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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한산도 대첩}}
 
[[한산도대첩]]은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로 1592년(선조 25) [[8월 14일]]([[음력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 휘하의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으로, 이 전투에서 육전에서 사용하던 포위 섬멸 전술 형태인 [[학익진]]을 처음으로 펼쳤다.
 
8월 10일(음력 7월 4일) 출발, 6일에12일(음력 7월 6일)에 노량에 이르러 경상우수사 원균과 합류하였다. 이 때 적선이 출몰한 정보를 얻어 8일 큰배 36척 중간배 24척 작은배 13척을 만나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군의 연합함대는 거짓으로 후퇴하는 듯하여 적들을 큰 바다로 끌어 낸 다음 배들이 일제히 학익진 진형을 갖춰 [[지자총통]], [[현자총통]], [[승자총통]] 등을 발포하여 적들을 궤멸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포격으로 적함을 깨뜨리고 때로 적함에 승선해 전투를 벌여 일본군을 격퇴하였으며 여러 명의 포로들을 구해내었다. 이날 일본 수군은 큰 배 한 척, 중간 배 일곱 척, 작은 배 여섯 척만이 후방에 있어 도망을 칠 수 있었다.
 
8월 15일(음력 7월 9일) 안골포에 적선 40여 척이 정박해 있다는 보고를 받아 16일(음력 7월 10일) [[학익진]]을 펼치고 진격하여 왜선 59척을 침몰시켰다.
 
한편, 음력 7월 말에 이르러서야 육전에서도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가 승리하였으며 [[홍계남]](洪季男)이 안성에서 승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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