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고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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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편집]

고려장이 실제로 있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므로, '논란이 있다'라기보다는 '잘못 알려졌다'고 하는게 더 옳은것 같습니다. (이건 제 독자연구가 아닙니다.)--Dllsgh1130 (토론) 2009년 3월 6일 (금) 21:36 (KST)[답변]

“고려장”이라는 낱말은 실재했습니다. 그것을 근거로 고려장 설화의 내용도 실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고려장 설화가 설화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이런 점 때문에 “잘못 알려졌다”라고 적을 수는 없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3월 8일 (일) 14:28 (KST)[답변]

고려장이란 낱말은 1882년 그리피스 저서 '은자의 나라 한국' 이 처음 아닌지요? 그 이전에 문헌으로 상고할 수 있는 용어는 기로국 설화인데 그 사이에 다른 고려장 용어 기록이 있는지 알고싶습니다.

표제어 정의[편집]

본문 내용을 보면 고려장이 부모를 내다 버리는 장례 풍습을 뜻하는 말이었는지, 무덤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였는지, 어느 쪽으로도 확실하게 단정을 할 수가 없는데, 표제어 정의에서는 이미 둘 중 전자를 확정적으로 가리키고 있군요. 균형을 맞추기 위해 두 가지 내용 모두 표제어 정의에 담아야겠습니다. --〔아에이오우〕 (토론) 2010년 4월 2일 (금) 22:20 (KST)[답변]

고려장은 실제 력사사실일수 있다. 중국 길림성 화룡현 팔가자 상남마을을 북쪽으로 금방 벗어나면, 길 량옆에 퍼그나 넓고 스산한 돌무덤터가 있었는데, 고고학적으로 발해국 북대무덤떼라고 하고, 당지 사람들은 그곳을 고려장터라고 하였다. 어쩌면 우리의 《고려장》 전설이 실제 력사 사실일수 있으며, 그 발원지가 바로 이곳일수 있다. 당지에서 전해졌던 그의 유래도 대체로 우리의 《고려장》 전설과 비슷하다. 즉 부모가 늙어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이곳에 돌각담을 쌓아놓고, 부모를 돌각담 안에 모시고, 먹을것을 얼마간 넣어 주는데, 그 먹을것이 떨어지면 부모는 곧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큰 돌로 돌각담을 봉해 버리고, 장례를 지낸다고 한다. 그 고려장터에서 동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5키로되는 곳에 바로 한때는 발해국의 수부로 까지 되면서 흥성했던 중경현덕부 엣터다. 그곳에서 또 동남쪽으로 직선거리 약15키로되는 곳에 발해 정효공주묘가 있다. 고고학적으로 이 북대무덤떼는 발해때의 것으로 이미 고증이 되여 있다. 그렇다면 발해때의 돌무덤들이 고려와는 어떤 상관이 있었기에 고려장터라는 이름을 가졌을가? 가능하게 이 돌무덤들은 발해국의 고구려 후예들의 무덤들일수 있다. 당시 발해에는 많은 고구려 후예들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상식적인 력사 사실이다. 고려장 전설은 우리민족 전통례의에 어긋난다고 여겨져, 많은 학자들은 이것은 전설일 뿐이지, 실제 력사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당시는 해마다 전란으로 남정북전 해야하는 어려운 형편이였다고 감안할때, 고려장이 실제 력사사실이라고 해도 어느정도 리해할수 있을것 같다. 1980년도 전까지 이 고려장터는 보존이 잘 되여 있었는데, 지금은 언녕 혼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에는 직공 아빠트가 빼곡히 들어앉아 있다.

외부 링크 수정됨 (2019년 10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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