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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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三哩岛核泄漏事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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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8일 (월) 08:11 판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전경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영어: Three Mile Island accident)는 1979년 3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해리스버그 시에서 16km떨어진 도핀 카운티의 서스쿼해나 강 가운데 있는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2호기(TMI-2)에서 일어난 노심 용융(meltdown)사고로 미국 상업 원자력산업 역사상 가장 심각한 사고이다.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에는 총 2기의 원자로가 건설되었으며, TMI-2 원자로의 유형은 가압경수로 형이며 출력은 2,772MWt(906MWe)로 설계는 밥콕 앤 윌콕스 사에서 맡았다. 1978년 4월에 전기 생산을 시작하여 1978년 12월 30일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하였다.

사고개요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2호기(TMI-2) 개요도[1]

상업운전을 시작한지 4개월째 되던 1979년 3월 28일 새벽 4시, 정격출력의 97%로 출력운전 중 자동밸브 장치에 이상이 생겨 원자로 중심에서 순환하는 물로부터 열을 전도시키는 장치인 주 급수 시스템인 열 교환기에 물 공급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2차 계통의 물이 줄어들면 자동 계기가 줄어든 만큼 물을 자동으로 공급하도록 설치된 보조급수기까지 작동하지 않았다. 거기에 경수로 안을 냉각하는 긴급노심냉각장치(ECCS)가 작동하였는데도 운전원의 실수로 얼마 동안 ECCS의 작동을 멈추게 하면서 통제 불능 상태가 되고 말았다. 결국 열 교환기에서 냉각수 온도를 낮추지 못하자 냉각수가 증발되면서 증기 압력이 높아져 파이프가 파괴되었고, 마침내 터빈과 원자로가 자동으로 정지되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원자로의 1차 계통이 파괴되어 냉각수가 유출되었으며 온도가 5000도 이상 올라갔다. 원자로는 온도가 급상승해 핵 연료봉이 녹아 내리고 급기야 원자로 용기까지도 파괴되었으며, 건물 내의 방사능 수치는 정상치보다 1000배나 높아졌다. 사고가 커지는 동안에도 기술자들은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여러 겹의 방어선을 설치해 사고 확대를 막는 심층 방호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다섯 겹의 보호막 중에서 네 번째 방호벽까지 뚫렸다. 통제실 계기반의 상태 표시는 계속 엇갈리는 신호를 나타내었고, 상황이 파악된 것은 사고 발생 16시간이나 지나서였다. 냉각 펌프를 작동시키자 겨우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했으나, 이미 노심의 절반 이상은 녹아 내린 뒤였다. 그 결과 원자로 중심부가 부분적으로 노출되었고, 핵연료의 외피에 입혀진 지르코늄이 주위의 과열된 증기와 반응해서 많은 양의 수소기체가 발생되었다. 이 수소 기체 가운데 일부는 원자로 중심에서 빠져나가 격납용기로 흘러 들어갔으나, 일부 방사성 기체가 대기 중에 노출된 사실은 이틀 뒤에 확인되었다. [2]

피해

피해를 우려한 주 정부는 도핀 카운티의 임산부와 어린이들을 대피시켰다. 그러자 주민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10만 여명이 일시에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그러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m 두께의 격납 용기 덕분에 사고기간 중 발전소 부근에서 받은 공중의 피폭선량은, 자연방사선량인 100mR에도 못 미치는 양으로써 반경 16km 이내 주민들의 방사능 노출 수준은 가슴 X선 촬영을 2~3번 한 정도로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아, 국제 원자력 사건 등급(INES) 체계[3]에 의한 등급 5로 분류되었다. [4]

논란

스리마일 섬을 떠나는 지미 카터 대통령의 모습, 1979년 4월 1일

이 사고가 주민들의 건강에 특별한 해를 끼치지는 않았지만, 미국 원자력산업 전반에 끼친 영향은 커서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 논란이 거세진 계기가 됐다. 비록 7년 뒤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사상 ‘최악’의 불명예는 벗었지만, 이 사고는 당시까지 세계 최악의 원전 사고였다. 가장 오염이 없고 비용이 적게 드는 꿈의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던 원전이었지만, 이 같은 시각은 한 순간에 뒤집혔다. 최첨단 과학기술 수준을 자랑하던 미국에서 일어난 사고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당시 129개 원전 건설 계획이 승인을 받은 상태였지만 이미 짓고 있던 53개 발전소만 건설이 계속됐을 뿐 나머지 계획은 취소됐다. 사고 종료 후 TMI-2원전은 영구 폐쇄가 되었고 같은 구조로 된 원자로 7개가 작동을 중지했으며,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사고 현장을 방문해 “미국은 새 원전을 짓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원전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나 불신은 증대되었으며, 새로운 원자력발전소 건립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운동도 강해졌다.

스리마일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촉발된 1979년 펜실베이니아 주 해리스버그반핵 운동

손상되지 않은 스리마일 섬의 제1원자로도 1985년까지 다시 작동되지 않았다. 여전히 방사능을 가진 채로 손상된 제2원자로의 정화작업은 198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 작업에 소요된 비용은 약 10~18억 달러이다.

사건 이후 30년 만인 2010년 2월 16일,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아 주 버크 카운티에 2기의 원자로를 가진 원자력 발전소를 새로 건설하는 원전 건설의 재개를 선언했다. [5]

같이 보기

주석

  1. “Fact Sheet on the Three Mile Island Accident”. U.S. Nuclear Regulatory Commission. 2008년 11월 25일에 확인함. 
  2.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자력 사고‧고장 등급 평가체제 및 등급별 대표 사례”. 2010년 6월 6일에 확인함. 
  3. NEWS - Home Page
  4. 운영기술분석실. “미국 TMI 원전 사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2010년 6월 6일에 확인함. 
  5. 권태호. “30년만에 ‘원자력 복귀’ 외치는 오바마”. 한겨레. 2010년 6월 6일에 확인함.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