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수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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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 9]]의 보도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의 실제 소유주인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ref>{{기사 인용|제목=청해진해운 실소유주 따로 있었다…자취 감춘 '세모 일가'는|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466695|저자=심수미 기자|출판사=[[JTBC]] [[JTBC 뉴스 9|뉴스 9]]|작성일자=2014-04-18|확인일자=2014-04-25}}</ref>이 [[아해]](Ahae)라는 이름의 사진가로 활동하였고, 이 과정에서 [[루브르 박물관]]에서 많은 돈을 내고 사진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높은 씀씀이가 확인되었다<ref>{{기사 인용|제목=<nowiki>[단독]</nowiki> 자취 감춘 청해진해운 대주주 '세모 일가' 추적해보니…|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468113|저자=이승녕 기자|출판사=[[JTBC]] [[JTBC 뉴스 9|뉴스 9]]|작성일자=2014-04-21|확인일자=2014-04-25}}</ref>. 또한 세월호 개조 과정에서 유벙언씨의 사진을 전용으로 전시하기 위한 목적의 공간을 약 840㎡나 추가로 확보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어 논란이 되었다.<ref name=sbs8_14042301>{{기사 인용|제목=유병언 사진 전시실 만들려고 세월호 5층 증축|url=http://w3.sbs.co.kr/news/newsEndPage.do?news_id=N1002358863|출판사=[[SBS]] [[SBS 8 뉴스|8 뉴스]]|저자=류란 기자|작성일자=2014-04-23|확인일자=2014-04-25}}</ref>
[[JTBC 뉴스 9]]의 보도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의 실제 소유주인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ref>{{기사 인용|제목=청해진해운 실소유주 따로 있었다…자취 감춘 '세모 일가'는|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466695|저자=심수미 기자|출판사=[[JTBC]] [[JTBC 뉴스 9|뉴스 9]]|작성일자=2014-04-18|확인일자=2014-04-25}}</ref>이 [[아해]](Ahae)라는 이름의 사진가로 활동하였고, 이 과정에서 [[루브르 박물관]]에서 많은 돈을 내고 사진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높은 씀씀이가 확인되었다<ref>{{기사 인용|제목=<nowiki>[단독]</nowiki> 자취 감춘 청해진해운 대주주 '세모 일가' 추적해보니…|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468113|저자=이승녕 기자|출판사=[[JTBC]] [[JTBC 뉴스 9|뉴스 9]]|작성일자=2014-04-21|확인일자=2014-04-25}}</ref>. 또한 세월호 개조 과정에서 유벙언씨의 사진을 전용으로 전시하기 위한 목적의 공간을 약 840㎡나 추가로 확보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어 논란이 되었다.<ref name=sbs8_14042301>{{기사 인용|제목=유병언 사진 전시실 만들려고 세월호 5층 증축|url=http://w3.sbs.co.kr/news/newsEndPage.do?news_id=N1002358863|출판사=[[SBS]] [[SBS 8 뉴스|8 뉴스]]|저자=류란 기자|작성일자=2014-04-23|확인일자=2014-04-25}}</ref>


이에 비해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청해진해운측은 직원 안전 교육비로 54만 천원만을 사용했고<ref name="s18">[http://w3.sbs.co.kr/news/newsEndPage.do?news_id=N1002357244 청해진해운 이전에도 '표류'…참사 부른 배짱 운행], [[SBS]] 2014년 4월 22일</ref><ref name="m19">[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4042215321225070&outlink=1 총체적 '인재'의 결정판 세월호…"곳곳에 원인 있었다"], [[머니투데이]] 2014년 4월 22일</ref>, 심지어 일부 직원은 입사 이후 안전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나<ref name="jtbc9_14042401">{{기사 인용|제목=일부 선원 "비상 안전교육 한 번도 안 받았다" 진술|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469613|저자=김선미 기자|출판사=[[JTBC]] [[JTBC 뉴스 9|뉴스 9]]|작성일자=2014-04-24|확인일자=2014-04-25}}</ref>, 유병언 측은 세월호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이유로 매 회 출항할 때마다 100만원씩을 받고<ref name="ja140429">{{기사 인용|제목=세월호 이름 짓고 출항할 때마다 100만원 … 유씨 일가, 상표장사로 회사돈 500억 챙겨|url=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04/29/14138259.html|작성일자=2014-04-29|확인일자=2014-04-30|출판사=[[중앙일보]]|저자=이가영·정효식 기자}}</ref><ref name="csib140429">{{기사 인용|제목=<nowiki>[세월호 참사]</nowiki>"세월호 출항 때마다 이름값 '100만원' 지급"|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29/2014042900790.html|출판사=[[조선일보]]|작성일자=2014-04-29|확인일자=2014-04-30}}</ref>, 선박의 디자인 특허 비용도 상납받은 것으로 알려져<ref name="csib140429" /> 청해진해운 측이 가장 필요한 비용지출은 꺼리면서 불필요한 지출을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비해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청해진해운측은 직원 안전 교육비로 54만 천원만을 사용했고<ref name="s18">[http://w3.sbs.co.kr/news/newsEndPage.do?news_id=N1002357244 청해진해운 이전에도 '표류'…참사 부른 배짱 운행], [[SBS]] 2014년 4월 22일</ref><ref name="m19">[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4042215321225070&outlink=1 총체적 '인재'의 결정판 세월호…"곳곳에 원인 있었다"], [[머니투데이]] 2014년 4월 22일</ref>, 심지어 일부 직원은 입사 이후 안전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나<ref name="jtbc9_14042401">{{기사 인용|제목=일부 선원 "비상 안전교육 한 번도 안 받았다" 진술|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469613|저자=김선미 기자|출판사=[[JTBC]] [[JTBC 뉴스 9|뉴스 9]]|작성일자=2014-04-24|확인일자=2014-04-25}}</ref>, 유병언 측은 세월호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이유로 매 회 출항할 때마다 100만원씩을 받고<ref name="ja140429">{{기사 인용|제목=세월호 이름 짓고 출항할 때마다 100만원 … 유씨 일가, 상표장사로 회사돈 500억 챙겨|url=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04/29/14138259.html|작성일자=2014-04-29|확인일자=2014-04-30|출판사=[[중앙일보]]|저자=이가영·정효식 기자}}</ref><ref name="csib140429">{{기사 인용|제목=<nowiki>[세월호 참사]</nowiki>"세월호 출항 때마다 이름값 '100만원' 지급"|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29/2014042900790.html|출판사=[[조선일보]]|작성일자=2014-04-29|확인일자=2014-04-30}}</ref>, 선박의 디자인 특허 비용도 상납받은 것으로 알려져<ref name="csib140429" /> 청해진해운 측이 가장 필요한 비용지출은 꺼리면서 불필요한 지출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또한 청해진해운 측이 사고 소식을 듣고 탈출 명령은 내리지 않고 단순히
또한 청해진해운 측이 사고 소식을 듣고 탈출 명령은 내리지 않고 단순히


