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선비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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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어[편집]

다른 언어판의 표제어를 참조해, '~족'을 빼고 선비로 표제어를 이동할 것을 제안합니다.--백두 (토론) 2009년 4월 4일 (토) 22:58 (KST)

흉노족과 오환족 또한 흉노오환으로 표기하고 있어, 통일성을 위해 표제어 이동에 찬성합니다. --BIGRULE (토론) 2010년 12월 8일 (수) 07:16 (KST)
맥락 없이 '선비'라고 하면 민족보다 호칭으로서의 선비를 떠올리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첫째로 나옵니다. 따라서 현재 선비 표제어를 가진 호칭 글은 그대로 둠이 합당하고, 이 글의 '족'을 빼려 한다면 선비 (민족)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Alphanis (토론) 2011년 8월 14일 (일) 15:32 (KST)

[선비 (민족)]으로 옮겼습니다. --Puzzlet Chung (토론) 2012년 10월 16일 (화) 17:42 (KST)

관롱집단이 왜 선비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이죠?[편집]

자꾸 모 익명의 편집자가 관롱집단은 산시성과 간쑤성 일대 선비족과 토착 한족 지배층의 연합세력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고 한족은 국가 건설에 완전 배재되었다는 식으로 서술을 하려고 하는데 토론 부탁드립니다.

당나라 초기부터 중기까지 당나라 군대는 오늘날과 같은 오합지졸의 대명사가 아니라 막강한 무사집단으로 구성된 강병이었다. 당(唐) 왕조 초창기까지 당군은 수도 장안을 중심으로 뻗어나가 남북조와 수당 교체기 혼란을 끝낸 막강한 무사집단인 '무천진(武川鎭) 군벌'이 연합하여 일으킨 군대였다. 이들은 위진남북조시기를 거치며 중국에 정착한 선비족들과 기존 한족간의 혼인을 통해 만들어진 혼혈집단으로 알려져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567062 https://www.asiae.co.kr/article/2018103015092568227

이 링크에서도 나와있듯이 북위나 당나라의 건설은 단순 선비족만이 아닌 한족도 다수 참여했음을 알 수 있는데 왜 선비족 국가라는 주장만을 주창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112.187.193.47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관롱집단 문서를 완전히 새롭게 보강하였으니 참고바랍니다. --종코 (토론) 2019년 10월 27일 (일) 01:39 (KST)
감사합니다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그ㅐㅐ11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20세기 중국 역사학계의 거두 진인각(陳寅恪)은 북주·수·당을 이어간 중심세력을 관롱집단(關朧集團)이라고 분석했고, 관롱집단의 핵심은 육진의 하나였던 무천진(武川鎭) 출신의 군벌들이라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탁발선비라는 부족의 한 갈래인 무천진 군벌이 탁발씨 종실의 대체세력으로 등장해서 탁발선비의 제국으로 가는 길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관롱집단은 선비족인 우문태가 북주를 건국했을 때 내몽고 지역에 있던 선비족 무사 집단입니다. 그 당시 내몽고에 토착 한족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관롱집단에 한족이 존재했다는 사료는 존재하질 않습니다.관롱집단은 말했듯이 선비족 혈통끼리만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건 양견과 이연의 친인척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학자에는 진인각, 조미원, 토리야마 등이 있으며 이미 출처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출처에 기반된 글로 지우지 마십시오.--203.226.207.21 (토론) 2019년 10월 28일 (월) 22:12 (KST)

1.관롱집단이 어디 무천진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입니까? 2.선비족 혈통끼리만 결혼했다는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시지요. 3.진인각은 애초에 호한융합설을 지지하는 학자입니다. 이렇게 오용되라고 관롱집단설을 주장한게 아닙니다.그ㅐㅐ11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03:16 (KST)


"현대 중국의 유명한 문필가 위추우위(余秋雨)는 이에 대해 중국의 유명한 민족사학자 왕동링(王桐齡)의 논문을 인용하여 “당고조 이연과 당태종 이세민의 생모는 선비족이다. 이세민의 황후 역시 선비족이다라고 간결하게 정리했다."
"8주국 대장군 중 대야호(大野虎)는 당 고조(高祖) 이연(李淵, 566 ~ 635)의 조부이고, 독고신(獨孤信)은 수 문제(文帝) 양견(杨坚, 541 ~ 604)의 장인이자 당 고조 이연의 외조부이다. 총사령관 우문태는 당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 599 ~ 649)의 외증조부이다. 호한체제(胡漢體制)를 통해 유지되었다고 하는 수당시대의 연원은, 알고 보면 8주국 12대장군제를 만든 우문태의 발상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이들은 끼리끼리의 결혼을 통해 서로간의 유대관계를 강화해 나아갔다."

