권 박탈 ===
말란에 이어 수상이 된 J.G.스트레이돔은 케이프 주에서 유색인종과 흑인의 투표권을 박탈하기 시작했다. 전임정부는 [[1951년]]부터 인종별 분리투표를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그 법률효력은 법원에 의하여 연합당에 의해 지지된 네 명의 투표자들때문에 바뀌었다. 케이프 상급법원은 법률유지 입장을 드러냈지만, 상급법원에 항소되었고, 실효성이 별로 없다고 판단되었다. 이는 국회 양원의 2/3에 해당하는 의원들이 동의해야만 헌법을 개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회에 법원보다 월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법안을 상정하였다. 이것은 케이프 고등법원과 상급법원에서 모두 실효성이 없다고 선언되었다. [[1955년]] 스트레이돔 정부는 최고법원의 대법관 수를 다섯에서 열하나로 늘렸고 국민당 성향의 판사들을 신임법관자리에 속속 앉혔다. 같은 해에 그들은 상원의 정원수를 49명에서 89명으로 올리는 상원법률을 제출했다. 국민당 소속 의원들이 89석 중 77석을 장악하도록 조정이 이루어졌다. 마침내 1956년 남아공 국회 양원에서 인종별 분리투표 법안이 통과하여 케이프에서 유색인종은 일반적 투표권을 박탈당했다.
 
=== 주요 아파르트헤이트 입법 ===
** 이 법률은 모든 시민들이 [[흑인]], [[백인]], [[컬러드]], [[인도인]] 중 하나의 인종그룹에 속하도록 규정한다.
* 반공법 (1950년)
** 이 법은 [[남아공 공산당]](South Africa Communist Party;SACP) 및 정부가 [[공산주의]] 정당이라고 규정한 모든 ''정당''의 활동을 금지한다. 이 법률은 남아공 공산당원에게 최대 [[징역]] 10년형을 규정하고 있다. 법무장관 C.R. [[찰스 로버츠 스와트|스와트]]가 법률을 고안했는데, 이 법은 흑인들을 탄압하는 데 악용되어, 남아공 백인 [[경찰]]들은 [[흑인]]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살해하고는 시체를 불태워 증거를 인멸하였다.<ref>실제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과거사에 대해 고백할 경우 사면한다는 정책을 실시했을때, 남아공 경찰관들은 아파르트헤이트시절 반공법을 악용한 경찰의 흑인들에 대한 살인이 있었음을 시인하였다.</ref>
* 집단지구법 ([[1950년]])
** 이 법률은 국토를 인종에 따라 특정 인종만 이용 및 거주할 수 있는 인종구역으로 나눈다. 이 법은 아파르트헤이트의 핵심법률로 간주되는데, 이 법률의 시행에 따라 인종별 정치적, 사회적 분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 대 아파르트헤이트 (홈랜드 시스템) ===
[[파일:Southafricanhomelandsmap.png|right|250px|thumb|홈랜드의 위치]]
[[파일:Ciskei2.jpg|thumb|right|250px|홈랜드(반투스탄)의 하나인 치스케이의 농촌지역]]
{{main|반투스탄}}
소위 분리발전정책은 베르부어드 박사가 1958년에 권력을 획득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분리발전의 초석으로서 홈랜드 시스템의 구축을 구상하게 된다. 베르부어드는 이 홈랜드들에 궁극적으로 독립을 부여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백인 남아공과 홈랜드의 산업시설과 반투투자법인이 홈랜드의 발전과 고용을 위해 추진되었다.(궁극적으로 흑인을 백인 남아공에서 축출하기 위해) 박사는 이러한 문제의 근본 해결책으로, 원주민들과 다른 백인들이 모두 네덜란드나 본국으로 돌아가면 해결된다는 생각을 끝까지 숨기려고 망상을 동원해서 별의별 궁리를 다하였다.
[[분류:편견]]
[[분류:편견 및 차별에 대한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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