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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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위키 백과, 날짜=2014-04-20}}
{{철학자 정보
|region = 서양 철학
|era = [[19세기 철학]], [[고전 경제학]]
|color = #B0C4DE
|image = John Stuart Mill by John Watkins, 1865.jpg
|image_caption = 존 스튜어트 밀 (1865년)
|name = 존 스튜어트 밀
|religion = 없음([[무신론]])
|birth_date = {{birth date|1806|5|20}}
|birth_place = [[영국]], [[런던]], [[펜톤빌]]
|death_date = {{Death date and age|1873|5|8|1806|5|20}}
|death_place = [[프랑스]], [[아비뇽]]
|school_tradition = [[경험주의]], [[공리주의 (철학)|공리주의]], [[자유주의]]
|main_interests = [[정치철학]], [[윤리학]], [[경제학]], [[귀납적 추리]]
|influences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토마스 아퀴나스|아퀴나스]], [[토머스 홉스|홉스]], [[존 로크|로크]], [[제러미 벤섬|벤담]], [[프란시스 플레이스]], [[제임스 밀]], [[해리엇 타일러 밀]], [[아담 스미스|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르도|리카르도]], [[알렉시스 드 토크빌|토크빌]], [[빌헬름 폰 훔볼트|폰 훔볼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괴테]],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콜리지]], [[클로드 앙리 드 생시몽|생시몽]]<ref>{{저널 인용|저자=[[Friedrich Hayek]]|제목=The Counter-Revolution of Science|발행년도=1941|저널=Economica|volume=8|issue=31|쪽=281–320|doi=10.2307/2549335|url=http://jstor.org/stable/2549335|출판사=Economica, Vol. 8, No. 31}}</ref>
|influenced = [[윌리엄 제임스]], [[존 롤스]], [[로버트 노직]], [[버트란드 러셀]], [[칼 포퍼]], [[로널드 드워킨]], [[H.L.A. 하트]], [[피터 싱어]], [[빌헬름 딜타이]], [[폴 파이어아벤트]], [[Zechariah Chafee]], [[존 케인스]], [[윌 킴리카]], [[까를로스 바스 페레이라]]
|notable_ideas = 공공 영역/사적 영역, 공리주의에서 쾌락의 위계, 자유주의, 초기 자유주의 페미니즘, [[해악 원리]], [[밀의 방법]]
}}
{{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1806년]] [[5월 20일]]~[[1873년]] [[5월 8일]])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로서, 논리학, 윤리학, 정치학, 사회평론 등에 걸쳐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경험주의 인식론과 공리주의 윤리학, 그리고 자유주의적 정치경제사상을 바탕으로 현실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하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공리주의 (철학)|공리주의]]는 대부이자 스승이었던 [[제러미 벤담|벤담]]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만, 여기에 생시몽주의와 낭만주의를 가미해서 나름의 체계로 발전시켰다. 『논리학체계』, 『정치경제학원리』, 『자유론』 등, 전 33권으로 이루어진 전집(''Collected Works of John Stuart Mill'', University of Toronto Press)이 있고, 그 밖에 동인도회사에서 일하면서 집필한 수많은 보고서를 남겼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집중적인 학습은 밀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스물 한살에 그는 [[신경쇠약]]으로 고생을 겪게 된다. 『자서전』 제5장에서 스스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는 보통 아이처럼 자랐다면 자연히 발달하기 마련인 여러 감정들을 억누르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리면서 몸과 마음 모두에서 엄청난 끈기를 발휘해야 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마르몽텔의 『어느 아버지의 회상』과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에서 위안을 찾아 정서능력이 회복되면서, 우울증은 결국 사라졌다. 이를 밀은 "구름이 점차로 걷혔다"고 표현했다.
 
1823년 친구들과 함께 공리주의자 협회를 만들었다. 밀은 옥스퍼드 대학이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기를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러기 위해서는 영국국교도가 되어야 하는데, 그는 영국교회를 "하얀 악마"로 간주했기 때문이다.<ref>Capaldi, Nicholas. John Stuart Mill: A Biography. p.33, Cambridge, 2004, ISBN 0-521-62024-4.</ref> 대신에 그는 그의 아버지를 따라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1858년까지 35년 동안 근무하면서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파일:Taylor-harriet.jpg|right|150px|thumb|해리어트 테일러]]
 
1843년 그의 중요 저서인 <논리학 체계>를 발표하였는데 이는 베이컨이 이룩한 귀납법의 논리를 완성한 것으로 진보가 빠르고 가장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자연 과학 연구의 방법론으로서 획기적인 저술이었다.
 
