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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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l6560 (토론) 2019년 3월 26일 (화) 18:49 (KST)

고조선 수도는 랴오닝성 어딘가에 있다[편집]

1. 환桓인현, 지명, 환桓인, 환桓웅, 환桓 동일한 글자,요동 선양시로 부터 200Km 떨어진 졸본 부여 오녀산성에 위치, 단군조선 이전 국가는 환桓국, 랴오닝성 외곽에 위치한 산악 지형일 가능성 있고, 주周나라 이전 중국 황하 북쪽과 산동성 지역은 북적+동이계가 점령하고 있었다.

2. 단군(檀君) 단檀 글자는 박달나무를 뜻한다.

가침 박달은 장미과에 속하는 작은 나무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베이징 및 랴오닝성 일대에 분포한다.
우연치곤 너무 여러 내용이 랴오닝성에 집중됩니다.

<<제왕운기》는 《본기(本記)》를 인용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의 손녀와 신단수(神檀樹)의 신이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 박달나무 단檀 나무 수樹 귀신 신神, 수樹는 나무 목 + 세울 주, 인공림을 의미하고, 박달나무 꽃 정원을 꾸밀 정도로 힘있는 호족을 의미합니다. 랴오닝성 어딘가 박달나무 숲 마을에 사는 호족으로 생각되고, 졸본 오녀산성 환桓 지역에서 내려왔으니 하늘에서 내려 온 셈입니다.

3. 상나라는 단군조선족이다. 1대 조 자子 설契이 랴오닝성 서부=요서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고, 요동,요서는 요하를 경계로 동서로 나뉘지만, BC500년 중국 지도는 만리장성 끝 갈석산 경계로 연나라 밖 중원과 지리적으로 별개 지역이고, 상나라가 망할 때 수도 지역 은허 유적과 랴오닝성 홍산문화 유적은 같은 유물로 취급된다. 상나라가 망한 시기인 1122년 상나라 왕족 기箕 지역 제후 자子 서여는, 5,000 유민을 이끌고, 조상들이 살던 본향 평양으로 돌아갔다고 말하고 있다.

구글어스로 요하 지역을 보면, 서쪽 유목 지역과 구분되는 산줄기가 있고, 북,동, 남쪽은 산악지형, 서남쪽은 만리장성 산맥으로 구분되는 지형 특성 있고, 이곳엔 홍산문화 유적을 비롯한 많은 요하문명 고대 유적지가 존재합니다. 하가점 상층문화는 동호 유적이겠지만, 유전자 N과 O 관계나 C가 지리적 인접 유전자란 점에서 동호 역시 거슬러 올라가면, 전혀 다른 종족으로 다룰순 없다. 하층문화는 단檀-상商과 상관 관계가 있을 겁니다. 글로 쓴 역사가 아닌, 유물 출토는 여러 추정적 요소가 있을 수 밖에 없고, 고대 국가와 현재 국가는 단일 혈통으로 쭉 변함없이 동일하지 않습니다. 인접한 종족은 교류 할 수 밖에 없고, 섞일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고대 역사를 볼 때는, 그것은 아니다, 단정적으로 확정하고 보기 보단, 유연하게 볼 필요 있습니다.

셀렝가 강(偰輦河, 러시아어: Селенга) 또는 셀렝게 강(몽골어: Сэлэнгэ мөрөн)은 몽골과 러시아를 흘러가는 강이다. 항가이 산맥(몽골)에서 발원해서 바이칼 호로 흘러 들어간다. 유역 길이는 1024 km이다. 셀렝가 강은 예니세이 강-안가라 강 연결 지역에 있다.

자子 설契, 상나라 시조, 설偰씨, 사람인 붙어 다르지만, 같은 문자가 포함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설偰씨는 한국에도 존재하고, 바이칼호 남쪽 설련하가 혈족 근본, 자子 성姓은 하나라로부터 사성받은 것이겠지만, 자子 설契에서 설契은 이름이 아닌 설契족인 것이고, 중국 하나라 중심에서 볼 때, 설契족 상나라는 동이+북적, 동북방향에서 온 혈통인 것으로, 동북방향 요하 만주에 있는 단檀과 무관할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상商나라와 단檀국이 같은 북방 동이계로 생각하면 보다 더 분명해집니다. 상나라 북쪽 백적족 지역에 기箕족 수장인 기자가 유민을 이끌고 평양=요하에 도착했을땐, 원정을 떠난 것이 아니라, 망한 상나라 왕족으로 자기 씨족과 노예를 이끌고 요하에 도착한 5,000명은 군대가 아닙니다. 그런 주나라 사람도 아닌 기자에 먼저 자리 잡고 있던 단군이 전쟁도 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 이유는 같은 북방동이계가 아니면 설명되지 않습니다. 난민 5,000명 왔다고 나라가 물러날리 있습니까? 기자조선이 국가 규모로 확대 된 것은, 삼감의 난 이후 주나라 상민정책 피해서 상나라 유민이 대량 유입됐기 때문으로, 초기엔 기존 국가와 대적할 수준 안됐습니다. 이민족였다면 아마도 초기에 격파하고 노예로 삼았을 겁니다. 단檀국과 상나라는 북방동이계로 중국을 통치했기 때문에, 맹진 근처 단檀씨 수장 종손인 단檀백이 춘추시대 중원에서 살해 당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하층문화와 상츰 문화 사이 간격이나 중간에 연대가 끊어지는 것을 언급하는데, 상나라는 수도를 8번 이전했고, 마지막 유적지가 조가 은허유적, 요하 지역에서 남하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단檀-상商, 북적-동이, 성씨 혈족국가 이성동본 연계해서 생각해야 할 필요 있습니다.