이연 자체도 원래 성이 선비족인 "대야" 입니다. 중국 사학계에서는 호한체재니 뭐니 말하지만 결국은 관롱집단은 선비족끼리의 혼인으로 이루어진 무사집단입니다. 8주국 무천진 관롱집단은 선비족 거주지이며 탁발선비가 나온 곳입니다. 관롱집단에 후원했던 선비족 우문태 또한 선비화를 진행하였습니다. 무천진 군벌에 한족이 존재했다는 사료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피지배민으로 한족이 존재했을지 몰라도 예를 들어 한반도에 침략한 홍건적이 잡혀서 노비가 되었고 한반도에 존재했다고 해서 그 한족 노비들을 마냥 지배층으로 인식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203.226.207.21 (토론) 2019년 10월 28일 (월) 22:23 (KST)

당 고조 이연의 부계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 없네요. 댁이 제시한 주장에 어디 근거가 있습니까 산서성에서 이루어진 관료집단인데 산서성에 어디 선비족만 있습니까?

사료를 드리죠 우리 이씨는 예전에 농서지방에서 귀갑과 보옥을 상당수 소유할 정도로 부유했다. 할아버지 대에 이르러 제왕과 인척이 되었고, 내가 의병을 일으키자 사방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어 수개월 지나지 않아 천자에 올랐다. 이전 시대의 황제로 말하자면 대다수는 미천한 출신들로 군대를 지휘하고 진형을 포진시키느라 고생하면서 결코 안심하고 살지 못했다. 공은 대대로 녹을 받는 명가로 회복했고, 지위가 매우 높고 중요한 직무를 담당하는 관직을 지냈는데 어찌 고작 문서 담당 관리 출신인 소하, 조참과 같을 수 있겠는가? 오직 나와 공만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선현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창업한 군주와 신하 모두 귀족으로 하은주 3대 이후 모든 왕조는 우리 당나라에 미치지 못한다. 고조는 팔주국 당공의 손자이며, 북주의 명의와 수나라의 원진 두 황후의 외척으로 북주 태사 두의의 딸과 결혼하여 북주 태조의 사위가 되었다. 재상 소우, 진숙달은 양나라와 진나라 제왕의 아들이었고, 배구, 우문사급은 북주 태사와 수나라의 부마도위였으며, 양공인, 보덕이, 두항은 이전 왕조 사보의 후손이었다. 배적, 당검, 장손순덕, 굴돌통, 유정회, 두궤, 두종, 시소, 은개산, 이정 등은 모두 귀족의 후예였다. 한고조 유방, 소하, 조참, 한신, 팽월의 가문들에 비하면 어찌 가문의 등급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소면(蘇冕) 당 고조 본인도 한족의 출신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그ㅐㅐ11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03:16 (KST)


마지막 정리 선비족 탁발씨가 북위를 건국하고 효문제 또한 선비족이며 그 북위가 서위 동위로 나뉘고 동위가 북주 가 됩니다. 선비화를 강하게 하였던 북주가 수나라가 되어 중국을 완전히 정복하였고 그 관롱집단에서부터 당나라가 됩니다. 호한체재라는 게 허상인 이유가 피지배층에 분명 한족들이 존재하지만

선비족 정복 왕조의 친인척 모두 선비족이며 관롱집단이라는 것이 선비족 거주지에서 나타난 것을 보면 북위부터 수 당 까지 선비족 정복왕조로 보는 것이 더 마땅합니다. 특히 선비화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던 북주 때 지배층이던 관롱집단에(우문태가 포함된 지배층) 한족이 있었다면 선비화 정책 자체를 추진하지 못했을 겁니다.--203.226.207.21 (토론) 2019년 10월 28일 (월) 22:28 (KST)

선비족 탁발씨가 북위를 건국하고 한화정책을 실행해서 관중지방에 남아있던 상당수의 선비족이 한화됬으며 효 문제 치세에 한족관리의 비중도 60% 이상 늘어났습니다. 이래도 호한체재가 아니라는 설명이 가능합니까?그ㅐㅐ11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03:16 (KST)
즉 북주부터 수 당 왕조의 친인척들을 살펴보면 선비족끼리만 결혼했었으며 이건 뭐 완전히 선비족끼리 다 해먹은 왕조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친인척 중에 한족은 없습니다. 이러한 지배층의 친인척 관계만 선비족들만 보더라도 학자들이 북주 수 당의 왕조는 선비족의 왕조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쪽이 주장하는 호한체재 어쩌고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빠져 있습니다. 관롱집단에 한족이 존재한 기록이 있는가 X(없음) 관롱집단에 선비족들이 존재하는 사료가 있는가O(존재함) 그쪽이 주장하는 것은 마치 몽골의 원나라가 한족을 정복하고 원나라를 건국했다고 이걸 몽중체재로 생각하는 것과 같으며 영국이 남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두었다고 남아프리카를 영-남아체재로 부르는 것, 현재 서북공정 몽고공정 등 칭기스칸을 중국인이라고 부르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보니까 출처를 아예 싸그리 지우거나 내용을 마음대로 바꾸던데 그건 반달이라고 부르는것 같습니다 이상.--203.226.208.179 (토론) 2019년 10월 28일 (월) 22:36 (KST)
위에 잘 설명을 해주셨네요.--115.23.23.39 (토론) 2019년 10월 28일 (월) 23:36 (KST)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미국학계에서도 수나라 당나라는 선비족 정복왕조인 것이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관롱집단설 자체가 진인각이 내세운 이론이고

