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진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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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진(崔世珍, 1468년 - 1542년)은 조선시대의 학자이다. 본관은 괴산, 자는 공서(公瑞)이다.

연산군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중국어에 능통하여 외교 문서를 도맡아 처리하였다. 중종 때에는 한글 자모음을 정하는 일을 보았다.

생애[편집]

1486년(성종 17년) 식년과의 생원시에 입격하여 생원이 되고 음서로 관직에 올라 습독관(習讀官)으로 재직 중 1503년(연산군 9년) 별시문과에 병과 2등으로 합격하였다. 1524년 군자감정으로 있으면서 《친영의주》와 《책빈의주》등을 한글로 풀이하였다. 또한 1527년 《훈몽자회》를 완성하였는데, 이것은 한글의 자음·모음의 이름을 정하고, 순서와 받침 등을 정리한 최초의 저술로 국어학 발달에 큰 업적을 이룩하였다.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 질정관(質正官), 군자감정(軍資監正) 등을 거쳐 절충장군충무위부호군(折衝將軍忠武衛副護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오위장(五衛將), 상장군(上護軍), 승문원제조(承文院提調), 절충장군의흥위부호군(折衝將軍義興衛副護軍) 등을 역임했다.

1530년 첨지중추 부사로서 《황극경세서집》을 지어 왕에게 바쳤다. 1539년 승문원 제조로 《대유대주의》와 《황극경세서설》을 지어 바쳤다. 당대에서 가장 뛰어난 중국어 학자로 사신들을 맞을 때 중요한 역을 맡았다. 그러나 중인(中人) 출신이었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는 크게 우대 받지 못하였다. 그가 중인출신이라 때로는 당시 양반들의 비난을 받았으나 그 때마다 중종과 좌의정 남곤(南袞) 등의 변호로 고비를 넘겼다. 40여 년에 걸쳐 17종의 저술을 남겼으며 대표적인 저서로 《경성지》, 《여호경》, 《사성통해》, 《소학편몽》, 《운회옥편》등이 있다. 최종 관직은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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