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으로 건너뛰기

"요안니스 2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30 바이트 제거됨 ,  8년 전
잔글
봇:인터위키 링크 1 개가 위키데이터Q41628 항목으로 옮겨짐. 이동 완료.; 예쁘게 바꿈
잔글 (봇: 인터위키 링크 39 개가 위키데이터d:q41628 항목으로 옮겨짐)
잔글 (봇:인터위키 링크 1 개가 위키데이터Q41628 항목으로 옮겨짐. 이동 완료.; 예쁘게 바꿈)
 
=== 안티오키아의 수복 ===
요한네스가 제국 서방의 문제에 매달려 있던 10년 동안 [[아나톨리아]]에서는 [[다니슈멘드]]가 발흥하여 소아시아의 강자로 떠올랐으며 1130년 2월 [[보에몽 2세]]의 [[안티오키아 공국]]의 군대를 격파하여 [[안티오키아]]를 점령하였다. 1130년부터 1135년까지 요한네스는 다섯 차례나 다니슈멘드를 공격했고 완벽한 승리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개선할 수 있었다. 또한 다니슈멘드의 아미르 가지가 예상 외로 죽는 바람에 아나톨리아 회복은 더욱 쉬워졌다.
 
요한네스는 최근 [[시칠리아의 군주|시칠리아의 왕]]으로 인정받고 [[안티오키아]]에 대한 계승권을 주장하는 [[루지에로 2세]]에 대한 대비책으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로타르 3세|로타르]]에게 시칠리아를 공격하게 하고 자신은 [[십자군 국가]]에 대한 원정에 나섰다. 당시 안티오키아 공국은 보에몽이 아미르 가지에게 죽은 이후 [[예루살렘의 보두앵 2세]]의 섭정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보두앵의 어린 딸 [[안티오키아의 콩스탕스|콩스탕스]]와 그의 남편 [[안티오키아의 레몽|레몽]]에게로 상속되었다. 레몽은 [[킬리키아]]를 공격했고 요한네스는 차근차근 동방원정을 성사시켰다.
 
[[1138년]] 요한네스는 드디어 안티오키아까지 진격했고 결국 레몽의 항복을 받았다. 그는 레몽과 [[에데사의 조슬랭 2세]]등 십자군의 가신들과 연합하여 [[1138년]] 3월 [[성전 기사단]]을 구성했고 시리아의 이슬람에 대한 원정에 나섰으나 레몽와 조슬랭의 불신으로 원정에 성공하지 못했고 [[프랑크족]] 군대의 반감이 깊어져 결국 원정을 포기하고 돌아와야 했다.
{{Link GA|fr}}
{{Link GA|ru}}
 
[[it:Giovanni II Comneno]]

편집

487,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