https://www.asiae.co.kr/article/2018103015092568227 그의 학문적 업적 가운데 ‘관롱집단설(關(농,롱)集團說)’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수나라, 당나라는 순수한 한족의 나라가 아니라 위진남북조 시대의 호족(이민족)과 한족이 결합해 탄생한 혼혈족이 세웠다는 이론으로 지금까지 중국 역사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수.당 제국의 창업자 및 창업자 집단은 관롱 즉 관중(關中)과 농우(陇右)를 지역기반(오른쪽 지도 참조)으로 하는 정치집단이었다. 이 집단을 주도한 것은 서위(西魏)의 실력자이자 북위의 실질 창업자인 우문태(宇文泰)였다. 우문태는 지역적으로 관롱을 중심으로 하고, 종족적으로 호(胡 즉 선비족)와 한(漢)을 혼합하고, 무력과 재지를 겸수한 자들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냈다. 북주-수와 당나라 3백년의 통치계급의 변화 역시 이 관롱집단의 흥망성쇠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나라 초기까지 이 집단의 힘은 강성하여, 황실은 물론 창업 공신, 장상, 대신들 거의 모두가 이 집단에서 배출되었다. 그러나 관롱집단 출신이 아닌, 무측천(여황제)이 실권을 잡고 이 집단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이미 150여년 동안 권력을 잡아왔던 이 집단도 이미 부패하고 쇠락한 상태여서 당 현종 때에 이르러 파괴가 완성되고 관롱집단은 종결되었다.

진인각은 애초에 관롱집단이 호한이 융합됬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쪽의 주장처럼 순수히 선비족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지 않는다고요. 즉 관롱집단설을 주장하면서 순수 선비족설을 같이 주장하는것은 굉장히 이윤배반적입니다. 그ㅐㅐ11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03:05 (KST)

"수왕조의 창조자인 양견은 화북평원 서단 가까이 (홍농군화암현 (弘農郡華陰県)섬서성陝西省 위남지구 화암현)에 본관이 있는 오래된 명족에서 태어났다. 그 조상은 육대에 걸쳐 북조의 이민족 왕조의 관인이며 지배계층의 선비족 엘리트 계층과 통혼으로 권력을 유지해 왔다. 양견의 아버지인 양충은 최초 북위를 섬겼으나 534년 북위가 서위와 동위로 나뉘어질 때 양충은 서위의 건국자인 우문태의 사절로서 우문태를 섬겼다. 양충은 공을 세우고 수국공으로 봉해졌는데 5세기말에 한화정책으로 인해 한족 성씨로 변형되었던 선비족의 성씨들을 우문태가 그의 부하들을 상대로 선비족 성씨를 부활시켰을 때 (로성재행虜姓再行) 양충도 원래의 성씨인 보육여씨로 로성재행하였다." 라고 Arthur F. Wright라는 미국 동양사학자가 주장하였습니다. Arthur F. Wrigh의 경우 많은 미국의 사학자들에 영향을 준 사람으로 유명하고요.[1] 조미원(姚薇元)은 양충은 원래 몽골어로 버들의 일종인 불스칸(БУРГАС)을 의미하는 보육여라는 성씨를 사용했다고 주장합니다. 보육여씨는 안문여씨(雁門茹氏) 유연의 후예. 조미원이 쓴 북조호성고를 보면 100 개의 선비족 성씨가 한족 성씨로 바꿨다가 다시 로성재행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들은 문헌과 사료를 봐도 한족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선비족이며 선비족들과 친인척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진인각이 수나라 당나라를 선비족이 건국한 선비족 왕조로 주장한 것입니다. 이상한 블로그 글 이야기 제외하고 출처로 기반이 된 글을 마음대로 삭제하면서 토론 운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115.23.23.39 (토론) 2019년 10월 28일 (월) 23:56 (KST)

