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유주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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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l6560 (토론) 2019년 3월 14일 (목) 04:35 (KST)낙랑 위치 설명, 낙양에서 5,000리 떨어져 있다고 써있는데, 제가 구글 어스 지도에서 낙양에서 5,000리=1,963Km 어딘가 봤더니, 블라디보스토크 입니다. 매우 부정확한 거리 표현으로 생각합니다.[답변]

유주에 요하가 포함된 것은 연나라가 BC300년부터 BC249년까지 요하를 침공해서 점령했기 때문에 한漢나라 시대엔 포함되는 것이 맞겠지만, BC300년전 이전 춘추전국시대 유주엔 요하가 없어야 정상인데, 한나라시대 이후만 이곳에 있어서, 마치 요하가 BC300년 침공 이전에도 중화 화하족 영역이란 느낌 갖게 됩니다. BC500년전 중국 지도엔 요하는 이민족의 땅으로 구주안에 없는 지역입니다. 그 때 이지역엔 요서에 조선, 요동에 단군이 BC1122년부터 공존했던 것으로, 중화 화하족 유물은 아마도 홍산문화 유적지엔 없어야 정상이고 하가점문화로 표현하는건 사실 왜곡. 요서에 있던 조선 뿌리가 되는 상나라는 북방계 유목민 융적 娀狄으로, 서융의 딸과 북적 화친 혼인 후손 간적簡狄의 자子후손 설契는 바이칼호 남쪽 셀렝게강=설련하偰輦河에서 남하한 북방계로 후손 탕왕이 황하 남쪽까지 진출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상商나라 수도 서울을 세운 지역이 상구商丘언덕 초艸풀에 日해와 月달이 함께 있는 때 조朝아침, 일본말이 '아사' 언덕에 있는 동네를 한국인은 '달'동네로 부르고 양陽볕이 드는 곳을 양달, 음陰그늘진 곳을 음달이라고 합니다. 아사달이 단군 수도란 것은 알고 있는 사실. 상나라 국호는 상商, 수도 서울을 부르는 이름은 조朝아침, 이기 때문에, 노예국들이 수도서울 조朝로 貝화폐와 工특산품 돈貢을 노예국 스스로 가져다 바치는 조공朝貢이란 말이 생긴 것이고. 이민족 왕王임금이기 때문에 약탈하는 것이고, 강대국이기 때문에 스스로 가져다 바치는 조공을 받았던 것이고, 상나라 사람 상인商人, 사람 3명이 동굴밖에 호랑이가 있다 口 말하면 동굴밖에 호랑이가 있는 격格이 생기는데, 貝는 조개 개수를 세면 돈이 맞는지 알 수 있는데 가치가 다른 工특산품은 평가가 필요하고, 상인 3명이 격格논의해서 특산품 값을 평가된 것이 상품商品이고, 상나라가 정한 날짜에 정한 조공 상품 돈이 정正바르지 않은 족읍族邑은 복攵칠, 기마대를 보내 몰살시키는 조정朝政했기 때문에 수도 서울 조朝가 있는 상구商丘로 조공을 바치는 길이 뻣어나가는 모습을 목木나무가 성장하는 업業으로 표현한 상업商業이 글자에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수도 서울 조朝는 가歌노래하는 서울이란 뜻이죠. 그 상나라 수도 서울 조朝가 그당시 구주九州밖에 있는 요서 조朝는 양陽볕이드는 언덕이란 뜻으로, 부모 사람이 죽으면 혼백魂魄이 나뉘는데, 마음인 운云솟아오르는 구름이 올라간 하늘은 부모 마음이고, 신申번개는 아버지 태상황의 마음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시示제단을 신申번개 아버지와 소통하는 것이 천신종족, 태상황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태상황고 소통하는 제사를 지내는 수도 서울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이 태백산太白山으로, 한중 북쪽, 화산 서남쪽에 있습니다. 백이숙제 강태공은 단군후손으로, 치우천왕에 반란을 일으킨 호랑이와 곰 화하족 시조 유웅熊곰 황제黃帝에게 굴복한 구주를 돌아가면서 왕을 맡아 다스리던 단군왕검들 구이九夷, 백이伯夷는 그중에 맏이란 뜻, 화하족 황제 후손 하나라 우禹가 후侯가 강백이姜伯夷를 여呂땅이 후侯신하로 봉했기에 여씨呂氏가 생겼고, 강백이 뜻은 구이 형과 아우가 화하족 우禹임금을 모두 섬겼다는 뜻. 이민족 상商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화하족 주周나라 무왕이 후侯신하로 봉한 숙제叔齊제나라 여씨呂氏 상尙인데, 강태공姜太公이란 없던 단어를 만든 이유가, 숙叔아재비=숙부=삼촌=선대 구이 형과 아우가 모두 화하족 임금을 섬겼으니, 그 후손인 구이가 주周나라 희성姬姓 왕실 화하족 임금을 후대에도 구이 형과아우가 조상들과 똑같이 섬기는 것이 충신은 불사이군이란 뜻입니다. 주나라 왕실 희성은 숭산 주변에 있었던 유웅熊곰나라 안에 희수姬水가 있기 때문에 화하족 황제 후손 하나라 우임금과 같은 화하족 한임금을 섬긴것이 됩니다. 그래서 여씨를 강씨로 만든 것이고 태공은 사후 추서 주나라 성왕 6대조라. 건국하면 6대조까지 추서하기 때문에, 주나라가 왕이 된건 삼감의난을 평정한 BC1046년으로 BC1122년 반란후 76년이 지난 후에야 주周성왕 1대로부터 3대 희창까지 왕으로 추서 건국에 공이 없는 그냥 백伯맏이로 족장인 6대조까지 공公으로 추서한 것이 성왕때니까, 주문왕이 강姜씨를 만날일도 태공太公때부터 기다리던 현자를 만났다는 얘기도 모두 후손들이 쓴 창작 소설이 되는 것입니다. 창작 소설을 쓴 이유가 백이 숙제, 선대가 화하족에 충성했으니, 후대도 형과 아우들이 구이九夷 맏이 성姓인 강姜이 화하족과 태공때부터 시작된 주나라와 함께 했으니 모두 주나라를 따르라는 뜻입니다. 수양산 고사리도 주나라 것이라 안먹고 굶어죽었다는 고사는 화하족 사마천 뇌피셜 창작 소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라 조상 황제 이전에 단군왕검儉검소하다는게 아니라, 첨僉다, 구주를 여러사람이 돌아가면서 왕을 맡았다는 뜻입니다. 마늘=점령군에 화산남쪽 산악지역 호랑이족은 굴복했고, 숭산주변 곰은 점령군 단군 치우천왕을 탁록전쟁에서 이겨내고 재주부리던 화하족 곰 노예탈출, 구주의 주인人사람이 됐다는 것이 단군신화 마늘먹고 사람된 웅녀 얘깁니다.

