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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倻倻寺)와 직산의 홍경원(弘慶院)을 휩쓴 난민은 [[아산시|아산]]·[[청주시|청주]]를 공격했다. 고려 정부는 충순현을 명학소로 다시 강등하는 등 강경책으로 난민을 총공격하였다. 이때는 농번기라 난민 중 농민병이 이탈하고, 식량·무기 등이 부족하여 정세가 불리해졌다. 이리하여 망이·망소이 등은 체포되고 난은 7월에 끝났다.
 
망이·망소이의 난이 시작되었던 명학소의 위치는 현재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당시 공주군 유성현)으로 추정되어 탄방동 소재 남선봉 공원에소재 남선근린공원에 기념탑이 건립되었다.
 
충순현을 신설하여 민란을 일으킨 자들을 위무했다고 하는데 대전시 탄방동에 설치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갈마동 동사무소 안쪽이라고 하기도 한다. <ref>대전 덕명지구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 13쪽, 충청남도 역사문화원, 2005.5</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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