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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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양이 양의를 아꼈다는 것은 《삼국지》촉서 권40 유팽요이유위양전에 나오는 바입니다.

亮深惜儀之才幹,憑魏延之驍勇,常恨二人之不平,不忍有所偏廢也。 (제갈양은 양의의 재간을 심히 아꼈고, 위연의 효용에 의지하였으므로, 항상 두 사람이 화평하지 못함을 한하였으나, 어느 한 쪽을 차마 폐하는 바는 없었다.)

그리고, 촉한의 신하들이 전부 양의를 죽이려 했다는 증좌가 어디 있습니까? 《삼국지》촉서 권40 유팽요이유위양전에서는

十三年,廢儀為民,徙漢嘉郡。 (건흥 13년, 양의를 폐해 서민으로 삼고, 한가군으로 유배시켰다.)

이라고 하고, 《삼국지》촉서 권33 후주전에서는

十三年春正月,中軍師楊儀廢徙漢嘉郡。 (건흥 13년 봄 정원, 중군사 양의를 폐해 한가군으로 유배시켰다.)

이라고 할 뿐입니다.

그리고, 양의가 한가군으로 유배된 후에 모반을 꾀하려 했다는 증거는 어디 있습니까? 《삼국지》촉서 권40 유팽요이유위양전에서는

儀至徙所,復上書誹謗,辭指激切,遂下郡收儀。儀自殺,其妻子還蜀。 (양의가 유배지에 이르고도, 다시 글을 올려 비방하여, 그 언사가 격렬하므로, 마침내 군에 하명하여 양의를 사로잡으라 했다. 양의는 자살했고, 그 처자는 촉군으로 돌아왔다.)

이라고 할 뿐입니다. 모반하려는 자가 조정에 비방하는 글을 올립니까? 그리고, 촉한 조정에서는 양의를 사로잡으라고 했을 뿐입니다. 자결은 양의의 자의로 행해진 것입니다.

양의와 위연이 불화한 까닭은 위연 토론 문서에 이미 올렸기 때문에 다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Synparaorthodox (토론) 2009년 10월 13일 (화) 11:27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