# 표현하는 내용에는 제한이 없어야 하지만, 표현하는 방식에는 제한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진보로 이어진다는 믿음은 공론의 여과능력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의견이 진실로 틀렸거나 해롭다면 공론장에서 자연히 틀렸거나 해로운 것으로 판명이 나서 도태되리라는 말이다. 밀은 정부를 전복하려는 기획이나 살인을 정당화하는 이론일지라도 표현에 사회적 박해나 정치적 탄압이 가해지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 전복이 진실로 필요하다면 전복해야 할 것이고, 살인이 진실로 정당하다면 용인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단, 의견을 공표하는 방식은 대중연설이나 저술이어야지 다른 사람에게 직접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이것을 일컬어 [[위해원칙]]({{lang|en|harm principle}})이라고 하는데, 예컨대 굶주림에 시달려 흥분한 상태의 군중을 상대로 곡물 도매상을 지목하면서 "여러분이 굶주리는 것은 저런 자들의 착취 때문"이라는 식의 표현은 안 된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 [[올리버 웬델 홈즈]]는 이를 기초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lang|en|clear and present danger}})이라는 기준을 세웠다. 깜깜한 극장에서 장난으로 "불이야!"를 외쳐서 사람들을 공황에 빠뜨리고 다치게 만들 정도의 위험이 거기에 해당한다. 반면에 듣는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받아들일지 배척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떤 의견이나 이론도 표현이 가로막히면 안 된다는 원리다.
 
밀의 이와 같은 주장은 오늘날 영국을 비롯해서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일본 등,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정치원리로 받아들여져, 표현의 자유는 시민의 기본권으로서 포괄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아울러 『자유론』(''On Liberty'')은자유론은 영어 산문의 고전으로서 영어권 사회의 대학에서 정치학뿐만 아니라 영문학의 교재로도 아직 널리 읽히고 있다. 그의 공론주의는 영국인의 삶의 큰 영향을 끼쳤다. 스코토 옥소니안 헤이글(Scoto Oxonian Hegel)이 세분화하여 공론주의를 완벽하게 정의 할 때까지 그의 이론은 영국 철학자들이 공론주의를 아웃라인 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 정체상태 ===
“자본과 부의 정체상태가 끔찍한 상태라는 고전학파의 주장에 나는 공감할 수 없다. 그러한 상태는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발전된 상황일 수 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경쟁이 인간의 정상적 상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즉 서로를 짓밟고 압박하고 밀어내고 유린하는 현재의 세태가 인류를 위한 최상의 상태일 뿐, 산업발달 과도기의 부작용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생시몽과 마르크스가 그랬듯이 밀 역시 인간이 점차 '필요의 단계(realm of necessity)'를 초월하여 그저 생계를 잇기 위한 삶으로부터 인간성의 고취를 위한 삶으로 진보해 나갈 것으로 생각했다. 밀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더 이상의 경제성장을 필요로 하는 국가들은 기아에 허덕이는 후진국들뿐이다. 선진 공업국들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합리적 분배와 건전한 사회기풍(ethos)이다."
 
== 같이 보기 ==
* [[위해원칙]]
* [[공리주의 (철학)|공리주의]]
* [[사회주의]]
* [[자유주의]]
 
== 주석 ==
<references />
 
== 바깥 고리 ==
{{commons+cat|John Stuart Mill}}
{{들머리|철학}}
* {{브리태니커|b08m2257b}}
* {{두피디아|101013000842573}}
* {{네이버캐스트|3806}}
* {{언어고리|en}} [http://oll.libertyfund.org/index.php?option=com_staticxt&staticfile=show.php%3Fperson=21&Itemid=28 The Collected Works of John Stuart Mill] - The Online Library of Liberty
* {{언어고리|en}} [http://plato.stanford.edu/entries/mill/ 존 스튜어트]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기본정렬:밀, 존 스튜어트}}
{{Authority control}}
 
[[분류:1806년 태어남]]
[[분류:1873년 죽음]]
[[분류:영국의 철학자]]
[[분류:영국의 경제학자]]
[[분류:영국의 논리학자]]
[[분류:19세기 철학자]]
[[분류:고전 자유주의자]]
 
"더 이상의 경제성장을 필요로 하는 국가들은 기아에 허덕이는 후진국들뿐이다. 선진 공업국들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합리적 분배와 건전한 사회기풍(ethos)이다사회기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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