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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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감상[편집]

아직 다 완성한 것은 아니지만, 이걸 번역하면서 (거의 1년째 ;;;) 위키의 장점이자 단점도 느낍니다. 여러 사람이 편집할 수 있다는 것떄문에 문서가 풍부해질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반면에 여러 명이 시차를 두고 서로 다른 시각으로 내용을 작성하기 때문에 앞뒤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는 걸 느낍니다. 나름대로 책 2권을 놓고 보충하긴 하지만 어렵네요. --WaffenSS 2007년 10월 21일 (일) 23:03 (KST)

덜어내기[편집]

내용이 너무 길어서 한 번에 읽기 힘듭니다. 분량이 많은 섹션을 독립문서로 덜어내서, 총 분량을 현재의 1/3 정도로 줄였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독립 문서가 만들어져 있는 ‘1943년 여름 : 쿠르스크’ 섹션의 내용을 줄이고, 쿠르스크 전투에 없는 내용은 옮겼으면 좋겠는데, 막상 저는 문외한이라서 손을 대지 못하겠네요.;; --정안영민 2007년 12월 11일 (화) 09:53 (KST)

쿠르스크 전투만 해도 최소한 이 문서 이상의 분량이 나옵니다. 줄이는 것은 좀 곤란해보입니다.;; 한 번에 읽으시는 것은 좀 과한 욕심이신 듯... -.-;; --WaffenSS 2007년 12월 26일 (수) 18:05 (KST)

빨치산[편집]

해당 문서에 기술되어 있는 빨치산을 모두 파르티잔으로 변경해야하지 않을까요. 현재 빨치산 문서는 동음이의어 문서입니다. --아들해 (토론) 2008년 7월 25일 (금) 23:23 (KST)

독자연구 부담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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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문장을 넣어보려하는데, 자꾸만 독자연구라는 틀이 붙나 봅니다. 문장 잘 수정하는 분들, 손을 보아 보강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전쟁전략 및 참전세력[편집]

아리안족의 대도약을 위해선 더 넓은 영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히틀러는 독일을 나찌즘으로 굳게 단결시키고 군수물자를 확보한 후, 전쟁전략와 외교전략을 구축해나갔다. 주축국의 핵심국인 독일의 목표는 서부를 빨리 안정시키고 동부의 소련땅으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군부파쇼체제를 이룬 이탈리아와 일본이 핵심 동맹국이 되었고 스페인의 프랑코정권 또한 구미가 맞는 든든한 후방세력이라 믿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지리한 참호전진지전으로 이어졌기에 마지노선만을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 프랑스의 안이함을 간파한 히틀러는 중립국 베네룩스 3국으로 우회하는 작전으로 손쉽게 프랑스항복을 받아내 전 독일의 사기는 충천하게 되었다. 영국과 적당한 휴전을 하고 미국의 참전만 막는다면 일본이 동쪽에서 견제해주는 소련도 손쉬운 먹이감으로 보였다. 독일은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등의 다른 추축국에 전선 및 점령 지구에서 독일군을 지원할 인적 지원을 요구했다. 소련과 전쟁을 한 차례 치러 반소 감정을 가진 핀란드도 독일 쪽에 가담했다. 또한 독일은 소련에게 강제 점령 당한 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에서는 반공산주의 게릴라의 지원을 받았다. 심지어 스페인(에스파냐) 우익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보낸 스페인인 사단도 있었으며, 러시아 해방군같이 독일군이 고용한 많은 외인 부대도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스탈린체제 하에서 대기근으로 수백만명이 굶어죽었기에 독일군을 환대해주기도 했다. 전 유럽에 대항하는 소련은 무력해 보였다.

하지만 영국은 독일 폭격기들의 폭격을 받으면서도 의외로 끝질기게 저항했고 미국도 서태평양과 유럽에서의 기득권을 잃고싶지 않아한다는 것을 히틀러는 간과했다. 영미의 굳건한 참전의지와 물자지원을 믿으며 스탈린도 힘을 얻었다.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프랑스, 유고슬라비아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빨치산 지원을 받았으며, 전쟁 후반기에는 소련의 지원으로 무장된 폴란드 1군2군붉은 군대와 함께 나란히 전선에서 싸웠다. 소련은 주로 미국영국에서 전쟁 물자(3륜 구동차, 트럭, 하프트랙, 전투기, 전차 등)를 지원받았다. 미국의 굳건한 참전의지에 의해 일본은 석유자원을 찾아 남방전선으로 향하면서 소련동부전선의 부담감이 사라진 것도 대단한 힘이 되었다.