4. 왕검(王儉)이란 글자가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삼국사기》의 고구려 동천왕 21년(247년)조이다. 동천왕이 평양으로 천도하였을 때의 기록에 세주로 ‘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이 살던 곳(원문, 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王之都王險)’으로 등장한다. 인명(人名)으로 왕검이 등장하는 것은 이 기록이 최초이다. 인명이 아닌 경우 위만이 도읍하였던 고조선의 수도에 왕검 또는 왕험(王險)이 나타나기도 한다. 《삼국사기》에는 선인 왕검에 대한 기록과 함께 선인 왕검이 왕이 되어 도읍한 곳이 왕험이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단군(檀君)왕검(王儉)= 단檀나라 임금 왕검(王儉)으로, 왕을 지칭하는 이름을 뜻하겠지만, 이후에도 지속됐다는 점에선 이름 보단 직책 이름 가능성이 더 높고, 왕검(王儉)성은 왕이 머무는 성이란 뜻도 되기 때문에, 수도를 의미 합니다. 평양에 왕검성이 있었는데, 평양은 넓고 평평한 땅이란 뜻으로, 양평으로도 씁니다. 후조선 초기 평양은 요하를 의미하고, 망할 때 쓰던 왕검성은 현재 평양을 의미하는데, 현재 평양은 100년도 안썼습니다. 당연히 고조선 유물이 현재 평양에 많을 이유가 없습니다. 단군릉이 있다고 해도, 요하를 뺏기고 온, 가묘일 가능성 높습니다.

BC 300년~249년 연나라 진개가 고조선 침공 2000리는 현재 랴오닝성 전체 + 현재 평양 북쪽 지역 강, 만번한(滿番汗)을 경계로 삼았다. 항우의 십팔제후왕 BC 206년 지도 따라서 BC 194년 중국 사람 위만이 도읍하였던 곳은 현재 평양 지역이다. 왕검성은 그냥 왕이 사는 성이란 단순한 뜻이고, 따라서, 동천왕이 말했던 평양은 현재의 평양이 아닌, 랴오닝성 어딘가에 있는 평양성이다. 평양은 넓고 평평한 지역을 뜻한다. 고구려 사람 동천왕이 선인 왕검이 살던 곳 평양이란 언급은, 랴오닝성 양평성을 의미하고, 졸본부여 오녀산성은 산악 지역이라 해당되지 않고, 요하와 산악지형 경계 어딘가에 있는 평양을 뜻하는, 고조선 도읍지를 말하고 있다.

5. 환단고기에서 환국은 약 9,000년전 국가로 묘사되고 있고, 홍산문화유적은 BC 8,000~ BC 7,000년 경에 정주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원 국가들 기원 보다 훨씬 오래전에 랴오닝성과 유목 지역에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6. BC600년경 스키타이족은 이란계 기마민족인데, 랴오닝성은 물론 신라까지 후손들이 살고 있는 것은, 그 이전 환국에서 언급되는 북방 유목 국가 연합 형태 존재 가능성 높여준다. 스키타이족=사마르칸트=소그드=속특=강康국 소무9성이 한반도와 중국에 공통 분모가 있는 것처럼, 유목 지역에서 영향은 항상 반복 됩니다. 소무9성에서 주목해야 할 성은 온溫씨와 석石씨, 온씨는 신라 온군해 고구려 온달 백제 온조 나타나는 성姓이고, 석石씨는 동부여 대소왕의 동생이 세운 갈사부여, 말갈, 갈족, 자갈=석石씨, 강康족과 부여가 무관하다 성씨를 보면 확신하기 어렵다.

