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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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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Karl Barth
1956년 3월의 칼 바르트
학자 정보
출생1886년 5월 10일
스위스 바젤
사망1968년 12월 10일(1968-12-10)(82세)
스위스 바젤
성별남성
직업
종교개신교
배우자넬리 호프만
활동 정보

칼 바르트(Karl Barth, 1886년 5월 10일~1968년 12월 10일) 혹은 카를 바르트스위스개혁 교회 목사이다. 《로마서 주석》, 《고백교회》, 《바르멘 선언》,[1][2] 그리고 미완성의 대작인 《교회교의학》으로 잘 알려져있다.[3][4][5]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로 꼽히며, 바르트의 영향력은 학문적 범위를 넘어 대중 문화로 확장되어 1962년 4월 20일 타임지 표지에 등장하기도 했다.[6]

바르트는 동시대 많은 개신교 신학자들처럼 아돌프 폰 하르낙,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등에게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 교육을 받았다.[7] 처음에는 스위스 시골 마을 사펜빌(Safenwil)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하여 "사펜빌의 빨갱이 목사"로 알려졌다.[8] 이곳에서 그는 자신이 배운 자유주의적 기독교에 대해 점점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1919년 첫 번째 판 로마서 주석(로마서 I)을 집필하여 신약성경을 새롭게 읽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1921년 로마서 주석의 두 번째 판을 출판했는데, 여기서 자유주의 신학과의 공개적 단절을 선언하며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었다.[9]

예수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인 인간으로, 성서를 인간의 종교적인 경험의 기록으로, 윤리적인 지침서로 이해하던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이 헌신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으로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정통주의 신학의 관점에서 그의 계시관과 역사관은 차이점을 보였기에 그의 이러한 신학적인 성격을 신정통주의라고 부른다. 폴 틸리히, 에밀 브루너루돌프 불트만과 함께 20세기 초 개신교 신학계를 주도했다. 그 외에도 바르트는 디트리히 본회퍼, 위르겐 몰트만, 헬무트 골비처, 제임스 H. 콘,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토마스 F. 토렌스, 한스 큉, 그리고 라인홀드 니버, 자크 엘륄과 같은 신학자뿐 아니라, 플래너리 오코너, 존 업다이크, 미클로시 센트쿠시(Miklós Szentkuthy)와 같은 소설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바르트는 현대 기독교 윤리학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는데,[10][11][12][13] 스탠리 하우어워스, 존 하워드 요더, 자크 엘륄, 올리버 오도너번 등의 윤리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10][14][15]

칼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 독일어 판 Kirchliche Dogmatik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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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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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 프리드리히 프리츠 바르트의 장남인 칼 바르트는 유년기와 청년기를 베른에서 보냈으며, 1904년 베른 대학교, 베를린대학교, 튀빙겐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신학생 칼 바르트는 교수들의 영향으로 당시 유럽신학계의 주류였던 자유주의 신학을 배웠다. 1911년부터 1921년까지 스위스의 작은 마을 자펜빌의 교회에서 개혁교회 목사로 목회하면서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잘못된 사회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나라복음으로써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래서 자본가들로부터는 '빨갱이 목사'(Red Pastor)라는 비난을 받았고, 일부 공장주들은 개신교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교파를 바꾸는 일도 있었다 한다.

자유주의 신학과의 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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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배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한계를 느끼게 되는데, 하나님의 거룩함과 정의에 대해 설교하지 않으며 성경을 윤리책으로 오해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잘못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특히 1914년 8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대부분이 전쟁을 지지한 '어둠의 날'은 그에게 자신이 배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한다. 이때부터 그는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반박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가르치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당시 로마 가톨릭 신학자 칼 아담은 '칼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졌다'고 말할 정도로 유럽신학계의 충격은 컸는데, 칼 바르트 자신도 '나는 우연히 잡은 교회종의 줄을 잡아당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잠에서 깨게 한 사람 같았다'고 할 정도였다.

전통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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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과 결별한 이후, 자신이 속한 개혁교회(Reformed) 전통 안에서 신학적 방향을 재정립하였다. 그는 개혁교회 신학의 주요 인물인 장 칼뱅울리히 츠빙글리의 사상, 그리고 제2 스위스 신앙고백을 비롯한 개혁교회의 신앙 고백 전통을 깊이 연구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의 주권성과 계시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신학을 전개하였으며, 이는 이후 ‘신정통주의’(neo-orthodoxy)로 분류되는 신학적 흐름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신학은 신학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을 촉발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부 연구자들은 바르트의 이러한 신학적 태도가 현대 교회의 신학적 자기성찰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평가한다.