또한 유벙언이 [[기독교복음침례회]](권신찬 [[구원파]])의 리더이며, 청해진해운의 상당수의 직원이 해당 종교의 직원이고, 선장도 이미 은퇴했으나 기독교복음침례회 소속 신도였던 관계로 해당 선박에 재취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ref name="jtbc9_14042301">{{기사 인용|제목="선장 포함해 직원 대부분 구원파 신도" 증언 잇따라|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469382|저자=송지영 기자|출판사=[[JTBC]] [[JTBC 뉴스 9|뉴스 9]]|작성일자=2014-04-23|확인일자=2014-04-25}}</ref>,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은 억지스럽고 말이 안 되는 터무니없는 말만 되풀이하며 해당 내용을 부인했다.
또한 유벙언이 [[기독교복음침례회]](권신찬 [[구원파]])의 리더이며, 청해진해운의 상당수의 직원이 해당 종교의 직원이고, 선장도 이미 은퇴했으나 기독교복음침례회 소속 신도였던 관계로 해당 선박에 재취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ref name="jtbc9_14042301">{{기사 인용|제목="선장 포함해 직원 대부분 구원파 신도" 증언 잇따라|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469382|저자=송지영 기자|출판사=[[JTBC]] [[JTBC 뉴스 9|뉴스 9]]|작성일자=2014-04-23|확인일자=2014-04-25}}</ref>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은 억지스럽고 말이 안 되는 터무니없는 말만 되풀이하며 해당 내용을 부인했다.


=== 증축·과적·승무원 교육 ===
=== 증축·과적·승무원 교육 ===

2014년 5월 26일 (월) 15:20 판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였다. 사상자가 많이 늘어난 데에는 최초침몰징후후 2시간이 넘는시간동안 초기 대응을 전혀 하지 못하고 승객들 몰래 탈출한 선장 이준석과 승무원들의 책임이 대두되고 있으며, 배를 무리하게 운행한 청해진해운 역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또한 해수부 마피아로 불리는, 해운계의 정경유착 역시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해경의 뒤늦은 대처 역시 책임론이 인다.

본 문서에서는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언론의 취재 등과 발표를 근거로 세월호 침몰사고에서의 책임 수행 관련 논란을 정리한다.

선장과 승무원

1차 탈출

승객들을 선박에 두고, 1차 탈출한 선박직 승무원들에 대하여 사회윤리적 책임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세월호 사고의 공학적·물리적 분석에 따른 직접원인 보다 근본원인을 지적한다. 선박이라는 한 집단의 범위 내에서는, 선장 등 선박직 승무원들이 항해와 승객 구조임무 책임을 지닌 리더인데, 그들의 리더십 부재가 세월호라는 한 집단의 침몰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몇 가지 근거로, 충분한 탈출 가능시간이 있었음에도(약 2시간) 승객들에게 "움직이면, 위험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과 해경에 구조요청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시기적절한 유효 조치가 없었다는 점. 오히려 방송 지시의 합리성에 의문을 품고 구명조끼를 착용한 뒤, 탈출을 시도했던 승객들이 생존율이 높았다는 점. 해당 선장등 선박직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뒤로하고 1차 탈출했다는 점을 든다. 따라서 이 분석은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문제가 리더들의 판단착오와 책임감 부재로 인재(人災)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1][2][3] 세월호 선장 이준석(69, 경북 칠곡) 등 구조된 선박직 승무원들이 승객들이 남겨진 상황에서 1차적으로 탈출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4] 특히 선장의 경우, 선원법에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인명, 선박,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있고, 이를 따르지 않았을 시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되어있다. 해경은 선장 등 승무원들이 법규를 위반하였는지 조사 중이다. [5]

한편, 세월호 선원들이 침몰사고 직전 자신들만 아는 통로를 이용해 배에서 탈출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으며,[6] 이후 28일에는 승무원들이 신분을 숨기기 위해 제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타 승객보다 먼저 구명정과 선박으로 기민하게 이동한 사실이 드러났다[7].