쉽게 말해서 한자와 성씨와 역사에 담겨있는 숨은 뜻 백이숙제 강태공이 충신 불사이군이라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후손 친일파 역시 일본왕을 섬기는 것이 충신 불사이군이 되는 것으로, 본질은 점령군에 굴복한 것인데, 강태공이 다른 것은, 주무왕이 반란을 일으켜 상나라왕을 죽이는데 성광한 결정적 요소가. 상나라 주력군대가 황해 주변 동이東夷와 대치중이였고, 화하족에 제압당했던 구이九夷, 북방에서 남하해서 화하족을 제압한 상商, 동쪽 지역에 살다 상나라와 대치중인 동이東夷, 상나라 조공에 불만을 품고 사람을 모으다 걸린 화하족 서백과 반란을 일으킨 아들 무왕, 삼국지 상황이기 때문에, 상나라 말기엔 상나라가 최강자, 동이족인 강태공이 화하족 주나라와 손잡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 맞지만, 삼감의 난을 평정하고 동정한 주나라 배신에 어머니까지 버려가며 여씨에서 강씨로 바꾼 것은 천륜을 어긴 패륜이고, 상나라를 제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동정해서 동이족까지 평정한 주나라 신하로 구이가 모두 따라야 한다는 논리로 백이숙제 강태공 창작소설까지 쓴 것은 매국 행위가 됩니다.