원문 제시 바랍니다. 관롱집단이 순수 선비족이 아닌 호한융합집단이라는 근거 차례대로 제시할테니,반박 부탁합니다.^^

역사학의 거목 천인커(陳寅恪)는 수·당 왕조가 호족(胡族·오랑캐족)과 한족이라는 혼혈족이 세운 것이라는, 기존 학설을 완전히 뒤엎는 ‘관롱(關)집단설’을 발표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0222024005 그의 학문적 업적 가운데 ‘관롱집단설(關(농,롱)集團說)’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수나라, 당나라는 순수한 한족의 나라가 아니라 위진남북조 시대의 호족(이민족)과 한족이 결합해 탄생한 혼혈족이 세웠다는 이론으로 지금까지 중국 역사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080223/8547493/1 우리나라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의 근간이 된 수·당 건국세력이 한족이 아니라 선비족과 한족의 혼인 집단인 ‘관롱집단’이라고 처음 주장해 중국 사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현재는 정설이 되었고, ‘동북공정’의 이론적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중국의 지배세력이 호한병존(胡漢倂存)세력이라는 서울대 박한제교수 이론의 원전격이다.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0225 隋代와 唐代에 수도였던 장안과 감숙성 일대를 근거로 삼았던 문벌귀족 그룹을 關隴集團이라고 부르는데, 당나라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룹이기도 하다. 西魏와 北周 그리고 隋와 唐으로 이어지는 네 왕조 모두에서 핵심 상층부를 장악했을 정도로 뿌리 깊은 집단이었다. 때문에 네 왕조의 황실에서도 쉽게 그들을 배척하지 못할 정도였다.

누누이 말한 것처럼, 이 집단은 서북 이민족과 한족이 융합돼 있어서 한족이라고 부르기도 그렇다고 오랑캐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집단이다. 혈연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오랑캐와 한족의 계보를 모두 갖고 있는 독특한 집단이었고, 그것이 통일왕조의 중용한 동력원이 되기도 했다는 점은 이전 글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집단 하나만으로 중국 전역을 통치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황실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 역시 절대적인 충성심이라기보다는 집단의 대표라는 인식이 더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577 그ㅐㅐ11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03:16 (KST)

자 그쪽에서는 해외 위키백과의 내용을 들어 관롱집단이 순수 선비족으로만 되있다고 주장하고 계시죠. 과연 그럴까요? Chinese nobility 문서를 봅시다


The northwest military aristocracy was where the Sui dynasty Emperors originated from[35] and they emphasized that their patrilineal ancestry was ethnic Han,[36] claiming descent from the Han official Yang Zhen.[37] and the New Book of Tang traced his patrilineal ancestry to the Zhou dynasty kings via the Dukes of Jin.[38] The Sui Emperors had maternal Xianbei ancestry from a woman of the Xianbei Dugu family.

The Guanzhong noble families of Han Chinese background married the Northern Zhou Xianbei Yuwen family.[39][40]

The Tang dynasty Imperial family claimed to be paternally descended from Laozi (whose personal name was Li Dan or Li Er),[41][42][43] the Han dynasty General Li Guang,[44][45][46] Qin General Li Xin and Western Liang ruler Li Gao. This family was known as the Longxi Li lineage (隴西李氏). The Tang Emperors had Xianbei maternal ancestry,[47][48] from Emperor Gaozu of Tang's Xianbei mother Duchess Dugu.[49][50] Ancient Han ancestry was asserted by the Tang and Sui Emperors.[51] [52]

The northeastern Chinese aristocracy during the Sui-Tang period was of pure Han blood, while they looked down upon the northwestern aristocracy which was of mixed Han and Xianbei blood. The hybrid mixed blood Chinese and Northwestern (Guanlong) 關隴集團 aristocracy was where the Sui dynasty Emperors and Tang dynasty Emperors originated from.[53][54] It came from their Xianbei mothers.[48][55][56][57][58][59][60] Dugu Tang Sui Guanlong[61][62] Sui.[63][64] China was reunited by them.[65][66][67][68] The Northeastern aristocracy supported Wu Zetian while the Northwestern aristocracy opposed her.[69] The northwestern aristocracy was countered by the northeastern aristocracy who were supported by the Sui Yangdi Emperor.[70] There was not necessarily unity on political positions within both the northeastern and northwestern aristocracies.[71]

첫번째 문단에서는 수와 당의 황실이 자신들이 한족임을 주장하며, 당서에서는 자신의 기원을 주나라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는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문단에서 고대 한족 조상은 당과 수 황제에 의해 주장되었음과 동시에 모계는 선비족이다. 이런식으로 주장하고 있죠. 어딜 찾아봐도 순수 선비족 혈통이라는 내용은 없습니다.그리고 마지막 문단에The hybrid mixed blood Chinese and Northwestern (Guanlong) 關隴集團 aristocracy was where the Sui dynasty Emperors and Tang dynasty Emperors originated from.이라고 되어있죠? 이는 즉 관롱집단이 호한혼혈 집단임을 의미하는겁니다. 그ㅐㅐ11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03:45 (KST)


