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대구 10·1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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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수정됨 (2019년 5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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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9년 5월 31일 (금) 07:22 (KST)[답변]

대구 10.1 사건 편집 토론[편집]

해당하는 배경을 넣으려는 이유가 궁금합니다.Zalmann (토론) 2023년 3월 13일 (월) 00:07 (KST)[답변]

먼저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게 한 당대 대중의 미군정에 대한 불만을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군정의 경제 정책 실패로 인한 초인플레이션을 언급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친일경찰 문제도 더 자세히 언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정판사 위폐사건이 공산당이 신전술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어 9월 총파업의 결과를 낳았고 이 과정에서 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니 자세히 언급했습니다. 스티코프 일기 등 소련 문서나 박병엽 증언록 등에 이 과정이 나오고요. 따라서 정판사 위폐사건과 9월 총파업을 목차를 따로 잡아 설명했습니다. 이미지업로드 (토론) 2023년 3월 13일 (월) 00:18 (KST)[답변]
당대 대중의 불만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도 넣었고요. 이미지업로드 (토론) 2023년 3월 13일 (월) 00:19 (KST)[답변]

저는 배경을 한 문단으로 설명해야 된다는 입장입니다.Zalmann (토론) 2023년 3월 13일 (월) 00:26 (KST)[답변]

해당하는 기간의 본문을 충실하게 작성해야지 배경은 한문단 작성하고 나머지는 하이퍼링크 넘겨주기로 요약해도 충분하죠. Zalmann (토론) 2023년 3월 13일 (월) 00:27 (KST)[답변]
조선-대한제국기, 일제시대와 독립운동기간, 군정기를 포함해 이전의 역사적 사건의 일생 기간 수십년간 쌓이고도 쌓인 배경과 수백가지가 될 수 있는 원인을 원칙과 기준도 없이 하나하나 지엽적이게 설명하면 얼마나 내용이 많겠나요. 넘겨주기로 작성해도 이해가 되고 충분한 일을 복잡하게 만드십니까.Zalmann (토론) 2023년 3월 13일 (월) 00:28 (KST)[답변]
여론조사 같은 경우 대구지역의 여론조사를 넣어야한다고 봅니다. 이외 지역 여론조사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구 지역을 설명하는 사진이 1장이 이 문서에 더 어울리고 더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Zalmann (토론) 2023년 3월 13일 (월) 00:35 (KST)[답변]
일단 이 사건은 대구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름이 대구 10.1 사건이지만 봉기는 전국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어떤 책을 봐도 나오는 내용인데, 굳이 하나 출처를 들자면 김상숙의 <10월 항쟁>을 들겠습니다. 대구 지역 사람들이 먼저 소요사태를 일으킨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번졌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쌀 문제나 친일경찰 문제 미군정의 경제정책은 절대 대구만이 아니라 전국적 문제였고, 조선공산당도 전국적 정당이죠. 따라서 대구지역만을 서술하자는 입장에는 반대합니다. 이미지업로드 (토론) 2023년 3월 13일 (월) 00:40 (KST)[답변]
저 때 경제상황 등이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던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봉기가 일어났지, 선동만으로 자신이 사상자가 될 수도 있는 폭력사태에 동참하기가 쉽겠습니까. 그래서 이 사건은 얼마나 당대 대중을 이해할 수 있게 자세히 길게 쓰느냐가 사실 사건의 성격(정당성)을 정의하는 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귀하께서 줄이길 원하시니 그럼 다른 문서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은 줄이겠습니다. 10.1 사건의 경우 어차피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중이니까요. 대신 초인플레이션과 당대 여론조사나 신전술 내용이 들어간 문서인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도 9월 총파업처럼 넘겨주기로 달도록 합시다. 이미지업로드 (토론) 2023년 3월 13일 (월) 00:51 (KST)[답변]
여론조사 같은 경우, '1946년 여론조사' 같은 여론조사 전용 문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넘겨주기 틀로 하면 그 당시 시행했던 여러가지 여론조사를 한 눈에 확인이 가능할텐데 못찼겠군요. 일단 여론조사는 존치하고 해당 문서가 만들어지면 옴기는걸로 동의하겠습니까? Zalmann (토론) 2023년 3월 13일 (월) 01:03 (KST)[답변]
저는 한 문서에서 한눈에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 있다는 생각인데, 귀하께서 넘겨주기로 만드는 것을 선호하시니 그렇게 하시죠. 일단 존치한다고 하시기도 하셨고. 동의합니다. 10.1은 이미 진실화해위원회에서도 조사한 사건이라 많이 양보할 생각입니다. 이미지업로드 (토론) 2023년 3월 13일 (월) 01:12 (KST)[답변]
지금 문서는 조선공산당의 역할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에서는 주로 보수 쪽에서 조선공산당의 역할을 강조하고 진보 쪽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강조했으나, 저는 조선공산당이 이리 금기시될 필요가 없고 많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조선공산당의 역할이 강조되어도 괜찮다고 봅니다. 저도 스티코프 일기 읽었고 9월 총파업은 자금 개입되었지만 10.1 대구에서의 그 사건은 지령이 없었고 이후 공산당이 지도부가 된 사건이라 분석했는데요. 10.1은 4.3보다 훨씬 뚜렷하게 전국 대중이 참여한 사건이라 이미 최근 언론을 검색해보면 일제히 "10월 항쟁"이라 보도하고 대구 지역사회도 기념비를 세우겠다 하는 사건인데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조선공산당이 참여했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뭐 평가의 흐름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기여한 새 정보를 지우고 사실상 문서의 이전 버전으로 돌아가는 쪽으로 편집하셔서 제가 되돌린 것인데, 귀하께서 선호하시는 넘겨주기 위주의 문서 서술 방향을 알겠으니 그럼 지금처럼 쓰시고 대신 정판사 위폐사건 넘겨주기만 하나 만들겠습니다. 이미지업로드 (토론) 2023년 3월 13일 (월) 01:48 (KST)[답변]
동의합니다. 그렇게 편집하셔도 좋습니다.Zalmann (토론) 2023년 3월 13일 (월) 01:59 (KST)[답변]
네, 그럼 토론 끝냅시다. 이미지업로드 (토론) 2023년 3월 13일 (월) 02:20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