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독일 마르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잔글
→‎화폐 통합: n번째→n 번째. 수사는 단어이고, 단어와 단어사이는 띄어 쓴다: 한글 맞춤법 제 2항 using AWB
(copyedit using AWB)
잔글 (→‎화폐 통합: n번째→n 번째. 수사는 단어이고, 단어와 단어사이는 띄어 쓴다: 한글 맞춤법 제 2항 using AWB)
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상황에서 동독 지도부의 해체는 가속화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콜 수상은 11월 28일 연방제 추진 10개항 통일방안(Zehn Punkte Programm)을 제시하였지만 이는 사실상 기존의 단계적 통일방안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 서독정부가 이 방안을 통해 구체적인 실천에 착수하는 동안 동독의 정치적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고 12월 20일 콜과 한스 모드로프 동독 수상은 드레스덴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90년 4월까지 양 독일간에 '조약공동체(Vertragsgemeinschaft)'를 구성할 것에 합의하였다.
 
동서독 화폐·경제 통합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시작된 것은 90년 2월 6일 콜 수상이 급진적인 화폐통합을 제안하면서부터였다. 2월 13일 본에서 개최된 두번째두 번째 정상회담에서 콜 수상은 모드로프 수상에게 동독의 화폐단위 및 법적 지불수단을 서독 마르크화로 대체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를 위해 화폐통합 및 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기구인 '공동전문 위원회(Expertengesprache)' 가 구성되었다.
 
한편 90년 3월 18일 동독은 최초의 자유 총선거를 실시하게 되었고 선거 결과 서독마르크의 즉각적인 도입과 조속한 통일을 공약으로 내세운 기민당(CDU)중심의 '독일연맹'(Allianz fur Deutschland, 약자로 AFD)의 승리로 끝났다. 이를 계기로 총체적인 통일과정은 급진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새로운 수상으로 선출된 로타 드 메지에르(Lothar de Maiziere)는 4월 25일부터 5월 17일에 걸쳐 본격적인 협상에 박차를 가했다.

편집

11,7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