퇴선명령 여부

퇴선명령을 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선박이 완전히 침몰하기 전 2시간가량 시간이 있었는데, 생존자들은 당시 선내에서는 "더 위험하니, 동요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지속적으로 흘러나왔다고 전했다. 당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상황이었고, 오히려 이 지시를 따르지 않고 구명조끼를 착용 후 탈출을 시도한 승객들의 생존율이 높았다. 반대로, 그 지시대로 따른 승객들이 더 위험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어, 승무원들의 직무유기와 위기대처 미흡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8] 하지만 선장은 승객들에게도 퇴선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또 그보다 앞서 승객들에게 선내에서 대기하라고 방송한 이유도 두 가지를 들었다. 구조선이 당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점. 조류가 빨라 구명조끼를 입었든 아니든 퇴선시 승객들이 멀리 떠내려갈 수 있다는 점.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세월호 구조자 및 승무원들의 증언과 차이가 있다. 특히, 당시 지시를 전달받아 안내방송을 담당했던 승무원 강아무개는 퇴선명령을 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9] 하지만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이런 주장을 일축하였다. 이 선장이 퇴선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긴 했지만, 옆 사람에게 말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 퇴선하라는 방송이 없었던 만큼, 퇴선명령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셈이라는 입장이다. [10] 그러나 조타수 중 한명이었던 오아무개는 선장이 1항사에게 퇴선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침몰당시 선장이 1항사에게 퇴선을 지시했다"며 "선장이 퇴선명령을 하면 1항사는 승무원에게 이를 전달하기 위해 통해 전화ㆍ방송, 육성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며 "1항사가 휴대폰을 들고 있었지만 다른 승무원에게 전화하거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또 "(저는)수사기관에도 이 같은 사항을 진술했으며, 1항사의 휴대폰 통화 내역을 조사해 이런 지시를 하지 않았다면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선장이 배가 60도 전후로 기울 때부터 부랴부랴 수습을 시도했지만, 상황이 악화되면서 1항사에게 퇴선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청해진해운 사고매뉴얼을 보면 선장이 1항사에 퇴선을 명령하면 1항사는 각 업무에 따라 방송을 맡은 사무장, 여객유도를 맡은 비선박 운행 관련업무자들에게 이를 전달해야 한다. 윤종휘 한국해양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선장이 지시하면 1항사는 안내방송을 지시하고 방송, 전화가 안된다면 층마다 사람을 보내 알리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탑승자의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했다. 헤럴드경제 측은 1항사가 인터뷰에서 "선장이 옷 두껍게 입고 퇴선하라는 말을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를 다른 승무원들에게 전달했느냐는 질문에는 "너무 먼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11]

3등 항해사가 맹골수도를 지휘한 데에 대해서도 논란이 인다.[12] (변침 당시 선장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3등 항해사는 현재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조타수는 시키는 대로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조타수는 조타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수사결과가 무리한 변침으로 잠정결론 난 상태에서 변침의 이유가 주요 수사대상이 되고 있다.[13][14] 한편 조타수는 인터뷰에서 "선장님이 퇴선 명령을 내려서 10명이서 좌현 쪽으로 퇴선했다. 먼저 퇴선한 사람은 못보고 나는 7~8번째로 퇴선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선장이 퇴선 명령을 내리면 바로 무조건 나가는 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매뉴얼에 의하면 우선 가서 노약자를 구하고 아이들을 퇴선 시켜야 한다"고만 답했다. 이에 기자들이 "왜 매뉴얼을 안 지킨거냐"고 묻자 "지킬 상황이 안 되지 않나"고 오히려 되물은 뒤 "객실에 어떻게 가냐"는 어이없는 답변을 늘어놓았다. 조타수는 "당당하게 설 테니까 방송 그대로 내보내달라"고 큰소리를 쳐 논란이 있다.[15]

관제센터와의 교신

세월호가 초기 사고 신고를 가까운 진도가 아닌, 제주 관제 센터에 보고를 한 것은 사고 이후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어 논란이 있다. 세월호 전 항해사 김아무개는 4월 21일 JTBC 뉴스 9 손석희 앵커·보도부문 사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해상 조난에 있어서 필요한) 공용 채널인 16번 채널을 쓰면 해양수산부해경 등에 보고되어 사실을 다 알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모든 곳에서) 연락이 오고 이러다 보면 선박 직원도 머리 아프고 이러다 보니까 (사고 은폐를 위해) 할 수 없이 12번을 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고 초기 진도가 아닌 제주 VTS(관제센터)에 연락하게 된 것에 대해 김 씨는 "그걸(16번 채널)로 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니까 오히려 12번으로 해서 하는 게 더 낫다 싶어서 그쪽(제주 VTS)으로 먼저 연락을 한 것"이라며 "제일 가까운 데를 놔두고 왜 불렀겠나"고 반문했다. 김아무개의 발언에 손 앵커는 황당해해하며 "16번 채널을 쓸 경우 잘못이 만천하에 드러나기 때문인 것이냐"고 재차 확인하자 김씨는 "그렇다"며 향후 검찰 조사는 물론 법정 증언까지도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또한, 세월호와 진도 VTS 모두 그 해역을 지날 때는 상호 간의 '진입 보고'를 해야 하지만 양측 모두 이 절차를 생략했다는 주장도 새롭게 나와 논란이 있다. 손석희 앵커는 이에 대하여,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해명입니다"라고 논평했다.[16] [17]

청해진해운

JTBC 뉴스 9의 보도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의 실제 소유주인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18]아해(Ahae)라는 이름의 사진가로 활동하였고, 이 과정에서 루브르 박물관에서 많은 돈을 내고 사진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높은 씀씀이가 확인되었다[19]. 또한 세월호 개조 과정에서 유벙언씨의 사진을 전용으로 전시하기 위한 목적의 공간을 약 840㎡나 추가로 확보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어 논란이 되었다.[20]

이에 비해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청해진해운측은 직원 안전 교육비로 54만 천원만을 사용했고[21][22], 심지어 일부 직원은 입사 이후 안전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나[23], 유병언 측은 세월호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이유로 매 회 출항할 때마다 100만원씩을 받고[24][25], 선박의 디자인 특허 비용도 상납받은 것으로 알려져[25] 청해진해운 측이 가장 필요한 비용지출은 꺼리면서 불필요한 지출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또한 청해진해운 측이 사고 소식을 듣고 탈출 명령은 내리지 않고 단순히

또한 유벙언이 기독교복음침례회(권신찬 구원파)의 리더이며, 청해진해운의 상당수의 직원이 해당 종교의 직원이고, 선장도 이미 은퇴했으나 기독교복음침례회 소속 신도였던 관계로 해당 선박에 재취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26]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은 억지스럽고 말이 안 되는 터무니없는 말만 되풀이하며 해당 내용을 부인했다.