--Storytel (토론) 2012년 7월 5일 (목) 16:51 (KST)

소제목 < 전쟁중의 외교전과 세계전략>, <전쟁이 미친 영향과 전후 세계체제 개편 > 타이틀만 일단 달아둠[편집]

내용은 추가할 시간이 없네요. 언제 손을 볼지 기약도 못하겠고, 독자연구 논란도 부담입니다. 여러분들이 같이 힘을 합쳐 보완해야할 과제라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Storytel (토론) 2012년 7월 5일 (목) 17:11 (KST)

제 글이 독자연구성 글이라는 이유로 되돌림당했는데, 그래야만 했을까요[편집]

제가 편집한 글이 독자연구성 글이라는 이유로 삭제조치를 당했군요. 되돌림입니다만 마찬가지요. 제가 편집했던 글을 소개하고, 다시 원글로 돌아와 살펴본 후 두 글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쪽이 나은지. 꼭 지워야만 했는지. 살릴 부분은 없을지. 제가 본 개요는 너무 허술했고 보충할 필요성이 절실해서 손을 보았는데요.

첫 글이 제가 편집했던 글입니다. 시간상 개요부분을 주로 손봤고, <9 전쟁 중의 외교전과 세계전략 10 전쟁이 미친 영향과 전후 세계체제 개편> 두 부분을 추가하기를 원해 소제목에 넣어두었습니다.[1]
다음은 제가 수정하기전의 글로, 제가 편집한 후 되돌아온 글입니다. [2]

독자연구성으로 짤리는 글이 생기면 가급적 문서의 토론공간에 글을 넣고 싶군요. 이유는 언제 길게 설명하겠습니다만, 토론공간을 활성화하는 것이 위키의 발전책이라 믿기 때문이고, 이런 생각도 있으니 고려해서 후속편집자들이 편집해 주셨으면 고맙겠다는 의사전달이기도 합니다.

과연 누구나 다 아는 상식적인 내용을 추가했을 뿐인데, 독자연구성 글이 되어야 하며, 출처를 밝혀야할지 의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한번만 더 제가 편집한 글로 되돌려 보지요. 제 글에 문제점이 있다고 느끼신다면 그 이유를 이 공간에 충분히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공간에서 토론해 보기로 하지요. --Storytel (토론) 2012년 7월 7일 (토) 05:19 (KST)

사랑방에도 이곳에서의 편집논란을 알렸습니다. 그곳에도 의견이 있을지 모르니 참고하세요.

위키백과:사랑방/2012년 제27주‎#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 문서에 편집논란이 있습니다. --Storytel (토론) 2012년 7월 7일 (토) 06:01 (KST)

일단 새로 기여하신 문장들에 출처가 없네요. 해당 문장이 그럴듯한지 이닌지는 위키백과에서 전혀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가독성등을 이유로 멋진 문체와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만 모든 것엔 출처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특정 전투나 전쟁의 여러 분야에 대하여 기여자가 스스로 평가하고 분석한 주관적인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독자연구입니다. Storytell님이 해당 전문가시라면 적어도 자신이 쓴 논문이나 저서를 자신이 기여한 설명에 대한 출처로 같이 표기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전문가들의 설명과 평가를 인용하고 그 출처를 표기해야합니다. --토트(dmthoth) 2012년 7월 7일 (토) 08:19 (KST)

이제 보니 본 문서는 알찬 글임에도 불구하고 출처가 너무 적군요. 알찬 글 해제 토론을 열어야 할 것 같습니다.--토트(dmthoth) 2012년 7월 7일 (토) 08:21 (KST)

Storytel님께서 채워 넣으신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 같기는 하네요. 제가 알고 있는 상식과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억울해하시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억울함을 느끼시는 것을 보니 위키백과의 초심자이신 모양이군요. 이왕 그렇게 멋진 문체와 표현을 사용해서 보태셨다면, 어떤 신뢰할 만한 출처에서 가져온 것인지, 출처를 밝히기가 다른 것보다도 더 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출처를 확실히 밝혀주세요. 출처가 없이 보태진 글은, 위키백과에서는 거의 언제나 독자연구로 간주됩니다. 위키백과는 누구나 편집 가능한 백과사전이니만큼, 필자 개개인의 생각이 필요 이상으로 반영되어서는 안 되며, 글의 신뢰성이 생명 중의 생명입니다. 위키백과의 어떤 진술에도 논리적인 근거와 출처가 있어야 합니다.--PostEinstein (토론) 2012년 7월 7일 (토) 20:37 (KST)