반 나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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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는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야 할 기독교인들과 개신교 신학생들까지도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구원을 위해 예수를 보내고, 경제적, 사회적 구원을 위해 히틀러를 보냈다"면서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숭배하는 우상숭배를 하자, 나치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공동체인 고백교회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그는 히틀러의 나치즘운동이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숭배하는 우상숭배요, 유대인, 집시등 다른 민족을 차별하고 박해하는 악마적인 것으로 보았고, 이러한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대중강의와 설교를 통해 드러냈다. 그의 이러한 반 나치이념의 특징을 보여주는 문헌은 《바르멘 선언》이다. 바르멘 선언은 1934년 독일 바르멘에서 친나치적인 독일 교회에 반대하는 가톨릭 성직자들과 개신교인들이 모여서 발표한 反 나치 신학선언으로, 하나님의 말씀(Logos)인 예수 그리스도 그 분외에는 누구에게도 복종할 수 없으며, 자신을 길이요, 진리로 선언한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도, 설교의 주제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주요주제이다.

결국 그는 나치 독일의 탄압으로 독일밖으로 영구추방당하여, 스위스 바젤 대학교로 이직했다. 칼 바르트의 나치반대운동은 칼 바르트 연구의 핵심으로 불릴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폴 틸리히, 디트리히 본회퍼 등에 의해 그 명맥을 이었다.

전후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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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히틀러의 패망으로 끝난 후 독일 본 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으며, 1948년에는 공산주의 국가가 된 헝가리를 방문, 헝가리 개혁교회와 대화하였다. 또한 1948년 에큐메니칼 운동을 위해 결성된 세계 교회 협의회(WCC)의 성립과정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의 주요 활동은 저술활동으로 《교회교의학》을 저술했으며, 인생의 말년인 1961년부터 1962년 사이에는 자신의 강의 내용을 정리한 《개신교 신학입문》을 저술하였다. 이중 《교회교의학》은 1968년 바르트의 죽음으로 일부내용이 저술되지 못한 미완성작품이며, 한국어판은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번역,출판 중이다. 현재 4권까지 출판되어 있다. 1968년 별세 전날 20세기의 대표 신학자 바르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어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했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고통에 차 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다."[16]

종교 사회주의 운동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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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는 1911년부터 스위스 공단지역인 자펜빌에서 목회하면서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의 억압과 착취를 받는 현실을 보았으므로 현실참여적 성직자가 되었다. 바르트는 1913년 스위스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하였고, 당시 유럽 교회가 관심을 갖고 있던 종교 사회주의 운동에도 중심인물로 참여하였다.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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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의 신학은 20세기 개신교 신학을 근본적으로 재편한 사상 체계로 평가된다. 그의 신학적 작업은 방대한 대작 《교회교의학》(Kirchliche Dogmatik)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이해, 화해와 구원, 교회와 윤리를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 바르트의 신학은 근대 이후 인간 이성 중심 신학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기계시를 신학의 유일한 토대로 삼는다는 점에서 계시 신학으로 분류된다.[17]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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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의 신학은 20세기 개신교 신학의 전환점으로 평가되며, 근대 이후 인간 이성 중심 신학에 대한 근본적 비판 속에서 형성되었다.[18] 그는 신학의 출발점을 인간의 종교 경험이나 인식 구조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자유로운 자기계시에 두었으며, 이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으로 주어졌다고 보았다.[19]

바르트의 신학은 전반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 구조를 가지며, 선택, 화해, 구원, 윤리, 교회 이해를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구성한다. 특히 《교회교의학》에서 전개된 선택의 교리와 화해론은 전통적 예정론과 구원론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를 중심에 두는 방향으로 전개된다.[20]

또한 바르트는 삼위일체적 계시 이해를 통해 하나님의 초월성과 인격성을 동시에 강조하였으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사건의 증언으로 이해하였다.[21] 이러한 신학적 입장은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 중심적 경향과 신비주의의 주관화 경향 모두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교회의 윤리적·예언자적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22]

