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 디 사보이아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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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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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아 공작 | |
재위 | 1638년 10월 4일 ~ 1675년 6월 12일 |
전임 | 프란체스코 자친토 |
후임 |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
신상정보 | |
출생일 | 1634년 6월 29일 |
출생지 | 사보이아 공국 토리노 |
사망일 | 1675년 6월 12일 | (40세)
사망지 | 사보이아 왕국 토리노 |
가문 | 사보이아가 |
부친 | 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 |
모친 | 프랑스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
배우자 | 프랑스의 프랑수아즈 마들렌느 사부아의 마리 잔 |
자녀 |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
종교 | 로마 가톨릭 |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이탈리아어: Carlo Emanuele II di Savoia, 프랑스어: Charles Emmanuel II de Savoie 샤를 에마뉘엘 2세 드 사부아[*] 1634년 6월 20일 ~ 1675년 6월 12일)는 사보이아 공국의 군주이자 키프로스와 예루살렘의 왕이다. 사보이아 공작 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와 프랑스 공주 마리아 크리스티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형 프란체스코 자친토가 즉위 1년만에 요절하면서 삼남 카를로 에마누엘레는 4세의 나이에 어머니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섭정을 받아 사보이아 공작위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1663년 어머니의 조카이자 자신에게는 이종사촌누이가 되는 오를레앙 공 가스통의 딸 프랑수아즈 마들렌느과 결혼했다. 프랑수아즈 마들렌느는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채 1년만에 죽었고 카를로 에마누엘레는 사부아의 마리 잔과 재혼했다. 그는 사보이아 공국의 발전에 큰 힘을 쏟았고, 2만명의 상비군을 영토에 배치하였다. 열렬한 가톨릭교회 신자였던 그는 왈도파의 학살을 명령하여 유럽 각지의 문학가로부터 비난을 샀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카를로 에마누엘레도 젊은 나이에 죽었고 아들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가 어머니의 섭정 하에 사보이아 공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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