좋은 백과는 혼자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위키의 경우는 특히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편집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줬죠. 글을 읽는 이용자들이 자신이 아는 상식이나 지식으로 편집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 내용에 대해 의문이나 반론이 없다면 가급적 인정해주는 풍토가 풍성한 위키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출처가 없거나 독자연구성 글이 있다하더라도 명확한 반론이나 의문이 없다면 가급적 글의 내용을 살리는 쪽으로 편집을 노력해주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실은 제가 결과와 영향 등에 대해 추가하고 싶은 내용들이 많지요. 일반적으로 아는 상식으로도 많은 것들을 쓸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출처출처...를 요구하는 분위기다 보니, 들어오는 자체로도 부담이고 짜증이 일더군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전 다양한 사람들의 상식과 비판능력만으로도 좋은 백과를 완성해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요, 모든 글에 출처를 요구하는 게 옳은지 모르겠어요. 전 저명한 글이나 작가라도 내가 옳다고 믿지 않으면 신용하지 않습니다. 널리 알려진 지식들에도 의문이 많고, 특히 미디어의 글들엔 쓰레기 글들도 많다고 생각하지요. 뭐랄까, 지식의 사대주의랄까, 저명하고 알려진 글이면 진리다...라는 논조에 전 납득하기 힘든 점이 있네요. 그보다는 많은 이용자들의 상식과 비판능력을 더 믿고싶은 마음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인물이나 현상에 상반된 견해의 평이나 이론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하나의 글만이 진리일 수는 없겠죠. 다양한 견해의 소개와 비판을 통해 균형감있는 백과적 지식을 비교하고 얻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전 개인적으로 위키가 발전하려면 문서의 토론게시판이 활성화되야한다고 믿습니다. 문서의 지식만이 지식의 다는 아니요, 거기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보충이 가능하다 믿습니다. 특히 민감하고 의견이 다양한 분야일수록 토론게시판을 활성화할 필요를 느낍니다. 언제 시간나면 수필로 써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지식에 얼마나 출처를 댈 수 있을까요 ? 예전에는 언젠가 교과서나 대학교제,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을 흡수했겠죠. 그런데 그런 다양한 책의 제목, 출판사 그런 걸 다 댈 수 있습니까 ? 출처를 댈순 없지만 널리 알려진 상식이나 지식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모두 출처를 요구하고 글쓰기에 압박을 가하니 무척 부담스럽더군요. 글에 의문이 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토론을 시도해보고, 거기에 대해서만 출처를 요구함이 어떨까요 ?

--Storytel (토론) 2012년 7월 9일 (월) 19:16 (KST)

전쟁중의 외교전과 세계전략 (독자연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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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영향과 세계체제개편에 대해 간단히 언급을 했습니다만, 출처를 요구받을까봐 두렵습니다. 널리 알려진 상식이라고 봅니다만, 논쟁에 들어가면 피곤하지요. 외교전에 대해선 더 민감하고 출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여기서 간단히 언급해 봅니다.