그건 chinese nobilty지 선비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며 출처가 전혀없는 그냥 그럴 것이다 글이군요. 북위부터가 선비족이 세운 국가이며 북위에서 동위 서위 그리고 중국을 정복하고 통일한 북주의 우문태가 선비족이며 관롱집단 자체가 선비족들만 배출한 지배층인데 하긴 피지배층으로서 한족이 섞일 순 있겠지만 그건 선비족의 정복에 의한 것이죠. 말은 똑바로 합시다. 북위를 선비족이 세운 것 인정하죠? 북주의 지배자가 누굽니까? 선비족 우문태입니다. 인정하죠? 보육여 또한 선비족입니다.

선비족의 정복에 의한 혼혈이 있겠죠. 예를 들어 스페인 사람이 남미를 정복하고 스페인인과 남미인이 혼혈화되서 히스페닉을 형성합니다. 그 글도 보니까 매우 비슷한 이야기네요. 근데 문제는 출처가 없지만.--115.23.23.39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04:16 (KST)

선비족을 떠나 관롱집단과 수당 황실에 관한 내용입니다. 애초에 관롱집단과 수당 지배층 자체가 액면 선비족만이 아닌 한족도 충분히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자료구요.
출처를 무슨 신문 기사로 내고 있는 거 자체가 너무 신뢰성이 없군요--115.23.23.39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04:17 (KST)
반달 지속하고 토론하자고 물타기하길래 기다렸더니 무슨 드라마 내용같은 신문 기자가 쓴 글이 나오고 출처없이 북위부터 이어진 선비족의 한족 중국인 정복은 선비족 지배층과 선비족을 섬기는 한족의 뒷골반에 의한 것인 것을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사실 남미의 히스페닉처럼 선비족이 지배한 북조의 아름다운 지배로 인한 혼혈화였다" 이런 근거도 없고 출처도 없고 학자도 없는 이야기나오는데 실망입니다. 선비족이 힘내서 쎄게 으샤으샤 정복한 한족들의 수장이였던 최호도 이건 아니다 싶다고 말할 겁니다.--115.23.23.39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04:26 (KST)
중요한 건 선비족의 북위 그리고 선비족의 동위 서위 선비족의 북주 북제의 중국인 한족 정복과 지배로 인해 혼혈 배출인 것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문태의 선비족 지배계층에서 갑자기 한족으로 바뀌겠습니까? 선비족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어디서 감히 피지배층이 하면서 바로 정복했겠죠. 왕조 자체가 탁발 선비족에서 나온 국가입니다. 원나라 때 몽골인의 이름이 한족화 이름으로 불렸던 것처럼 조미원에 의하면 효문제 때 선비족들이 한족 성씨를 썼지만 우문태일 때 다시 복성했습니다. 지배층들이 다 한족 성씨 쓰는 선비족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기 나온 chinese noblity라는 출처없는 글도 참 미화해서 썼지만, 근본은 선비족 지배층과 한족 피지배층에 의한 혼혈 배출 이라는 것이 딱 정답입니다. 현재 남미와 비슷하죠--115.23.23.39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04:34 (KST)

C. P. Fitzgerald (1933). Son of Heaven.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174–. ISBN 978-1-107-49508-1., China – The Sui dynasty". britannica.com,Jeroen Duindam; Tülay Artan; Metin Kunt (11 August 2011). Royal Courts in Dynastic States and Empires: A Global Perspective. BRILL. pp. 177–. ISBN 978-90-04-20622-9.

각주 몇개만 열어봐도 출처가 딱 나오는데 출처없는 글이라는 헛소리를 하고 계시네요 그쪽은 출처 있는지? 관롱집단 자체가 산서성에 있었고 단순 혼혈 뿐만이 아닌 순수 한족 또는 순수 선비족들도 존재했다는 자료인데요? 그리고 뉴스 출처라 할지라도 그쪽의 일방적인 근거없는 주장보단 훨씬 권위있는 자료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반론이 있기는 한지?