증축·과적·승무원 교육

2009년 대한민국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 되었다. 이때 여객선 운용 시한이 진수일로부터 2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다. 세월호의 소속 선박사였던 청해진해운은 덕분에, 일본에서는 운용시한 상 폐선에 가까운 18년된 세월호를 사들여 운항할 수 있었다(당시 국토해양부는 "여객선의 선령(船齡) 제한을 완화하면 기업 비용이 연간 200억원 절감될 것"이라며 규제완화에 대하여 논평했다). 이후, 청해진해운은 2012년 10월 세월호를 담보로 산업은행으로부터 개보수 자금 30억원 등 100억원의 차임급을 받았다. 이중 상당한 돈이 세월호 증축에 사용되었고, 이후 톤수 239톤·탑승 가능정원 116명이 늘어났다. 선박 설비 안전 검사 기관인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증축 등에 대하여, 2차례에 걸쳐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구명정이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기울어지며, 침몰하는 원인 중 하나가 무리한 증축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심지어 여객선을 임의대로 노선에 추가 투입해 출항시킨 뒤, 관계 당국에 통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책임은 과징금 30만원에 불과했다. 또한, 세월호의 경우 출항 전 운항관리자에게 차량 150대, 화물 675톤을 실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사고 이후에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이 실린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국내 내항선 선박직(선장·항해사·조타수·기관사 등) 대부분은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사고 당시 세월호 선장도 월 270만원의 1년 계약직이었다. 이에 직업적 안전성이 떨어지니 소속감이나 사명감을 기대하기가 애초에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고, 실제 선원에 대한 교육 관리도 열악했다. 청해진 해운은 2013년 선원 교육비용으로 54만 1천원을 썼다. [21][22]

SOS 신호 미작동

긴급구조 신호를 위한 SOS 버튼이 사고 당시 작동하지 않아 논란이 있다. 선박의 SOS버튼을 누르면, 조난당한 배의 정보가 주변 선박은 물론 전세계에 순식간에 전파된다. 물론 세월호에도 SOS버튼이 있었다. 16일 오전 9시 7분, 세월호의 조난상황을 인지한 진도관제센터(VTS)는 세월호 주변 선박들에게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세월호에서 SOS가 직접 전파되었다면, 순식간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고 당시 조타실에 있었던 2등 항해사 김아무개는 "조난신고 버튼을 눌렀지만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승무원들이 문제를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버튼을 누르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논란이 있다.[27][28]

항해기록장치(VDR)

대형 여객선에 비행기의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항해기록장치(VDR) 설치 규정이 없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현행 해상인명안전협약에 따르면 3000t 이상 화물선과 국제 항해 여객선에 이 장비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여객선은 예외 대상으로 규정돼 있다.[29]

개조상 문제 및 장비 미비

세월호는 일본에서 구매한 중고 선박을 상당히 한계치까지 개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세월호 내부에는 상당한 장비가 미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조 과정과 문제

안전장비

화물 결박장비

세월호 전 항해사 김모씨는 4월 21일자 JTBC 뉴스 9 손석희 앵커와의 대화에서 스태빌라이저나 평형수, 변침 등의 문제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라며, "침몰한 세월호는 결박을 제대로 안했을 것"이라 했다. 세월호에서 "자동차나 콘테이너 등 화물은 형식적으로 결박될 뿐"이라며 "앞뒤 결박은 형식적으로 하지만 좌우 결박은 대개 제대로 안한다"고 전했다. 그는 일상적인 비유를 들어서, 사고원인을 설명했다. 손석희 앵커가 백화점에서 물건을 구매 후 자가용 뒷 자석에 2단으로 쌓아놓은 후, 운전하면서 코너를 몇번 꺾었다고 가정해보라는 것이다. 한 번에 많은 각도를 꺾지 않더라도 작은 각도로 여러번 꺾게 되면 쌓아놓은 물건이 옆으로 쏠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결박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회사에 신청해도 잘 해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30] 또, 인천항 선박의 화물 결박을 현장에서 직접 담당하는 인천항운노조는 컨테이너 결박에 꼭 필요한 라싱바와 브릿지피팅 같은 전문 장비가 세월호에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밝혔다.[31]

해운계

한국선급

세월호는 한국선급으로부터 월호 정기 중간검사와 증축 당시 복원성 검사를 모두 통과했다. 또 2014년 2월,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배수와 통신, 조타장비, 안전시설 등 200여개 항목에 대해 '적합'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안전검사들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32]

한국해운조합

내항여객선 안전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는 25일 정부의 압수수색 이전 문제가 될만한 부분을 파기한 것이 취재에 의해 밝혀졌고,[33] 결국 인천지방검찰청4월 28일 인천지부장과 팀장급 직원 2명을 증거 인멸 혐의로 체포했다.[34]

구조과정에서의 논란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구조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또한 대한민국 해양경찰청의 늦장 대처와 언딘과의 유착 논란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다양한 구조 장비의 투입이 해경에 의해 의도적으로 지연되었다는 음모론이 있다.

초기 대응 미숙

해양경찰청이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청와대 등에 상황보고를 하면서 구조작업은 과장하고 실종자 상황은 생략하거나 축소하는 등 엉터리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와 정부가 침몰사고 초기 상황의 심각성을 오판하고 신속 대응하지 못한 원인이 해경의 이 같은 부실 보고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보인다.

해경은 사고 발생 약 40분 뒤인 오전 9시 30분 청와대와 총리실, 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 등에 처음으로 상황을 보고했다. 이때는 세월호 선체가 45도 이상 기울어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해경은 '세월호가 침몰 위험이 있다고 신고가 들어왔다'고만 보고했다. 첫 보고서엔 승객과 선원이 각각 450명, 24명으로 잘못 기재돼 있다.

