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토아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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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토아부카(몽골어: ᠲᠣᠭᠲᠣᠭᠠᠪᠦᠺᠠ Toγtoγa Buqa, 한국 한자篤朶不花 독타불화, 한국 한자脫脫不花 탈탈불화, ? ~ 1376년)는 제5대 심양왕(재위 1354년 - 1376년)이다. 심양왕에 봉해진 연안군 왕고의 손자이자 왕덕수(王德壽)의 아들이다. 왕독타불화는 《고려사》의 표기이고 왕탈탈불화는 《원사》의 표기이다.

생애[편집]

충렬왕의 4대손으로 증조부는 강양공 자이며, 할아버지는 연안군 고이다.

아버지 왕덕수는 일찍 사망했고 기록도 실전되었다. 그는 일찍부터 원나라에 체류하며 원나라의 동궁겁설관(東宮怯薛官)이 되어 태자궁을 숙위하였다. 그 이후에 심왕이 되었다.

원의 기황후가 일찍이 고려의 공민왕이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과 태자비의 아버지 노책 등을 숙청한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던 차에, 마찬가지로 공민왕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최유홍건적의 난 때에 공민왕이 원으로부터 하사받은 옥새를 잃어버렸다고 참소하니, 원 순제는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토크토아부카를 고려왕으로 옹립하려 하였으나, 토크토아부카는 "숙부(공민왕)께서 지금 아들이 없으니 백 년 뒤에 나라가 장차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숙부께 아들이 없는데 제가 어떻게 숙부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사양하였고, 이에 원 순제는 덕흥군을 대신 고려왕으로 옹립하였다.

덕흥군과 최유는 군사를 이끌고 고려로 들어오다 고려의 최영, 이성계 등에게 격파되고, 원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그곳에 체류하던 이공수(李公遂)가 귀국한 뒤에 그를 통해 토크토아부카의 해당 발언이 고려에도 전해지자 공민왕은 그에게 후한 선물을 보내 위로하였고, 토크토아부카 역시 공민왕 15년(1366년) 8월 사신을 보내왔는데 공민왕이 그 사신을 몸소 접견하고 후하게 대우하여 보냈다고 한다.[1]

1368년에 원나라가 멸망하고 북원이 되자 고려로 가서 왕위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였다.

1376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사망과 동시에 심양왕은 폐지되었다. 심양왕 제도가 생긴지 68년만의 일이었다.

각주[편집]

  1. 《고려사》권제91 열전제14 종실 충렬왕 왕자 강양공
전임
고려 충정왕
제5대 심왕
1354년1376년
후임
(원나라의 멸망으로 인한 직제 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