Sui-Tang period was of pure Han blood, while they looked down upon the northwestern aristocracy which was of mixed Han and Xianbei blood. The hybrid mixed blood Chinese and Northwestern (Guanlong) 關隴集團 aristocracy was where the Sui dynasty Emperors and Tang dynasty Emperors originated from. 이 문단에 어디 한족 '피지배층'과 선비족 '지배층'이라고 서술되어 있습니까? 그냥 호한이 섞였다는 식의 서술로 되어있지 근거도 없이 본인 입맛에 맞게 왜곡하지 마세요. 애초에 문서 자체가 '중국 귀족'에 대한 문서인데 피지배층이 뜬금없이 왜나옵니까? 근거를 대고 얘기를 하세요. 하실거면.

그ㅐㅐ11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15:56 (KST)


다른 거 필요없이 딱 이것만 한 번 증명해봐라 하면 답이 나옵니다. 선비족이라는 이민족의 지배한 북위와 북제 중국을 정복 통일한 북주가 제발 중국인일 거야라고 중국 사회에서 중국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온갖 미화를 할지 모르지만 북주의 황제가 누굽니까 선비족 집단 우문부에서 나온 명실상부 선비족 우문태입니다. 보육여(양충)이 우문태의 부하인데 북위부터 기세등등한 선비족 무사들은 어디가고 보육여(양충)가 왜 한족입니까? 황제가 선비족이며 그 군벌이 선비족인 국가인데 갑툭튀 갑자기 한족이 나타나? 그럴 일이 없죠. 그래서 진인각은 말헀죠 관중과 농서 이 지역이 바로 명실상부 내몽골 지역으로 선비족의 본거지입니다. 이렇게 물어보고 싶네요. 북위부터 북주까지 황제와 그 지배세력에 한족이 누가 있습니까? 무천진 군벌 중에 한족이 누가 있습니까? 왜 무천진 군벌 관롱집단의 친인척은 왜 죄다 선비족입니까? 친인척 중에 한족이 누가 있습니까? 절대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 없기 때문이죠. 선비족 본거지인 내몽골 관중 농서에 한족이 왜 있을까요? 남쪽에 한족이라는 적들이 존재하는데 재정신 아니고서야 누가 한족을 군사로 두며 북조가 강력한 이유가 기마 유목민족인 선비족 군벌이 존재했기 때문인데 다른 선비족들 왜 가만히 있나요? 우리가 가장 망각하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조미원이 말했죠. 북위 효문제 때 100성이 넘는 선비족 성씨가 한족 성씨를 썼다. 이들 지배층이 다 선비족입니다. 그리고 우문부의 우문태가 선비족 성씨를 로성재행시켜 부활시켰죠. 진인각은 관중과 농서 지역은 선비족 본거지인 내몽골 지역이며 관롱집단이야말로 선비족으로 이우어진 지배계층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자꾸 한족일 것이다 말하는데 친인척에 한족이 있습니까? 우문태를 비롯해 죄다 친인척이 선비족인데. 즉 관롱집단에 한족이 누가 있는지? 북위부터 북주까지 한족 지배층이 누가 있는지? 지배층이야 말로 선비족 황제들의 친인척들인데 이들 중에 한족이 도대체 누가 있는지? 왜 친인척이 죄다 선비족인지 북위 동위 서위 북제 북주 선비족 황제가 건국하지 않았으면 누가 건국했는지 선비족 황제를 섬기는 죄다 엘리트 선비족 기마무사들 밑에서 무슨 한족이 먼치킨인줄 아는데 남조로 이동한 한족들은 왜 그렇게 정복만 당했는지 물어보면 딱 답이 나옵니다.--223.62.222.46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10:35 (KST)
관롱집단이 꼭 무천진 내몽골 선비족만이 존재한게 아니라 그쪽 애들이 관중지방에 내려와서 한족들과 함께 손을 잡아 관료집단을 형성한 것이라고,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 고조 이연과 수나라 황실에서 조상을 주나라,또는 한나라 에서 찾고있다는 근거까지 드렸는데 왜 자꾸 글을 안읽고 계속 친인척을 들먹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미원이 말했죠. 북위 효문제 때 100성이 넘는 선비족 성씨가 한족 성씨를 썼다. 이들 지배층이 다 선비족입니다. 그리고 우문부의 우문태가 선비족 성씨를 로성재행시켜 부활시켰죠. 진인각은 관중과 농서 지역은 선비족 본거지인 내몽골 지역이며 관롱집단이야말로 선비족으로 이우어진 지배계층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발언에 대한 최소한의 인용과 출처 부탁드립니다. 발언에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근거없는 주장은 그냥 억지죠. 그리고 수나라 양제의 보육여씨는 부친이 하사받은겁니다. 원래부터 그랬던게 아니라. 그리고 남쪽에 적이 한족왕조라는건 북조의 지배층이 선비족으로만 이루어졌다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애초에 북조 자체가 한족이 살던 지역인데다가,관롱집단은 애초부터 민족적 구분이 아니였습니다 그렇게 베타적인 집단도 아니였고 중국 통일에 한족들의 협조가 필요함은 누구나 잘 알텐데 왜 굳이 부정하려고 있지도 않는 근거와 논리 갖고오고 계속 우기시는지. 제발 제가 근거 들고오면 출처가 없다고 우기지 마시고 그쪽이야말로 출처 들고와서 주장을 펼치세요. 출처 엄청 제시했구만 제가 가져온 출처는 공신력 없는 거고 님이 주장하는 무근거 논리만 출처가 있는 것입니까?