바르트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성, 계시의 주권성, 은혜와 윤리의 불가분성을 핵심 특징으로 하며, 이로 인해 보편구원 논쟁, 그리스도 일원론(Christomonism) 논쟁 등 다양한 신학적 논쟁을 촉발하였다.[23]

신학의 방법 (계시 중심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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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의 신학 방법은 근대 자유주의 신학이 인간의 종교적 의식과 경험에서 신학을 출발시킨 데 대한 비판으로 형성되었다. 그는 칸트 이후 인식론이 제기한 인간 인식의 한계를 진지하게 수용했으나, 하나님 인식의 가능성을 인간 인식 구조나 종교 경험에서 찾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자유로운 자기계시 사건에서 찾았다.[24]

이러한 점에서 바르트는 흔히 칸트의 현상/본체 구분을 계승한 것으로 오해되지만, 실제로는 그 구분을 신학적으로 유지하기보다는 계시 사건을 통해 전복하려 했다. 하나님은 인간 인식의 한계 너머에 계신 분이지만, 동시에 자유롭게 자신을 알리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바르트는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며, 종교를 인간의 자기의식이나 감정에서 출발시키는 접근은 결국 하나님을 인간 이해의 산물로 전락시킨다고 보았다.[25] 인간의 주관적 종교 경험은 계시에 대한 응답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성경에 대해 바르트는 이를 단순한 객관적 역사 기록이나 인간 종교 경험의 집합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성경을 하나님이 자신을 증언하는 증언의 장(witness)으로 이해했으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인간의 결단이나 인식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26]

삼위일체와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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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 신학의 핵심 목표 중 하나는 개신교 신학에서 약화되었던 삼위일체 교리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는 계시를 성부·성자·성령의 삼중적 행위로 이해하였으며, 하나님은 계시하는 분, 계시 그 자체, 계시가 인간에게 전달되는 사건으로 동시에 존재한다고 보았다.[27]

바르트에 따르면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종교적 직관이나 사색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수직적으로”(Senkrecht von Oben) 주어지는 사건이다.[28] 이러한 계시 이해는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과 동시에 계시의 인격적 성격을 함께 강조한다.

선택과 화해의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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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교의학》 II/2에서 전개된 선택의 교리는 바르트 신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으면서도 논쟁적인 부분이다. 바르트는 전통적 예정론이 하나님의 선택을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된 추상적 신적 의지로 이해함으로써, 하나님을 임의적이고 불투명한 존재로 만들 위험이 있다고 비판하였다.[29]

바르트는 선택을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으로 이해하되, 그 결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결정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의 주체이자 동시에 선택의 대상이며,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를 선택하시고 동시에 인류의 거부와 심판을 그리스도 자신에게 담당시키셨다.[30]

이로써 바르트는 전통적 의미의 이중예정론을 개인들의 이중 분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단일한 결정으로 재구성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뱅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것으로 평가된다.[31]

구원과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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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의 구원론은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화해 행위가 객관적으로 성취되었다고 보았으며,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이 사건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32]

바르트는 보편구원론을 명시적으로 거부했으나,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의 범위를 인간이 제한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모든 인간이 필연적으로 구원된다고 주장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최종적으로 배제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33]

이 때문에 그의 구원론은 종종 ‘희망의 보편성’이라는 표현으로 설명된다. 구원은 교리적으로 확정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 앞에서 신앙이 희망으로 기다려야 할 영역이라는 것이다.[34]

교회와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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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에게 신학은 교회를 위한 학문이다. 그는 신학이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듣고 증언하도록 섬겨야 한다고 보았다.[35]

윤리 역시 은혜와 분리될 수 없다. 바르트에게 윤리는 일반적 도덕 원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책임 있는 응답이다. 은혜는 인간을 책임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순종하도록 부른다.[36]

이러한 이해 속에서 바르트는 교회가 시대의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으며, 바르멘 선언을 통해 교회의 예언자적 책임을 실천적으로 드러냈다.