세월호가 완전 전복됐을 때인 오전 10시 23분 두 번째 보고서에서는 해경과 해군 함선 33척, 항공기 6대를 동원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엔 구조정 1척과 헬기 2대만 있었다. 오전 11시25분에 보낸 세 번째 상황보고서엔 '현재 총 구조현황: 162명 구조 완료'라며 밑줄까지 그어놓았다. 하지만 300명 넘는 승객이 아직도 선체에 갇혀 있다는 '실종자' 관련 내용은 없었다. 구조 성과만 강조하고 신속한 현장 대응이 필요한 상황은 누락한 것이다.[35]

언딘 관련

해경과 언딘 사이의 유착 의혹

세월호가 침몰한 당일 언딘이 구난업체로 신속하게 결정된 것을 놓고 일각에서는 언딘이 평소 해경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것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언딘의 김모 대표는 해양경찰청의 법정단체로 작년 1월 출범한 한국해양구조협회의 부총재다. 총 19명에 이르는 해양구조협회 부총재에는 해경청 경비안전국장, 해경 경무관 출신 김모씨도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해경이 해양구조협회에서 부총재로 활동하는 김 대표의 언딘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청해진해운에 언딘을 구난업체로 선정토록 직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해경은 그러나 청해진해운이 언딘을 세월호 구난업체로 선정하는 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해경과 언딘은 4년 전 천안함 사건 때에도 수색작업을 함께 수행한 인연이 있다. 해경은 2010년 4월 천안함 실종장병 수색작업에 참여했다가 침몰한 쌍끌이 어선 금양98호의 선내 수색업체로 언딘을 선정했다. 언딘은 시신 수색작업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계약금액의 10%를 제외한 4억 3천만원을 해경으로부터 지급받았다. 그러나 실종자 시신을 단 1구도 인양하지 못한 업체에 거액의 예산을 지급한 것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해경은 이에 대해 "금양호 수색작업 때문에 언딘이 다른 현장의 사업을 진행하지 못한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고 계약 조건상 시신 인양과 상관없이 대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36]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이었던 지난달 16일, 이틀에 걸쳐 해군의 선내 진입이 해경에 의해 통제되기도 했다. 해군은 사고 둘째날인 17일 밤이 되어서야 수색 작전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렇게 28시간이 허비되었다. 이를 두고 해경이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계약한 민간 구난업체 '언딘'에 우선권을 주려고 해군의 투입을 막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해경은 해군의 투입을 제지한 적이 없다며 유착 가능성을 부인했다.[37]

첫 시신 발견

사고 발생 나흘째인 지난 19일 새벽 4시 20분쯤, 자원봉사에 나선 민간 잠수사들이 구조작업을 하다 처음으로 세월호 안에 있는 시신 3구를 발견했다. 그런데, 한 민간 잠수사는 언딘의 고위 간부가 "시신을 언딘이 발견한 것으로 해야 한다"며 "지금 시신을 인양하면 안 된다", "이대로 시신이 인양되면 윗선에서 다칠 분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민간 잠수사들은 해경이 나흘 동안 구조작업을 한 상황에서 민간잠수사가 먼저 시신을 인양하면 해경의 구조 능력에 대한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며, 언딘 측이 "직원으로 계약을 해주겠다"면서 "모든 일은 비밀로 한다"는 조건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공식 브리핑에선 언딘이 시신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언딘 측은 민간 잠수사들이 시신을 발견한 게 맞고 실력이 좋아 함께 일하자고 한 건 사실이라고 시인했지만, 나머지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으며 "윗선에서 다칠 분이 많다"는 등의 발언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38]

구조장비 투입 지연 논란

다이빙벨

다이빙 벨(잠수종)은 수중 작업을 위해 잠수부를 바다 속으로 이동시키는 장치로, 해난 구조 등에 이용된다. [39] 해난구조 및 선박인양 전문가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이 기술을 세월호 침몰 사건에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대표는 작업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을 유속과 시계로 크게 나눈 뒤, 시계보다는 유속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잠수종은 선체 옆에 붙어 있는 출입구까지 일종의 엘레베이터를 설치하는 것과 같아 이를 통해 다이버가 이동을 하면, 유속이 세도 출입구까지 접근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잠수종의 기본적 아이디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이대표에 따르면 알파잠수기술공사는 2000년도에 잠수종을 제작을 하여 이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다이버는 감압을 위해 상당 시간을 물속에서 보내야 하는데, 잠수종은 공기 공간이므로 다이버가 춥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의 경우엔, 조류를 피할 수 있는 어떤 피난처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알파잠수기술공사 측에 그러한 기술이 있고, 수심 100m까지 작업을 했다는 사실은 다이빙계와 군에도 알려져 있음에도, 잠수종이 세월호 침몰 사고 구조에는 채택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이대표는 잠수종 시스템을 이용한 지속적인 작업이 하루에 20시간이 지속 된다면 2, 3일이면 3층·4층·화물칸의 수색이 모두 끝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대표는 지금 구조작업 체계에서는 정부 측에서 책임을 지고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이미 주도가 진행되고 있는 어떤 체계에서는 민간작업자가 끼는 것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작업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구조작업에 대한 전제적인 지휘를 자신에게 넘겨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능한 것은 단지 인력·장비·안전을 보조하는 것뿐이고, 주수색작업을 위해서 계급이 배제된 실질적인 능력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40] [41]

하지만 황대식 한국해양구조협회 본부장은 다이빙벨 투입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유속에 상관없이 엘리베이터 형식으로 내려갈 수 있어 20시간 동안 작업이 가능하다는 게) 그럴 수 있지만 이쪽의 조류가 워낙 세고 탁도가 높기 때문에 부피가 큰 다이빙벨을 선체 내부에 넣지는 못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다이버에 의한 수색 구조 방법을 사용을 하면서 그 다이버들이 안전하게 오랜 시간 동안 수색 구조를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려할 때 그런 것(다이빙벨 등)들도 후차적으로 필요하지만 그걸 설치하기 위해서 우리가 수색 구조 활동을 놓칠 수가 없다”는 이견을 보여 논란이 있다. [42]