관롱집단설은 진인각이 창조한 개념인데 우문태가 북위후기에 분열후 서위의 권신으로 북주로 발전하는데 아들이 찬위한다. 서위시 한화를 통해 호한지간의 단결로 북주를 세워 북제를 멸망시키고 수당의 기초가 되는데 관중의 명문대족들과 연합한 체제가 관롱집단이다. 한대이후 관료제로 지방상임후 호족대지주로 망족이 되어 지방에 정거하고 대족지주집단이 되어 중앙세력과 대립한다. 선비족들은 무장집단으로 우문태의 관중본위정책으로 병력을 보유한 세력들을 흡수하여 한인들을 내세우고 통치를 한다. 호족들의 사병을 흡수한 부병제로 전환하여 농사와 병행시키고 후에 지방할거세력으로 다시 정립되고 만다. 부병제는 병권분할로 지방사병들을 중앙정권에 흡수시키고 호한융합정책으로 호인들이 한화를 추구하여 수당건립후 점차 관롱집단으로 부패하고 황권에 도전하여 무칙천시 대결로 쇠락하고 만다.

중국 연변대학교 교수 박기수님 발인데 이것마저 공신력 없는 근거라고 부정할 수 있을지??

또 관롱집단설을 주장한 진인각이 관롱집단이 '호한 체재'를 지지한다는 근거 하나 더 드리죠.

[서울신문]1944년은 중국 역사학계에 큰 획을 그은 해로 기록돼 있다. 역사학의 거목 천인커(陳寅恪)는 수·당 왕조가 호족(胡族·오랑캐족)과 한족이라는 혼혈족이 세운 것이라는, 기존 학설을 완전히 뒤엎는 '관롱(關)집단설'을 발표했다. 한나라와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조로 꼽히던 당나라가 사실은 오랑캐 주도 아래 창건되고 통치됐다는 주장이다.

위진남북조시대 우문태의 통솔 아래 장안(長安·현 시안) 부근을 중심으로 관롱(현 산시성과 간쑤성) 일대에 자리잡은 선비족, 그리고 그들과 결합한 토착 지배층을 '관롱집단'이라고 부른다. 관롱집단설은 바로 그들이 수·당의 지배층으로 군림했다는 것이다. https://v.kakao.com/v/20080222033214954?from=tgt 이래도 부정하실겁니까? 뚜렷한 반론을 제기하세요 진인각 학자가 제시하지도 않은 주장가지고 억지 부리지 마시구요 그ㅐㅐ11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15:56 (KST)

문서 보호[편집]

편집분쟁이 장기화된 것으로 확인되어 문서를 보호합니다. 문서 판은 어느 한 쪽의 판도 아닌 현재의 되돌리기 분쟁이 시작되기 이전 상태에 해당하는 2019년 8월 14일 (수) 21:26 판으로 임시 복구하고, 문서를 보호하였습니다. 서로 토론에 임하여 문서 편집의 방향을 정하여주시고, 토론을 일방이 회피한 뒤 보호해제 이후에 문서편집을 강행하는 경우에는 편집 방해로 차단사유가 될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Sotiale (토론) 2019년 11월 2일 (토) 00:23 (KST)


@Sotiale (토론 선비족들은 야욕을 가지고 중국인 한족들에게 항복하라는 서(書)를 보냈고 중국인들을 피지배민족으로 전락시켰다. 무천진 출신들인 선비족에게 대항하던 수많은 중국인들은 무참히 노예로 전락하였고 선비족을 떠받드는 선비화(鮮卑化)된 한족(漢族)들만이 관료로 임명되었다. 선비족은 중국에 북위와 북연을 세웠는데 선비족의 북위를 이어 북주, 북제는 남쪽의 중국인(漢族)들을 완전히 복속시키고 대륙을 통일하였다. 북주의 선비족들은 복속된 남조의 한족(漢族)들에게 선비족의 성씨와 문화를 쓰기를 강요시켰다,선비족은 중국과 만주의 징검다리 지역인 하북성에 있는 중국인들을 정복하여 화북을 재패하였으며 문화적으론 선비족보다 하급인 중국인의 언어와 문화를 지향하였다. 하지만 북주 때는 청나라의 여진족이 한족(漢族)들에게 수치스로운 변발을 강요했던 것처럼 선비족들도 피지배인 한족들에게 선비족의 풍습과 선비족의 성씨를 따를 것을 강요하였다. 이러한 선비족들이 중국이라는 국가에서 확실한 지배층이 되어가는 과정은 선비족이 북위를 세우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북제, 북주, 수나라, 당나라까지 선비족의 무천진 8주국 관롱집단들이 중국의 지배자로서 한족(漢族)들은 피지배민족으로서 계속 계승되었다. 북주의 우문태 때는 몽골제국과 여진족의 청나라가 피지배민족인 한족(漢族)들에게 했던 정책들처럼 피지배민족인 중국 한족(漢族)들에게 선비족 풍습을 강요하고 선비족의 성씨를 쓰도록 강요했다.