비판과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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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의 신학은 20세기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동시에 다양한 비판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논쟁은 주로 그의 그리스도 중심적 방법론, 선택과 구원 이해, 그리고 자유주의 및 신비주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리스도 일원론(Christomonism) 논쟁

바르트의 신학은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성을 특징으로 하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이러한 강조가 삼위일체의 균형을 훼손하고 성부와 성령의 독자적 역할을 약화시킨다고 비판하였다. 특히 코넬리우스 반틸(Cornelius Van Til)은 바르트의 신학이 성자 중심으로 과도하게 집중되어 결과적으로 *그리스도 일원론(Christomonism)*에 이른다고 주장하였다.[37]

이에 대해 바르트와 그의 옹호자들은, 바르트가 삼위일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계시의 실제적 형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바르트에게서 성부와 성령은 결코 소거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방식으로 이해된다.[38]

보편구원 논쟁

바르트의 선택론과 화해론은 보편구원론 논쟁을 촉발하였다. 그는 모든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객관적인 화해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면서도, 모든 인간이 필연적으로 구원된다고 단정하는 보편구원론은 거부하였다.[39]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밀 브루너, 리처드 바우컴(Richard Bauckham) 등 일부 신학자들은 바르트의 입장이 실질적으로는 *온건한 보편주의(soft universalism)*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고 평가하였다.[40] 바르트 자신은 구원을 교리적으로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희망의 문제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41]

자유주의·신비주의와의 관계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이 종교를 인간의 의식과 경험에서 출발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초월성과 주권을 훼손했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특히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을 인간 중심적 신학의 전형으로 간주하며, 계시 신학으로의 단절을 선언하였다.[42]

동시에 바르트의 신학은 신비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다. 그는 계시를 인간 내면의 직접적 체험이나 종교적 고양 상태로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하며, 계시는 항상 하나님의 자유로운 사건으로서 인간에게 외부로부터 주어진다고 보았다.[43] 이러한 입장은 자유주의와 신비주의 모두에 대한 비판으로 기능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종교적 주관성을 과도하게 억제한다는 비판도 받아 왔다.[44]

바르트 이후 신학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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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의 신학은 20세기 이후 개신교 신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자유주의 신학 이후의 신학적 방향 설정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의 종교적 의식이나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자유로운 자기계시 사건으로 이해함으로써, 신학의 출발점과 기준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였다.[45]

바르트의 신학은 이른바 ‘신정통주의’(neo-orthodoxy)로 분류되며, 이는 자유주의 신학과 근본주의 신학 모두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이해되었다. 그는 성경과 계시의 객관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를 단순한 문자주의나 교리주의로 환원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로서 사건적으로 주어진다고 주장하였다.[46]

그의 사상은 에밀 브루너, 디트리히 본회퍼, 에버하르트 융엘,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등 다양한 신학자들에게 직접적 또는 비판적 영향을 주었다. 특히 본회퍼의 윤리학과 교회 이해, 융엘의 하나님의 존재 이해(“하나님의 존재는 되어감이다”)는 바르트의 계시 신학과 깊은 연관 속에서 전개되었다.[47]

또한 바르트의 교회론과 예언자적 신학 이해는 정치 신학과 해방 신학의 형성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교회가 국가나 이데올로기에 종속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언제나 비판적 자유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았고, 이러한 입장은 바르멘 선언(1934)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48]

후기 20세기 신학 담론에서 바르트는 여전히 논쟁적 인물로 남아 있다. 그의 강한 그리스도 중심성은 일부로부터 ‘그리스도 일원론’(Christomonism)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선택론과 구원론은 보편구원 논쟁을 촉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트는 현대 신학이 하나님을 말할 수 있는 언어와 책임의 한계를 재정립한 신학자로 평가되며,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조직신학, 성서신학, 윤리학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다.[49]