이 대표는 4월 21일 새벽, 자비를 털어 다이빙 벨, 작업용 CCTV 등 수십톤의 장비와 인력을 바지선에 싣고 인천항에서 팽목항으로 이동했다. 일부 다이빙벨 투입을 원하는 실종자 가족들이 해경 측에 다이빙벨 투입을 건의했고 이 결과 10여 시간 만에 다이빙벨이 사고현장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이빙벨이 기존 작업에 방해가 되고 이미 바지선이 설치돼 있어 안전 사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구조당국의 허가가 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43] 이종진 대표는 결국 다이빙 벨 등의 장비를 철수시키며 "생존자 찾아 에어포켓까지 들어가고 싶었다. 그게 구조지 지금 이게 구조인가"라고 하소연을 했다고 전해진다.[44]

그러나, 안전 문제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 대표가 제안한 잠수장비 '다이빙 벨'을 불허한 해경이 대학에서 다이빙 벨을 비공개로 현장에 투입되어 논란이 있다. 고발뉴스는 “23일 새벽 2시30분 강릉 모 대학으로부터 위급한 상황이 있다며 다이빙벨을 빌렸다더라. 언론 몰래 비밀리에 아침 9시에 현장으로 보내는 과정을 포착했다”라고 했다. 이어 “강릉의 모 대학과 통화해 구조 당국이 다이빙벨을 빌린 사실을 확인했다. 해당 대학의 한 교수는 돈을 받은 것은 아니고, 위급하다며 협조 요청이 들어와 빌려줬다”고 말했다.[45] 해경측은 "(다이빙 벨을) 실제 구조작업에는 사용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였다.[46]

이에 대해 언딘측의 공식발표에는 언딘에서 단독으로 가지고 온 것이며 이는 현장에 당장 투입하기에 어려운 조건인데 이종인의 다이빙벨이 여론화되자 자신들도 다이빙벨 장비를 가지고 있다라는 목적으로 빌렸다고 밝혔다.[47]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24일 오후 팽목항을 찾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이종인 대표의 작업 참여를 강력히 요구해 다이빙벨 투입을 약속 받았고,[48] 이에 따라 이 대표는 25일 오전 11시 40분쯤 팽목항에서 출항했지만 앵커(일종의 닻)를 설치하지 못했고 거센 조류에도 밀려 다이빙벨 투입에 실패한 뒤 26일 낮 12시쯤 팽목항으로 귀항했다.[49] 그 후, 30일에 재투입되어 2시 55분께 버팀줄 선체 이음매 조이기에 성공했으나, 버팀줄에서 선내 진입구까지 단거리 유도선 설치에 실패했다. 높은 파고로 알파 바지선의 가로·세로 움직임이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50] 오후 3시 45분에 다이빙벨을 선미 쪽에 투입했지만 투입 과정에서 잠수부 1명의 공기호스가 다이빙벨 운용 와이어에 씹혀 터지는 바람에 다이빙벨은 투입된지 28분만에 밖으로 건져졌다.[51] 다음 날인 5월 1일 새벽, 사고 해역에 다이빙벨을 투입한 뒤 잠수부 두 명이 세월호 선내에 진입해 각각 20여 분씩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실종자들을 찾지는 못했다. 오전 11시쯤 사고 해역에서 바지선과 다이빙벨을 철수시켰으며, 이 대표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52] 하지만 세월호 침몰 해역에 투입돼 다이빙벨 잠수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던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1시간여 만에 철수한 것과 관련해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다.[53]

다이빙벨이 별다른 성과 없이 철수하면서 이에 대한 피해 가족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투입 여부 논란 탓에 구조에 시간만 빼앗겼다는 것이다.[54]

대한민국 정부

해수부 마피아

선박의 정식 항해를 위해 선사는 첫 출항 1주일 전 해경에 운항관리규정을 심사, 증명 받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청해진해운이 공개한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서 선원들의 역할을 명시한 비상 부서 배치표는 총 44쪽 중 2쪽에 불과하다. 또한, 비상부서 배치표에는 선원 직책별 임무와 비상신호 체계가 적힌 게 전부였다. 다른 선박의 운항관리규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실함에도,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은 승인을 받았다.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은 해경과 운항관리실(해운조합), 항만청, 한국선급, 선박안전기술공단이 포함된 위원회에서 심사해 지난해 2월 25일 인천해양경찰서가 최종 승인했다. 그러나 해경은 4월 22일 기준, 언론의 회의록 공개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해경 측은 회의록 공개에 대해 "유관기관이 모두 합의해야 가능한 사안"이라고 언급했다.[55]

인원집계

계속 변하는 인원파악이 논란이 되고 있다. 단원고 측은 16일 오전 "11시 5분께 해경으로부터 학생들이 전원 구조되었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 측도 학교 측 발표에 따라 11시 7분과 16분에, 출입기자들에게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와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해경 공식 발표'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각각 보내기도 하였다. 이에 학교에 몰려온 학부모 300여명은 환호하고 안도하였다. 그러나 위 발표들은 모두 사실과 달랐는데,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이날 정오, 공식발표를 통해 "탑승객 477명 가운데 179명을 구조 했으며 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에 상황이 다시 '구조 중'인 것으로 확인되자 학부모들은 오열과 분통을 터뜨렸다.[56] 긴급 가동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측 역시도 인원집계의 오류로 논란이 되고 있다. 중대본은 16일 오후 1시 30분경 "476명 탑승, 구조자 368명, 사망 2명 확인"이라고 밝혀, 구조자수가 늘어감에 따라 국민들이 그나마 피해 최소화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가지게끔 하였다. 그러나 돌연, 오후 15시경 "구조자 집계 수 오류 ... 확인 중"이라고 앞선 발표를 번복함에 따라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들에게 많은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이어 중대본 측은 오후 16시 30분경 "459명 탑승, 구조 164명, 사망 2명, 실종 293명"이라고 정정하였다. 그러던 중 정홍원 국무총리가 17일 새벽 여객선 침몰 보호소가 설치된 전남 실내체육관을 방문하였다. 정홍원 총리는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는 과정에서 물병을 맞아 논란이 되었다. 실종자 가족은 정부의 구조 활동 지체와 피해상황 집계혼란에 답답해하며, 유관 기관들을 총괄하는 책임을 지닌 국무총리 등 정부 당국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57] 그러나 인원집계 혼란은 끝이 아니었다. 총리실 등 주요부처가 꾸린 범부처사고대책본부는 19일 진도군청에서 브리핑을 하고 인원집계를 승선자 476명, 구조자 174명으로 또다시 변경했다. 이평현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안전총괄부장은 선사가 작성한 명부를 기초로 확인한 결과, 2명이 안개로 인해 출항이 불명확함에 따라 각각 비행기를 타거나 귀가했으며 생존자 중 3명이 승선원 명부를 작성하지 않고 차량에 동승해 결과적으로 명부보다 1명이 늘었다고 말했다. 구조자 정정의 이유는 다수 기관이 구조와 이송을 하는 과정에서 유사성명 기재로 동일인이 중복집계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양수산부 박승기 대변인은 "지금부터 세월호 여객선 침몰 관련 언론 발표는 범부처사고대책본부에서 발표하는 것으로 조정한다"며 정홍원 국무총리의 언론 발표체계 조정 지시를 전달했다. 이에 따라 향후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서해지방해양경찰청과 진도 실내체육과, 팽목항 등 현장은 범부처사고대책본부에서 공지하는 내용을 일원화해서 발표하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확정된 내용을 발표하기로 했다. [58]