7. O1b2a2b-F940 유전자 분포는 동북 3성과 청주 지역에 분포 돼있고, 가장 집중돼있는 지역이 홍산문화유적지역,

BC 300년 경, 연나라 진개 공격 받기 전까지 요하에 있었던 기자조선,
마지막 왕 기준은 밀려서 수도를 현재 평양으로 옮겼지만,
위만에 평양마저 뺏기고 기자조선이 망하면서, 해로를 따라 남하, 마한을 세웠고, 청주한씨 시조 한준이 됐고,
마한 8대 원왕 아들이 백제 온조에 망하면서 성씨를 행주기씨 시조가 됐다.

성씨는 나라 이름, 지역 특성, 혈족 계통을 표시하고, 나라를 세우거나 망할 때 바뀐다. 환(桓) 단(檀)은 따라서 나라 이름이기도 하지만, 성씨를 의미하기도 한다. 대종 성이 본처 큰아들 적장자 종손 계승 원칙있기 때문에, 후처 아들인 서자는 보통 혈족을 이끌고 다른 지역에 정착하면 그 지역 특성에 맞는 소종 씨로 불리는 것이 성씨 기본 시스템, 환웅은 환인의 서자, 떠나야 할 이유가 있고, 단(檀)을 세웠다.

춘추시대의 선나라의 수도를 단(檀)으로 보기도 하는 견해는 단(檀)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제원현(濟源縣)이 맹진현과 황하를 마주보고 가까이 있으며, 선의 위치를 추정한 고조우(顧祖禹)는 단을 누락했고 단의 위치를 추정한 고동고(顧棟高)가 선을 누락한 데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정 여공이 단백(伯)을 쳐죽인 일 등 단과 선을 구별하는 기록이 제법 있어, 선나라의 수도를 단으로 보는 견해는 대부분 부정된다.

단(檀)은 성씨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백(伯)은 맏 백, 단(檀)씨 종손 수장을 의미한다. 이 역사 기록에서 가르키는 지역은 황하 이북으로,상나라가 점령하고 있던 북적족 지역, 단(檀)이 북방 계통 확장한 성씨 대종 계통 흔적일 수 있고, 중국은 상나라를 동이계로 본다. 성씨는 대종 계통을 중심으로 수없이 성과 씨가 무한 반복되면서 이성동본을 만드는데, 대종 성씨 종손 계통은 대부분 유지된다. 아마도 중국 역사를 살피다보면 분명히 어딘가엔 환(桓)씨 성을 찾을 수 있을겁니다.

대한민국엔 크게 N,C,O 계통으로 대부분 6개 주요 부계 유전자를 중심으로 섞여 살고 있다.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Tol6560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사용자 220.71.168.122 토론[편집]

눈을 씻고 찾아본다고 하시는데 그냥 없다고 하면 되는 글은 꼭 굳이 공격적인 느낌으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시네요? 본인이 학자입니다. 못 믿으시겠습니까 본인이 쓴 글이 눈을 씻고 봐도 학자들이 안 보이는 저급의 글이었다니 유감입니다. 본인 논문을 올릴 수는 없으니 다른 문서처럼 넷상 출처를 쓴 것이지요. 그쪽 문서보면 넷상에서 환단고기 신봉자 관련 인터넷 기사 출처로 하고 환단고기 비판하는 글들 있는데 그건 학자들이 쓴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눈을 좀 제대로 씻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쪽은 항상 그쪽이 쓰는 글은 유력하다 이러는데 역사학에 유력설이 어디 있습니까? 역사라는 것은 유력설이 없습니다. 단군과 텡그리설은 유명한 학설인데 기타로 굳이 옴기는 것은 친중성향때문이 아닌지요? 의도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눈 씻고 봐도 이런 발언은 상대방에게 기분나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중국어 번역해서 옴기는 건은 사학이 아니고 번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쁜 뜻은 아니고 솔직히 xakyntos씨 학계에서 꽤 유명한 사람으로 알고는 있습니다. ~유력하다~ 이 것으로요. 친중적인 성향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이해는 하지만 도대체 계속 그런 편집의 의도가 뭔가요? 중국 사서만 아무런 비판없이 옴겨 적는 것은 사학이 아니고 중국어 번역입니다. 그러니까 사학에는 고고학과 언어학이 연계가 되는 것입니다. 무덤만 파더라도 한국 고대사는 북방 흉노와 선비족에 관련이 더 크지 중국 한족과는 이질성이 있습니다. 중국어가 가능해서 대만 인터넷을 보면 대만인들은 몽골과 선비족등 북방 민족이 중국인들을 정복한 것에 어느 정도 트라우마와 열등감을 보이는데 고대 한민족이 고추대가, 거서간등 몽골계와 비슷하다고 해서 한민족이 중국 대만인들을 정복한 것이 아닌 겁니다. 본인이 연장자인 느낌인데 요새 세계에 관련된 일을 좀 알려주려고 합니다. 일단 중국은 고구려가 인접국인 백제, 신라, 가야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도 고구려를 한반도의 역사와 별개로 구분하려고 하는 사상을 대만인들이 빠르게 수용하였고 일본 넷우익들과 연계하여 학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한국 학계에서도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몽골계와 한민족을 아무리 별개로 놓으려고 해도 고대사의 근접함에 있어서는 중국 한족들보다 가까웠기 때문에 때어 놓을려고 해도 땔 수가 없습니다. xakyntos씨는 2008년도 부터 계속 위키백과에서 한국사에 관련하여 편집을 하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 이런 편집하실려고 합니까? 본인은 xakyntos씨한테 식민사관주의네 이런말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거랑 다른 것 같고요. 좀 서로 알고 싶네요.220.71.168.122 (토론) 2019년 4월 21일 (일) 20:38 (KST)--