칼 바르트 관련 도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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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 바르트》, 에버하르트 부쉬 지음, 손성현 옮김, 복있는 사람, 2014
  • 《위대한 열정》, 에버하르트 부쉬 지음,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
  • 《칼 바르트 말씀의 신학 해설》, 정승훈 지음, 새물결플러스, 2017
  • 《칼 바르트의 신학》, 김명용 지음, 이레서원, 2007
  • 《칼 바르트와 동시대성의 신학》, 정승훈 지음, 대한기독교서회, 2006
  • 《칼 바르트 - 말씀하시는 하나님, 응답하는 인간》, 마이클 레이든 지음, 윤상필 옮김, 비아 (출판사)
  • 《로마서》,칼 바르트 지음, 손성현 옮김,복있는 사람, 2017년 : 1922년에 칼 바르트가 주석한 로마서.
  • 《왕양명과 칼바르트》,김흡영 지음, 예문서원, 2020년
  • 《설교자의 기도》,칼 바르트 지음, 박정수 옮김,비아, 2019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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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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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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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utz, Wyatt (2018년 4월 4일). Karl Barth and the Barmen Declaration (1934). The PostBarthian. 2019년 2월 23일에 확인함.
  2. Karl Barth – Christian History.
  3. The Life of Karl Barth: Church Dogmatics Vol IV: The Doctrine of Reconciliation 1953–1967 (Part 7) (미국 영어). The PostBarthian. 2019년 4월 5일. 2019년 4월 5일에 확인함.
  4. Name (Boston Collaborative Encyclopedia of Western Theology). People.bu.edu. Retrieved on 15 July 2012.
  5. Houtz, Wyatt (2016년 4월 21일). Karl Barth's Church Dogmatics Original Publication Dates. The PostBarthian. 2019년 2월 23일에 확인함.
  6. Theologian Karl Barth, Time, 1962년 4월 20일, 2019년 2월 23일에 확인함
  7. Houtz, Wyatt (2018년 4월 18일). The Life of Karl Barth: Early Life from Basel to Geneva 1886–1913 (Part 1). The PostBarthian. 2021년 1월 23일에 확인함.
  8. Houtz, Wyatt (2017년 10월 3일). The Romans commentary by the Red Pastor of Safenwil: Karl Barth's Epistle to the Romans. The PostBarthian. 2019년 2월 23일에 확인함.
  9. Houtz, Wyatt (2018년 4월 18일). The Life of Karl Barth: Early Life from Basel to Geneva 1886–1913 (Part 2). The PostBarthian. 2019년 2월 23일에 확인함.
  10. 1 2 Parsons, Michael (1987). Man Encountered by the Command of God: the Ethics of Karl Barth (PDF). Vox Evangelica 17: 48–65. 2012년 11월 17일에 확인함.
  11. Daniel L. Migliore (2010년 8월 15일). Commanding Grace: Studies in Karl Barth's Ethics. W.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ISBN 978-0-8028-6570-0.
  12. Matthew J. Aragon-Bruce. Ethics in Crisis: Interpreting Barth's Ethics (book review) Princeton Seminary Library. Retrieved on 15 July 2012. 보관됨 9 6월 2010 - 웨이백 머신
  13. Oxford University Press: The Hastening that Waits: Nigel Biggar 보관됨 20 11월 2012 - 웨이백 머신. Oup.com. Retrieved on 15 July 2012.
  14. Journal – The Influence of Karl Barth on Christian Ethics. www.kevintaylor.me (7 April 2011). Retrieved on 15 July 2012. 보관됨 23 10월 2011 - 웨이백 머신
  15. Choi Lim Ming, Andrew (2003). A Study on Jacques Ellul's Dialectical Approach to the Modern and Spiritual World. wordpress.com
  16. 현대 신학 이야기》-칼 바르트:하나님 말씀의 신학자/박만 지음/살림출판사, 23쪽.
  17. Bruce L. McCormack, Karl Barth’s Critically Realistic Dialectical The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8. Bruce L. McCormack, Karl Barth’s Critically Realistic Dialectical The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19. Karl Barth, Church Dogmatics I/1, T&T Clark, 1975.
  20. Eberhard Jüngel, God’s Being Is in Becoming, T&T Clark, 2001.
  21. John Webster, Holy Scripture: A Dogmatic Sketch,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22. George Hunsinger, How to Read Karl Barth, Oxford University Press, 1991.
  23. Eberhard Busch, Karl Barth: His Life from Letters and Autobiographical Texts, Wipf & Stock, 2015.
  24. Bruce L. McCormack, 앞의 책.
  25. Karl Barth, Theology of Schleiermacher, Eerdmans, 1982.
  26. John Webster, Holy Scripture: A Dogmatic Sketch,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27. Karl Barth, Church Dogmatics I/1, T&T Clark.
  28. George Hunsinger, How to Read Karl Barth, Oxford University Press, 1991.
  29. Karl Barth, Church Dogmatics II/2, §33.
  30. Karl Barth, Church Dogmatics II/2, §33.
  31. Eberhard Jüngel, God’s Being Is in Becoming, T&T Clark.
  32. Karl Barth, Church Dogmatics IV/1.
  33. Eberhard Busch, Karl Barth: His Life from Letters and Autobiographical Texts, 2015.
  34. Richard Bauckham, “Universalism: a historical survey,” Themelios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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