수 많은 대책본부

이번 침몰 사고와 관련해 설치된 대책본부는 총 10여 곳이다.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안전행정부가 서울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설치하였다. 뒤이어 정부세종청사에는 해양수산부교육부가 각각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차렸다. 해양수산부는 선박사고에 관한 주무부처란 점에서, 교육부는 수학여행을 가던 고교생들이 대거 승선했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다. 같은 이유로 경기도와 도교육청, 안산시는 안산올림픽기념관에 합동대책본부를 차렸으며 안산교육지원청에도 경기도교육청 대책본부가 만들어졌다.[59] 구조·수색 등 사고수습에 주된 책임이 있는 해양경찰청도 인천과 목포에 각각 지방사고수습본부를 꾸렸다. 이와 별도로 산하기관인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목포에 중앙구조본부를 설치했다. 여러 곳에 대책본부가 난립하자 국무총리실은 목포에 범부처 사고대책본부를 설치하겠다고 나섰다가 철회하는 소동도 벌어졌다.[60] 결국, 17일 진도군청에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11개 부처가 합동으로 범부처 사고대책본부를 설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본부장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맡고, 부본부장은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과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맡기로 했다.[61][62] 본부의 대변인은 해양수산부 대변인이 맡기로 하고, 언론 등에 대한 브리핑 창구도 일원화하겠다고 밝혔다.[63] 뒤이어 19일에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였다.[64] 이를 두고 명령과 보고 체계에 집착한 탁상 행정과 부처 이기주의와 무능함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65][66]

