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동명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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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왕은 부여의 건국 시조[편집]

현재 대한민국 역사학계에서는 동명왕을 부여를 건국한 시조로 보고 있습니다. 기원후 1세기에 서술된 중국 측 서적인 《논형(論衡)》의 기록에 따라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많은 일반인들이 부여를 건국한 동명왕과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 주몽을 동일한 인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상식을 기반으로 백과사전에 잘못된 정보를 올려둘 수는 없습니다. 백과사전의 내용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올려야 하며, 일반인들이 알기 쉽도록 평이한 문체로 바꿀 수는 있지만, 잘못된 내용을 올릴 수는 없습니다.

동명왕을 부여의 건국 시조로 보는 이유, 그리고 나중에 고구려에서 주몽(=추모왕)을 동명성왕으로 부른 이유 등은 이미 역사학계에서 다 밝혀진 내용입니다. 제가 시간을 내서 따로 정리하여 올리겠습니다. 우선 급한대로 이 주제에 대한 논문 제목 몇 개만 올려드립니다.

  • 李福揆, 〈夫餘建國始祖神話考 , 東明 은 夫餘始祖라는 한 管見〉, 《인문과학연구》 1, 국제대학 인문과학연구소, 1982년 6월.
  • 白鳥庫吉, 이복규 譯, 〈扶餘國 始祖 東明王 傳說에 관하여〉, 《國際語文》 17, 국제어문학연구회, 1996년 5월.
  • 朴京哲, 〈새로운 扶餘史像 定立을 위한 몇 가지 課題〉, 《先史와 古代》 통권 제23호, 韓國古代學會, 2005년 12월.
  • 李壯雄, 〈百濟 系統 資料로 본 卒本扶餘의 東明神話〉, 《白山學報》 제81호, 백산학회, 2008년 8월.
  • 정원주, 〈高句麗 건국신화의 전개와 변용〉, 《고구려발해연구》 제33집, 고구려발해학회, 2009년 3월.
  • 박승범, 〈夫餘國의 신화적 변동과 東明神話의 시·공간적 推移〉, 《韓國史學報》 제37호, 고려사학회, 2009년 11월.

아사달 (토론) 2012년 5월 6일 (일) 15:59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