2차대전의 원흉이 히틀러와 독일국민이었는가, 하는데엔 약간의 이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역사를 깊이 파고들면 히틀러가 어떻게 정권을 잡고 군사공업력을 강화할 수 있었는지 좀 더 알 수 있겠죠. 히틀러에겐 보이지 않은 지원군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혹시 독일인들도 피해자들은 아닐까,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히틀러도 왜 그들이 자신을 지원하는지 그 의도를 대충 알 수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세계금융세력과 미국의 경제인들이 그들이었죠. 어떻게 보면 히틀러는 종범이고 교사범은 따로 숨어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결국 히틀러는 각본에 놀아난 전쟁의 꼭두각시였을지 모르죠.
누가 진정 유럽대전쟁을 원했는가, 정확히 따지긴 쉽지 않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누가 가장 많은 패해를 입었으며 이익을 얻었는가는 대충 알 수 있지요. 유럽주요국들이 최대피해자들이었고, 소련 역시나 막대한 인명손실을 입었죠. 최고의 이익은 미국이 거두었고, 세계제체의 주역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전쟁이 미국의 각본이었느냐, 이건 또 쉽게 단정하기 힘들죠. 사실 미국 뒤는 국제금융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야 말로 전쟁을 통해 거대한 (전쟁)채권수익을 거뒀다 할 수 있겠죠.
히틀러가 왜 유태인들을 그리도 대량으로 잔혹하게 처형했느냐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히틀러가 유태인을 증오한 건 사실이지만 그들을 처형하길 바라진 않았다고도 해요. 그들 뒤에 누가 있는지,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그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결국 유태인들을 처형한 것은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고, 자신에 적대적인 금융지원을 막을 수 없었기에, 인질로써의 가치가 없다고 믿었기에 처형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유태금융재벌들과 히틀러가 더 타협을 시도할 수 있었다면 세계역사는 많이 바뀔 수 있었겠지요.
2차대전 초반, 히틀러는 영국군을 몰살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영국으로의 탈출을 용인합니다. 영국과는 촤악의 전쟁파트너가 되지않길 원했고, 민족적으로도 통하는 면이 있다고 보았기에 타협을 많이 시도한 것 같습니다. 하나 영국 뒤에는 거대한 금융재벌이 있었기에 영국은 히틀러의 바람을 물리칠 수 있었겟죠.
처칠을 전쟁영웅만으로 보는 시각은 좁은 역사적 안목이라 봅니다. 그의 뒤에는 금융재벌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했습니다. 처칠 비스마르크 등 일류정치가들 뒤에는 금융재벌의 지원이 잇었던 것이죠.
루즈벨트는 어땠을까요 ? 역시 그 뒤에도 금융재벌의 지원과 입김이 있었다고 봅니다.
오늘날 유태인들은 다양한 시선을 받고 있는데요, 유럽에서 특히나 그들에 대한 시선은 좋지 못하죠. 아마도 2차대전에 금융재벌들의 음모가 크게 작용했다고 믿기에 더더욱 그러하지 않나 싶습니다.
편하게 글을 쓰다보니 백과에 (토론실이라 하더라도) 써서는 안 될 글을 쓴 것도 같습니다. 이런 지식이나 음모설들을 배경지식으로 깔고 보는게 역사를 보는 바른 관점이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제 과실이 있다면 비난받아도 어쩔 수가 없군요.
외교전만 약간 추가한다면, 히틀러와 스탈린 그리고 미국의 의도를 집중 연구해볼만 합니다.
미국의 역할은 전쟁 전체에서 보이지 않은 거대한 손이었습니다. 미국이 일본을 강하게 방해하지 않았다면 태평양전쟁까지 발전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고, 소련은 시베리아의 부담감으로 인해 초기에 스키부대를 투입하여 모스크바 위기를 막기도 힘들었을지 모르며, 그후로도 편하게 독일만 상대하기 힘들었겠죠.
결국 거대공업국 미국이 태평양과 유럽에 같이 참전함으로써 전쟁의 무게중심이나 세력균형을 크게 좌우한 셈입니다. 그런 미국의 외교전쟁정책에 누가 영향력을 미쳤을까요 ? 미국 정치 뒤에는 언론과 돈으로 미국정치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세력들이 있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영국와 처질의 고집도 대단했습니다. 히틀러가 그들에겐 타협을 원했기에 영국이 원하면 전쟁에 그토록 깊이 개입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요. 결국 영국의 고집으로 인해, 공군력을 소련에 집중할 수 없었던 히틀러는 소련 군수산업파괴에 한계를 가져왔습니다. 유럽에 영미군이 들어오기 전까지 해안에 배치해둔 군사력도 소련에 집중할 수 없어 독일로선 아까웠겠구요.
소련 스탈린은 서구국 영미의 의도를 완전히 알 수 없어 초조했습니다. 막대한 인적피해를 누증하고 있었기에, 그 누구의 변심만으로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죠. 하나의 가설이지만, 히틀러가 유태인학살을 그토록 광범위하고 무지비하게 집행하지 않았다면, 금융재벌은 히틀러와 스타린이라는 두개의 카드를 어떻게 쓸지 더 고민했을지도 모릅니다. 히틀러의 무자비한 만행이 결국 자신과 독일의 운명에 변수를 없앴다고 할 수도 있겠죠.
일본의 선택도 유럽대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미의 방해로 인해 자원난에 허덕인 그들은 남방전선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기에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치룰 수밖에 없었는데, 만약 일본이 시베리아에 석유와 가스가 있음을 알았다면 진로를 소련방향으로 잡을 수도 있었고, 그렇다면 유럽전의 향방도 달라질 수 있었죠.
일본은 중국을 가도로 이용한 셈입니다. 해안선과 중요 철로만 확보하고 전선을 남으로 이동했지요. 남방을 미국에 양보하고 중국까지만 차지하려 들었다면 중국역사는 지워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남방에 투입된 군사력은 중국을 지울 정도로 방대했으니까요.
결국 시베리아로 쳐들어가지 못한 일본의 선택은, 자원과 과학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인한 잘못된 선택으로도 볼 수 있겠죠.
연합국의 외교는 스탈린 처칠 루스벨트가 주로 결정했고, 프랑스와 중국은 덤으로 모양만 가끔 냈습니다. 서구 개편은 또 처질과 루스벨트가 결정을 했구요. 한국의 독립엔 중국 장개석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알려지고 있습니다만, 미소의 이권도 작용했으리라 보입니다.
초반전쟁에서 독소는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폴란드를 양분합니다. 히틀러로서는 기만술이었는데, 스탈린은 어떤 의도로 받아들었을까요. 그는 얼마나 히틀러를 믿었을까요.
프랑스의 역할도 작진 않았습니다. 괴뢰정부는 한동안 독일을 위해서 싸웠는데요, 결국 어느 시점에서 연합국에 동조하게 되지요. 괴뢰정부와 프랑스 민심을 히들러가 더 얻을 수 있도록 더 노력했다면, 서구전선은 다른 모양새를 갖추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프랑스를 동맹국의 일원으로 확실히 포섭하지 못한 게 히틀러 패인 중 하나일지도 모르죠.
전쟁 중 이태리 스페인의 역할은 미약했습니다. 오히려 이태리를 지키기 위해 많은 군사력을 투자한 바람에 동부전선이 더 약화되었죠.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터키, 알바니아, 보스니아 등을 더 이용하지 못한 것, 북유럽을 포섭하지 못한 것들도 외교적 패인입니다.
군사전략적으로는 초반전쟁에서 모스크바를 함락하지 못한 게 실패원인이죠. 3방면공격을 시도했지만 군사력분산을 가져와 효과적인 공략책이 되지 못했습니다. 중부방면군에 힘을 집중하여 일찍 모스크바를 함락하고 공군력으로 동부로 이전한 군수시설까지 파괴했다면 전쟁은 다른 결과가 가능했습니다.
스탈린그라드에 지나치게 연연한 것도 군사전략적 패착 중 하나입니다. 중요 요충지임은 분명했지만 기동력을 살린 전격전의 장점을 많이 상실한 잘못된 전략으로도 보이지요.
공세적 전쟁에서 수세적 전쟁으로 개편된 이후는 시간만이 문제일 뿐 패전을 면키는 어려웠습니다. 패를 바꿀 수 있는 길은 외교전밖에 없었는데, 결국 외교적 수완과 패가 부족한 것이 독일의 피해를 키웠습니다.
패전이 예상된 전쟁을 일찍 종식시키지 못한 독일체제도 독일인들로선 비극이었습니다.
너무 가볍고 무책임하게 글을 쓴 것도 같습니다. 지우는게 낫겠다는 의견들이 나오면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올리는 이유는, 전쟁은 구체적인 전투보다는 그 원인과 배후를 정확히 이해해야 더 유용하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참고삼아 글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산만한 견해로는 본문문서에 손을 대는 건 쉽지 않네요. 능력있으신 분이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