이 단락이 분쟁이 발생되는 내용입니다. 토론 동안에는 삭제 바랍니다.그ㅐㅐ11 (토론) 2019년 11월 2일 (토) 01:02 (KST)

@Sotiale: 11월 9일까지 분쟁당사자가 토론에 불참했습니다. 제가 서술할 수 있게 허용 바랍니다.그ㅐㅐ11 (토론) 2019년 11월 10일 (일) 00:33 (KST)

보호가 해제되었으니 제게 허락을 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Sotiale (토론) 2019년 11월 10일 (일) 00:36 (KST)

@Sotiale: @그ㅐㅐ11: 안녕하세요. 토론:관롱집단에서도 이미 말씀드렸지만, 이 문서도 최근의 분쟁과 관련이 있으므로 의견을 여기에도 남기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관롱집단 문서의 특수:차이/25115925 판은 본인이 새롭게 보강한 내용이며 합의된 편집입니다. 본인의 편집 이후에는 특수:차이/25116327에 추가된 개요 부분, 즉 아래와 같은

관롱집단은 선비족들의 무사 집단을 가르킨다 북위 말기부터 서위, 북주를 거치는 동안 위수 지역을 중심으로 뭉친 선비족 집단에서 출발했다. 북위를 멸망시키고, 동위, 서위로 선비족의 북조가 분열되었을 때 서위의 선비족인 우문태는 서방 중심지로 위수 지역의 관중 지방을 선택했다. 선비족인 우문태는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강력한 선비족 군부가 필요했는데 이때 북위때부터 있었던 선비족 무사 집단 관롱집단을 이용했다. 수나라를 세운 양견도 이 선비족 관롱집단 출신이다. 이 관롱집단은 원래 선비족의 본거지로서 선비족과 연결되는 지역이다. 실제로 문벌 귀족들의 족보를 따지면 한족화된 이름을 쓸려고 했던 선비족이 대부분이지만 8주국 관롱 집단은 예전부터 혈통의 순수성을 지켜오기 위해 선비족끼리 결혼 하였다. 북위가 처음 나라를 세우고 북조를 통일했을 때 이 관중 지방에 많은 선비족들이 이주했다. 북위가 효문제의 한자 사용을 추천하고,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자 이 관중 지방의 선비족들은 원래 한족들을 정복하고 낙양으로 이동하였다. 서위 멸망 후 북주의 중심지가 위수 지역이 되자, 북주 총관 양견 등 관롱집단의 사람들이 대거 관료가 되어 기용되었다. 양견은 어릴때의 이름도 선비족의 이름으로 금강나라연이였고 보육견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양견이 수나라를 세우자 선비족의 관롱집단 한족들을 피지배인으로 만들고. 건국 공신으로 세를 떨치게 되었다.이 관롱집단은 결국은 선비족끼리 결혼하여 혈통을 유지한 선비족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연은 선비족인 독고씨와 친척 관계이다. 양견과 이연은 이종사촌간이었는데, 결국 수와 당의 교체는 왕조의 교체보다 선비족의 관롱집단간의 지배체제 변화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관롱 집단의 성격상, 수나라와 당나라는 해외 학계에서는 중국인이 아닌 선비족의 역사로 인정되는 것이 정론이다. 왜냐면 북위의 선비족 지배층들이 중국인 한족들을 정복하여 중국인들이 피지배민족이 된 북위에서부터 이어져온 수나라, 당나라 또한 지배층이 선비족 순수 혈통이였으며 피지배민족인 중국인들은 평민이나 하위 계층으로 머물며 상위 계층으로 가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분을 추가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의 편집은 분쟁과는 연관이 없으므로 보호해제 이후나 토론 여부에 관계없이 이 부분은 반영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종코 (토론) 2019년 11월 2일 (토) 01:52 (KST)

외부 링크 수정됨 (2020년 1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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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20년 1월 19일 (일) 22:10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