출처

  1. 온라인뉴스팀. “[세월호 침몰사고]세월호 선장 "책임의식은 무면허, 탈출은 1등 항해사". 동아닷컴.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2. 문연철. “사고 당시 선장·선원들, 승객 두고 먼저 탈출”. MBC. 
  3. 이현영. “세월호 선장 '승객 두고 먼저 탈출'…서해 훼리호 선장은 어땠나”. 티브이이데일리. 
  4.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615
  5. 박지혜 (2014년 4월 17일). “[진도 여객선 침몰] '2급 항해사' 세월호 선장, 선원법 어겼나”. 이데일리. 2014년 4월 17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6. 강현석·배문규 기자. “세월호 선원들, 자신들만 아는 통로로 탈출”. 경향신문. 2014년 4월 28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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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이경미 진명선 기자. “3등 항해사는 침몰원인 알까?…사고 당시 조타지휘 맡아”. 한겨례. 
  13. 강현석. '선장 퇴선명령' 없었다…삼등항해사는 '묵비권'. MBN. 
  14. 박상진. “무리한 방향 전환? 세월호 침몰 원인 3가지 추정”. SBS. 
  15. 세계파이낸스 뉴스팀. “[세월호참사] '뻔뻔한' 조타수 인터뷰 논란”. 세계일보. 
  16. “세월호 前 항해사 '채널 16번' 사용 안 하는 이유 폭로 (동영상) : 손석희의 JTBC '뉴스9'에서 밝혀”. 허핑턴 포스트 한국어판. 2014년 4월 21일. 
  17. 해경 "연락만 안 했을 뿐 쭉 지켜봤다" 어이없는 해명 - JTBC 뉴스특보, 2014년 4월 23일 방영
  18. 심수미 기자.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따로 있었다…자취 감춘 '세모 일가'는”. JTBC 뉴스 9. 2014년 4월 25일에 확인함. 
  19. 이승녕 기자. “[단독] 자취 감춘 청해진해운 대주주 '세모 일가' 추적해보니…”. JTBC 뉴스 9. 2014년 4월 25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20. 류란 기자. “유병언 사진 전시실 만들려고 세월호 5층 증축”. SBS 8 뉴스. 2014년 4월 25일에 확인함. 
  21. 청해진해운 이전에도 '표류'…참사 부른 배짱 운행, SBS 2014년 4월 22일
  22. 총체적 '인재'의 결정판 세월호…"곳곳에 원인 있었다", 머니투데이 2014년 4월 22일
  23. 김선미 기자. “일부 선원 "비상 안전교육 한 번도 안 받았다" 진술”. JTBC 뉴스 9. 2014년 4월 25일에 확인함. 
  24. 이가영·정효식 기자. “세월호 이름 짓고 출항할 때마다 100만원 … 유씨 일가, 상표장사로 회사돈 500억 챙겨”. 중앙일보. 2014년 4월 30일에 확인함. 
  25. “[세월호 참사]"세월호 출항 때마다 이름값 '100만원' 지급". 조선일보. 2014년 4월 30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26. 송지영 기자. "선장 포함해 직원 대부분 구원파 신도" 증언 잇따라”. JTBC 뉴스 9. 2014년 4월 25일에 확인함. 
  27. 박상욱. “121명 사망, 생존자 구조 소식은 없어…야간 수색 집중”. JTBC. 
  28. 강신후. “누르기만 하면 전세계 전파…SOS 버튼 안 눌렀나?”. JTBC. 
  29. 최성국 기자. “노후 여객선 들여와 증축…法에 구멍 뚫린 해상안전”. 한국경제. 
  30. 세월호 전 항해사 "16번 채널 쓰면 문제 커져 사용 안 해" - JTBC 뉴스 9, 2014년 4월 21일 방영
  31. '결박 장치'…세월호에는 애초부터 없었다 - JTBC 뉴스 9, 2014년 4월 23일 방영
  32. 특별취재팀. “<세월호참사> 수사본부, '한국선급' 본격 수사(종합)”. 연합뉴스. 
  33. 이가혁 기자. “찢긴 수상한 문서 조각들…해운조합, 증거 없애려 했나”. JTBC 뉴스 9. 2014년 4월 26일에 확인함. 
  34. 박대한 기자 외. “檢, '증거인멸' 해운조합 인천지부장 등 3명 체포(종합)”. 연합뉴스. 2014년 4월 28일에 확인함. 
  35. 구조는 과장, 실종자 상황은 생략… 해경 초기 보고서 ‘엉터리’ - 경향신문, 2014년 5월 6일
  36. <세월호참사> 해경과 언딘 유착 의혹 갈수록 확산 - 연합뉴스, 2014년 5월 1일
  37. 해경·'언딘' 유착 의혹…'언딘'에 구조 우선권 주었나? - 매일방송, 2014년 5월 1일
  38. 첫 시신 발견 "언딘이 한 것으로…" 인양 조작했나 - JTBC 뉴스 9, 2014년 4월 28일
  39. http://www.theguardian.com/world/2013/jun/12/nigeria-sailor-survive-air-pocket
  40. 손석희. “이종인 "공기 주입, 생존자 있을 만한 곳에 해야..조타실은 의문"세월호 사고원인 '변침' 잠정결론 ... 시간대별 구성”. JTBC. 
  41. 브리태니커. 《잠수종》. 브리태니커. 
  42. 정재호. “[진도 여객선 침몰] 이종인 '다이빙벨 투입' 주장에 황대식 "부적합" 입장 이유”. 이데일리.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43. 이종인 '다이빙벨' 투입 무산 - 뉴스1, 2014년 4월 21일 작성
  44. 이종인 대표의 눈물
  45. “이종인이 제안한 ‘다이빙벨’ 거부한 해경, 대학서 빌려 몰래 투입” - 경향신문, 2014년 4월 24일 작성
  46. <세월호참사> 민간 '다이빙벨' 거부하던 당국, '뒷북 투입' 논란 - 연합뉴스, 2014년 4월 24일
  47. 다이빙벨 빌린 언딘 대표 "이상호 기자가 전문가인가" - 데일리안, 2014년 4월 24일
  48. 이종인 대표 "해경이 다이빙벨 투입 요청했다"… '언딘' 특혜 의혹은? - 뉴스1, 2014년 4월 25일
  49. ‘다이빙벨’ 투입 임박…30일 새벽 2시 전후 예정 - 파이낸셜뉴스, 2014년 4월 29일 작성
  50. 다이빙벨 버팀줄 설치 완료…투입은 '아직' - 뉴스1, 2014년 4월 30일
  51. <세월호참사> '다이빙벨' 내일 새벽 2~3시 재투입(종합 2보) - 연합뉴스, 2014년 4월 30일
  52. 다이빙벨, 성과 없이 현장서 철수…"실종자 가족에 죄송" - JTBC 뉴스 9, 2014년 5월 1일 방영
  53. 이종인은 다이빙벨 잠수시켜놓고 왜 철수했는가 - 미디어오늘, 2014년 5월 5일
  54. 실종자 가족들 “다이빙벨 ‘다’자도 꺼내지 마라” - 문화일보, 2014년 5월 2일
  55. 뉴시스. “[세월호 참사]해경,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부실 심사 의혹”. 뉴시스.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56. 강수정 (2014년 4월 16일). “<진도 여객선 침몰>'전원 구조' → '구조 중' 오락가락 발표에 학부모 분통”. 뉴시스. 2014년 4월 16일에 확인함. 
  57. 연합뉴스 (2014년 4월 17일). “<여객선침몰>”. YTN. 2014년 4월 17일에 확인함. 
  58. 특별취재팀 (2014년 4월 18일). “<여객선 침몰>승선자 476명, 구조자 174명으로 정정”. 연합뉴스. 2014년 4월 18일에 확인함. 
  59. 장아영, 사공만 있고...'대책본부'만 10여 개, YTN, 2014년 4월 19일
  60. 이태영, 부처마다 대책본부… 협업은 없고 책임 떠넘기기 급급, 세계일보, 2014년 4월 20일
  61. 음성원, ‘재난 비전문’ 안행부가 총괄지휘…‘허술대응’ 우려가 현실로, 한겨레, 2014년 4월 20일
  62. 정의종, 범정부 차원 대책본부 구성… 정총리 본부장 맡아 진두지휘, 경인일보, 2014년 4월 18일
  63. 김태경, 구조활동 발표, 범부처사고대책본부로 일원화, 스타뉴스, 2014년 4월 19일
  64. 김현철, 정 총리 “민간 전문가 공식 브리핑 참여 시켜라”, 아주경제, 2014년 4월 19일
  65. 신혜권, 재난 컨트롤타워 위상 강화 등 정부 재난정책 `대수술` 시급, 전자신문, 2014년 4월 20일
  66. 심화영, 실전서 `무능` 보여준 새 재난대응체계, 디지털타임스, 2014년 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