--Storytel (토론) 2012년 7월 9일 (월) 21:20 (KST)

전쟁에는 미국의 의도나 바람도 크게 작용을 했습니다. 빚더미 된 유럽을 통해 세계최강국의 지위를 얻되, 서구의 완전한 패망은 막는 길을 선택했지요. 대공황에 시달리고 있던 미국으로선 군수산업부흥으로 인한 공업생산력의 폭발적 성장도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유럽국들에게 채권을 빌려줌으로써 최대 채권국가로 올라서고 달러의 지위를 강화하여 세계기축통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리트였지요.
1913년 미국 통화권을 담당한 미연방준비위(FRB)를 장악한 국제금융세력들은 미국의 성장이 자신들에게도 막대한 이익이었습니다. 양차대전을 통해 유럽은 패망하고 미국은 대흥기를 이룬 점도 흥미로운 요소이지요.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대전환기가 되었죠.

--Storytel (토론) 2012년 7월 9일 (월) 21:20 (KST)

윗 글 숨김 알림[편집]

위의 Storytel이라는 사용자가 독자연구성이 짙은 내용을 남겼기 때문에 글을 숨김 처리했음을 알려드립니다.--58.123.52.166 (토론) 2012년 9월 16일 (일) 21:10 (KST)

단어선택 질문[편집]

배경에 독일-소련 불가침조약

에서 마지막 단어 '반환'이 맞는 단어인가요? 사실을 모르니 혹시나 해서.....

--182.221.240.171 (토론) 2014년 10월 19일 (일) 17:26 (KST)

수정했습니다.--twotwo2019 (토론) 2014년 10월 19일 (일) 18:24 (KST)

외부 링크 수정됨 (2018년 7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6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8년 7월 22일 (일) 00:51 (KST)

외부 링크 수정됨 (2018년 11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3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8년 11월 22일 (목) 11:10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