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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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내용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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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사건을 전후한 사실들[편집]

  • 1994년 10월 북미 간에 제네바합의(북한이 핵개발을 동결하고 그 대가로 경수로 2기를 지어준다는 게 골자)시 한국몰래 협의한게 발각됨. 김영삼 대통령 분노. (출처: 중앙일보 2005년 6월 22일자)
  • 1996년 9월 18일 강릉 무장공비 사건 발생
  • 1996년 9월 24일 강릉침투 북한 잠수함이 2척이었고, 미군이 이를 사전에 알고도 한국에 알려주지 않았다는 정보를 전해준 로버트 김 FBI에 체포 (참고 : 로버트 김)
  • "김 전 대통령이 잠수함 침투 사건 뒤 북한 내 타격 목표물을 선정했으나 미국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 "국무.국방장관과 미 중앙정보국(CIA)국장이 각자 한국 측 상대방을 설득했으나 한국 측은 듣지 않았다" (김동현(69) 전 미국 국무부 통역관. 2005년 11월 7일,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강연에서)
  • 1996년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 한국은 보복 공격을 주장
    • 미측은 반대
  • 1996년 11월 마닐라 APEC 정상회담
    • 빌 클린턴 대통령 : "우리의 오해인가,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한.미)동맹의 성격이 변한 것이냐" "우리 장군들은 한국이 취하는 어떤 행동도 주한미군을 끌어들이게 됨으로써 북한과의 충돌에 상승작용을 일으킬 것을 우려하고 있다"
    • 김영삼 대통령 : "행동을 취하기 전 미국과 협의하겠다"
    • "정상간 대화를 직접 국무장관이 기록하는 것을 처음 봤다" (김동현(69) 전 미국 국무부 통역관)
  • "국방부가 당시 북한의 특정 지역에 대한 응징 보복 등 다양한 대응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안다" (김영삼 대통령 통역이었던 박진 한나라당 의원)
  • 1997년 1월 23일 : 한보철강 부도 이래 외환위기 사태의 시작 (연표 참고 : IMF 구제금융사건)
  • 1997년 11월28일 오후 2시 클린턴 대통령은 김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의 재무상태가 극도로 심각하기 때문에 빠르면 1주일 후인 다음주말쯤 부도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하고 현실적인 길은 늦어도 3일 이내에 신뢰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경제·재정 프로그램을 국제통화기금(IMF)과 합의해 발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서울신문 2005년 5월 9일자)

관련 항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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