그것을 거부한 증거가 기자箕子 여餘, 상나라 수도 서울 조朝아침 지명이 요서에 조양朝陽으로 옛날 구주 밖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마천은 주무왕이 나중에 알고 조선후로 봉했다는 것이 뇌피셜 창작소설로. 백이숙제 강태공 창작소설까지 써가며 상나라를 지우고 화하족 주나라에 충성을 주입하려던 화하족 주나라가. 상나라 수도 서울 조朝아침을 국호로 쓴 조선후로 봉했다는 비상식적인 얘기가 납득이 되나요?

주공단이 상나라를 해체하고 수도에 세운 위나라 후侯로 봉하면서 동생 강康에게 했던 충고 강고康告 내용에 담긴 뜻을 요약하면, 민심民心은 노예들 마음을 살펴 반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란 것이고, 민심은 이후 백성 인심과 동일시 개념이 바뀌지만, 주나라 시기엔 그냥 순장했던 민民노예입니다.

두번째가 반란을 주동할 수 있는 주요 인사들을 잘 감시하란 것이죠. 그 주요인사 중에 하나가 상나라 왕실 자성子姓에서 파생된 기씨箕氏 여餘는 BC1122년 반란일으킨 주무왕이 바로 상나라를 해체한 것은 아닌, 뒤통수를 치는 기습반란으로 급조된 70만 노예 군대를 4만5천 소수 군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대의명분 조공을 착취당하던 같은 노예국 노예로 구성된 군대라 창끝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이죠. 상나라 반격이 두려워 해체하지 않고 상나라 태자를 허수아비 왕으로 세우고 호경으로 돌아가 신하를 자처했기 때문에 주나라 건국 BC1122~BC1046년 76년에 걸쳐 이뤄진 것이죠. 반란후 기자는 그걸 보고 상나라가 망했구나 생각했고, 살던 백적白狄=상나라 조상이 적족, 지역에서 魚물고기 잡고 羊양치던 유목민 선鮮을 이끌로 요하로 상나라 수도 서울 조朝를 이전한 것이 조양朝陽=아사달, 국호에 뿌리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조선朝鮮으로 불린 것입니다. 그냥 국호를 선鮮으로 했다면 주무왕이 후侯신하로 봉했다는 사마천 뇌피셜 받아들일수도 있지만, 지워야 할 상나라 수도 서울 이름 조朝를 쓴 것은, 화하족에 굴복한 백이숙제 강태공과 달리 상나라 마지막 제帝임금 신辛 주紂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서자庶子라 성씨가 기箕가 된 기자 여餘는 구주를 통치하는 주나라 화하족 치하에서 사는 수모를 거부하고 구주밖에 있는 요하로 서울을 이전한 주권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강숙이 상나라 왕족 기자가 주도하는 반란을 감시하기 위해서 둘째 아들을 기자가 있는 요하로 보낸 것이고, 둘째 아들은 아버지 위강숙 첫번째 분봉국 강康을 성姓으로 기자에게 불렸기 때문에, 적자嫡子가 아닌 서자庶子일 가능성 높고, 그 시대는 적자와 서자가 조선시대처럼 차별되는 존재가 아닌, 아기를 안은 女가 生날, 출산하면 시始비로소 성姓나라인 가족 국가 조祖조상이 시작된 성姓나라는 宀집 아내安편안히 아기 키우는 것이 주인主人, 집주인이죠? 어머니 성姓나라를 계승하는 며느리는 화친 혼인같이 다른 가족과 한가족 중심에 있는 힘있는 며느리로, 나라 생존을 책임지는 사람이 외침으로부터 양良을 지키는 랑郞사내, 백白엄지 = 능력있는 인人사람 백伯맏이 = 대표가 가족과 부모제사를 지내는 제帝임금이고, 제사를 지내는 'ㅂ'제사그릇을 준비하는 사람이 추帚비를 들고 자기것이라 청소하는 사람이 주인, 부婦아내로, 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질 수 있는 처妻아내들 중에 으뜸인 주인으로 성姓나라 안주인安主人으로 백伯맏이 씨氏개미가 뿌린 처妻아내 씨氏들을 통솔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제나라 여씨가 강태공 백이숙제를 자처한 것을 패륜이라 하는 겁니다. 여씨는 강姜씨 대종이 아니기 때문에 구이중에 맏이 성인 백이 출신이지만 여呂씨가 된 것으로, 성姓을 계승하는 것이 며느리 적嫡이므로, 여씨呂氏가 강성姜姓이 되는 것은 어머니 계통 혈통을 모두 부정하는 패륜이 되는 것입니다.