xakyntos씨 사용자 문서 잘 읽었습니다. 재야사학에 대해서 오해가 많으신 것같습니다. 본인도 매우 진보적인 성향이라서 이해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재야사학이 아닌 일반 학계(동북아재단포함)에서도 중국 사서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에 비판적입니다. 알기 쉽게 이야기 설명하면 생각을 해보십쇼. 천년 몇백년전에 중국인이 사서를 쓰면 당연히 중국인의 입장에서 썼을 것이고 중국 왕조에 찬양도 있었을 겁니다. 목이 날아가지 않는 한 그런 사서를 쓰기 힘듭니다. 중국 사서에 대해서 아니까 이건 알죠? 중국 수양제가 위서가 마음에 안 들어서 계속 고쳐 쓰게 한 것이요? 일본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본인과 xakytos씨가 이렇게 건전하게 토론을 하고 있는데 본인이 만든 글씨로 xakyntos씨가 굴복했다 조공을 했다 이렇게 쓴다면 그게 소설이지 역사겠습니까. 중국 사서만 번역하는 것은 사학이 아닙니다. 위키백과 특성상 저작권이 있는 학자들 논문을 첨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쪽의 공격적인 편집 성향은 재야사학이 나치라고 핑계를 되면서 어떻게든 한국 역사를 중국인들이 흡족해 할 수있는 친중적 역사로 서술하려는 모습이 본인에게는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쪽이 너무 공격적인 편집 성향과 24시간을 걸치는 편집으로 본인 학자 지인 중에서도 이건 편집의 소용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xakyntos씨의 입맛에만 맛는 편집만 하는 것은 위키백과의 사유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20.71.168.122 (토론) 2019년 4월 21일 (일) 20:38 (KST)--
참고로 본인은 재야사학이 아니고 그쪽이 좋아하는 정통 사학계입니다. 본인 생각으로는 그쪽이 재야사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결국은 생존을 위해서 사대주의를 택했던 시기가 어느 정도 있는 한국 역사를 사대주의 질서에 편입된 역사로 쓰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알다싶히 중국인들은 또다른 천자를 표방하던 몽골계 민족에게 땅 한푼 남기지 못하고 정복당했지만, 대한민국은 유연한 외교로 인해 한민족 왕조가 제대로 이어질 수 있었음) 고대 한국인과 몽골계 문화의 유사성은 정통 사학입니다. 삼국사기 또한 중국 사서를 참고를 하였지만 사서가 그렇게 쓰여 있어도 안에 내용을 확인하는 작업이 따로 있는 것이 정통 사학입니다. 그리고 본인은 재야사학처럼 보수적인 성향이 아닙니다. 본인 고향이 전라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을 옆에서 본 적도 있는 진보적인 사람입니다. 위키백과는 어느 정도 백과사전으로 권위가 있는 사이트인데 참으로 걱정입니다.220.71.168.122 (토론) 2019년 4월 21일 (일) 20:50 (KST)--

학자라는 분께서 출처를 어떻게 달아야 하는지도 모르시네요. 귀하께서 다신 소위 넷상 출처에는 많은 학자라는 내용을 보증할 수 있는 내용이 단 한 글자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삭제되는 것입니다. 더하여 논문을 올릴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을 보니, 논문을 쓰신 적은 과연 있으신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논문에서 연구사 검토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논문에 다른 학자들의 논문을 인용하거나 정리하여 근거로 삼는 것은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위키백과는 논문 쓰는 것과 조금의 차이도 없는 수준으로 출처 제시 요구를 하고 있답니다. 대체 어디서 어떤 논문을 쓰신 학자이시기에 대학원 근처에도 못가본 저 같은 학사 나부랭이도 알고 있는 기본적인 소양조차 모르시고 계신지요?--Xakyntos (토론) 2019년 4월 23일 (화) 08:19 (KST)

외부 링크 수정됨 (2019년 8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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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9년 8월 18일 (일) 07:44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