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종 (고려): 두 판 사이의 차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39번째 줄: 39번째 줄:
** 외조부: [[선의왕후]](宣義王后)
** 외조부: [[선의왕후]](宣義王后)
** 외숙부: [[왕치|성종]](成宗, 961/960~997 재위:981~997)
** 외숙부: [[왕치|성종]](成宗, 961/960~997 재위:981~997)
** 고모: [[헌정왕후]](獻貞王后,965/966~992)
** 이모: [[헌정왕후]](獻貞王后,965/966~992)
*** 사촌: [[왕순|현종]](顯宗, 992~1031 재위:1009~1031)
*** 사촌: [[왕순|현종]](顯宗, 992~1031 재위:1009~1031)



2014년 8월 27일 (수) 19:27 판

고려 목종
高麗 穆宗
고려제국 제7대 국왕
재위 997년 ~ 1009년
전임 성종
후임 현종
부왕 경종
이름
왕송(王訟)
신상정보
부친 경종
모친 헌애왕후
배우자 선정왕후
종교 불교

목종(穆宗, 980년 7월 5일 (음력 5월 20일) ~ 1009년 3월 2일 (음력 2월 3일) )은 고려 제7대 국왕(재위: 997년~1009년)이다. 는 송(訟), 는 효신(孝伸), 묘호목종(穆宗), 시호위혜극영정공선양대왕(威惠克英定恭宣讓大王)이다. 경종헌애왕후(獻哀王后) 황보씨(皇甫氏)의 아들이다.

997년부터 1009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997년부터 999년까지 모후 헌애왕후(獻哀王后)가 섭정하였고 999년부터 1009년 퇴위할 때까지 김치양(金致陽)이 실권을 맡았다.

생애

997년에 5촌 숙부 성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후 모후(母后) 헌애왕후응천계성정덕태후로 존칭했다. 관리의 봉급제도인 전시과(田柴科)를 개정하고 학문을 장려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아들이 없었다.

천추태후는 외척인 김치양(金致陽)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으로 삼고자 김치양과 함께 음모를 꾀하여, 왕의 당숙이자 사촌인 대량원군(大良院君) 왕순(王詢)을 승려로 만든 뒤 죽이려고 하였다.

이를 간파한 목종은 서경(西京) 도순검사(都巡檢使) 강조(康兆)에게 대량원군의 호위를 명하였으나, 오히려 강조에 의해 천자의 자리에서 폐위되어 양국공(讓國公)으로 강등된 후 경기도 파주 접선 해안가에서 강조가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되었다.

강조김치양 부자를 숙청하고 대량원군을 왕위에 올렸는데, 그가 즉 제8대 현종(顯宗)이다. 목종의 능은 공릉(恭陵)이며 현재 위치는 알 수 없으나 개성 동쪽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계

목종이 등장하는 작품

전임
성종
제7대 고려국왕
997년 - 1009년
후임
현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