연나라 진개 BC300년부터 시작된 BC249년까지 요하침공 먼저 친곳이 요서에 있던 동호東胡가 조선朝鮮, 동쪽에 있던 것이 동이 단군檀君, 조선은 연나라 침공에 요서를 잃고 옛만리장성 천리밖 하얼빈 인근으로 이동해서 조선 창업자 부夫사내 여餘를 국호로 쓰면서 조선을 계승했고, 상나라 달력을 쓰면서 단군 단기처럼 상나라 시조 설契북방계 조상을 계승한 것입니다. 단군은 연나라에 평양으로 밀렸고, BC194년 위만에 속아 평양을 뺏기고 망하면서, 평양지역에 낙랑과 맞물려 중국 유물들이 출토되는 이유가 되는 겁니다. 단군 마지막 왕은 해로를 따라 남하 남쪽에 한韓을 세웠기 때문에 한강韓江으로 써야 정상인데 소리가 같다고 중국에 사대하는 조선때 화하족을 뜻하는 한수漢水를 쓰면서 중국과 한가족인 것을 지명에 남긴 것이죠. 마한馬韓은 BC17년부터 부여-고구려에서 남하한 남부여 백제 온조와 전쟁을 시작 망했기 때문에 한반도에 사는 우리 조상은 단군조선 둘 다 해당되는 것. 단군이 남방계인지 북방계인진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단군 태백산은 한반도나 만주가 아닌, 현재 중국 서쪽 한중 북쩍에 있는 태백산이란 것. 그 산악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호랑이족 동쪽 소림사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 곰족, 한중부터 강하까지 흘러 장강으로 연결되는 강이 한수漢水 다른 이름이 하수夏水란 것이 지명 강하夏=우한漢에 남아있는 것이죠. 언급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세계의 중심에 있는 나라 중국, 중국역사의 중심은 화하족이라는 중화, 화하족들이 주로 중국 황하 남쪽, 중국 서쪽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중국과 대만 공통분모가 국호 화華, 같은 화하족이라는 뜻입니다. 중공은 화를 요약해서 쓰는 간자체로 쓰는데 같은 뜻입니다.

유주에 요하가 포함되는지 안되는지는 단군조선, 조선후로 봉했다는 사마천 소설과 맞물려 중요한 기준점. 고대 국가 중국 통일 통치를 의미하는 구주를 분류하는 유주엔 요하가 없는게 정상. 홍산문화 유목민 흔적은 상나라 조선 흔적, 수백년 동안 중국을 통치하고 조공을 받았으니 영향없을 순 없는 것인데, 그렇다고 상나라 유적을 하나라 유적이라는 하가점夏家店 명명 이름 자체가 왜곡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한漢나라 진나라 통일 이전에 유주를 나타내는 지도가 이 페이지엔 필요하다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