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최치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619 바이트 추가됨 ,  8년 전
편집 요약 없음
'''최치원'''(崔致遠, [[857년]]~?)은 [[신라]] 말기의 문장가, 학자이다. 본관은 [[경주 최씨|경주]], 자는 고운(孤雲) 혹은 해운(海雲)이다.
 
난랑비서문(鸞郎碑序文)이 《[[삼국사기]]》를 통해 남아 있다. 특히 8l자로 구성된 [[천부경]]은 [[단군]]의 가르침을 [[단군]]의 신하 신지(神志)가 전서체로전문(篆文, 전서체의 문자)으로 비석에 새겨 전해오던 것을 최치원이 이를 한자로 번역하여 태백산([[묘향산]]) 꼭대기의 바위에 새긴 경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ref name="고운최치원">『국역 고운선생문집』 상·하(고운선생문집편찬회, 1972·1973),『최문창후전집』(성균관대학교대동문화연구원, 1972),「최치원의 역사서술」(조인성,『역사학보』94·95, 1982),「고운 최치원의 사회개혁사상」(최근영,『한국사상』18, 1981),「최고운의 사상과 문학」(양광석,『한국문학론』, 일월서각, 1981),「최치원연구」(최경숙,『부산사학』5, 1981),「고운 최치원의 사상연구」(김복순,『사총』24, 1980) 참조</ref>
<ref>{{서적 인용|저자=유동식|제목=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페이지=64/376|꺾쇠표= 예|연도=1997|출판사=연세대학교출판부|ISBN=9788971414231}}</ref>
 
 
== 전해오는 이야기 ==
매월당 [[김시습]]은 [[신라]] [[내물왕]](17대) ∼ [[눌지왕]](19대) 때 충신 [[박제상]](朴堤上)이 쓴 부도지를 부활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징심록(澄心錄)' 15지(誌)와 박제상의[[박제상]]의 아들인 백결선생이 보탠 '금척지(金尺誌)'와 김시습이 보탠 '징심록추기' 등 총 17지(책)를 전하고 있는데 부도지는[[부도지]]는 징심록의 제1지에 있다고 전해진다.<ref name="고운최치원"/><ref>{{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1/06/27/20110627004036.html|제목=한국차의 신화학 다시쓰기, 매월당 초암차 일본으로 건너가|성=|이름=박정진 문화평론가|작성일자=2011-06-27|출판사=세계일보|확인일자=2013-08-25}}</ref>
 
상고사에 대한 저서 중의 하나인 ‘[[부도지]](符都誌)’ 중 ‘징심록 추기’편에서 [[김시습]]은 금척(金尺, 금으로 된 자)이 천부경(天符經)이라는 사상적 배경과, 첫 건국의 바탕이라는 역사적 유래를 갖추고 있는 신비로운 사물이라는 것을 누누이 밝히고 있다.
 
[[이성계]]가 꿈속에서 금척을 받고 나라 이름을 [[단군]]과 같이 [[조선]]으로 했던 것은 [[단군]]의 맥을 이어 이 땅에 천부도(天符都)를 건설하려 했던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ref name="고운최치원"/><ref>{{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1/06/27/20110627004036.html|제목=한국차의 신화학 다시쓰기, 매월당 초암차 일본으로 건너가|성=|이름=박정진 문화평론가|작성일자=2011-06-27|출판사=세계일보|확인일자=2013-08-25}}</ref>
 
== 최치원과 해운대, 양저우 시 ==

편집

5,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