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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샤를 4세]]가 남자 후계자를 남기지 않은 채 죽자, [[필리프 4세]]의 직계혈통이 끊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필리프 3세의 남자쪽계의 손자로 제후, 승려들의 회의를 통해 선택되어 즉위했다. 이미 12년 전, [[루이 10세]] 사망시<ref>정확히는 루이 10세의 사후에 태어난 [[장 1세 (프랑스)|장 1세 ''유복자왕'']] 루 포스담의 사후</ref>프랑크<sup>위 첨자</sup>인의프랑크인의 옛법이었던 [[살리카 법]]을 근거로 여계계승을 배제했었기<ref>살리카법을 발견하여 왕위계승에 적용한 것은 샤를 5세때 였고, 필리프 5세의 왕위계승에는 잔느의 적출성(嫡出性)에 대한 이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ref>때문에 필리프의 즉위는 이론없이 받아들여져 수용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같은 군주을 모시던 연합 아래에 있던 [[나바라 왕국]]에서는 여계계승이 인정받고 있었고, 또한 필리프 자신은 나바라 왕가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루이 10세의 딸 잔느가 왕위를 계승했다(후아나 2세).
 
[[1328년]] 3년 전부터 직포공의 시민과 농민의 반란으로 곤경에 빠져 있던 [[플랑드르 백작]]을 원조하여, [[8월 23일]] 카셀에서 반란군에게 승리했다. 다음해 프랑스 왕위 후보자 중 1명이었던 [[에드워드 3세]]가 필리프의 왕위를 인정하고, 기엔느의 소유에 대해서 신하로써 복종을 선서했다. 그런데, [[1333년]] 에드워드와 대립하던 [[스코틀랜드]]왕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2세|데이비드 2세]]가 프랑스로 망명할때 필리프가 그를 환영하였기 때문에, 에드워드는 이를 치욕으로 여기고, 다시 프랑스 왕위를 요구하였고, [[1337년]]에 시작된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백년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