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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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성
Choi Dae-Seong
두산 베어스 No.30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85년 5월 17일(1985-05-17) (33세)
출신지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신장 183 cm
체중 106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2004년
드래프트 순위 2004년 2차 2라운드(롯데 자이언츠)
첫 출장 KBO / 2004년 4월 5일
대구삼성전 구원
계약금 1억원
연봉 3,500만원 (2018년)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월드컵 2005년 네덜란드
메달 기록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월드컵
2005 네덜란드 야구

최대성(崔大成[1], 1985년 5월 17일 ~ )은 KBO 리그 두산 베어스투수이다.

선수 경력[편집]

아마추어 시절[편집]

부산중학교 시절 팀내 에이스였으나, 2001년 부산고등학교에 입학 후에는 조성옥 감독에 의해 포수로 포지션이 변경되었다. 선배 전병두, 동기 장원준-박정태, 후배 이왕기 등 투수 자원으로 넘쳐나는 부산고 마운드에 설 자리가 없었고, 3학년 때인 2003년 들어서야 포수 이외에 투수로서도 54⅓이닝을 소화했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편집]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투수로 2차 2라운드(전체 9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고, 데뷔 초기부터 주로 중간 계투로 등판하다 2007년 3승 2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2.67을 기록하며 비로소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해 5월 10일 문학 SK전에서 158km 패스트볼로 KBO 리그 최고 구속 타이 기록을 작성하며 '국내 최고 파이어볼러'로서 위력을 과시했지만,[2] 당시 한화 이글스 김인식 감독이 "가만히 있으면 다 볼"이라고 말할 정도로 불안한 제구력은 여전히 약점이었다.[3]

결국 2008년 7월 15일토미 존 수술을 받고[4] 1군에 오르지 못한 채 2009년 시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소했다.

소집 해제되어 2012년 복귀한 이후 그해 8월 8일 LG전에서 2,310일 만에 세이브를 기록했고,[5] 한달 뒤인 9월 7일 사직 한화전에는 159km를 던져 자신의 최고 구속 기록을 경신하였다.[6] '양떼야구 핵'으로서 빠른 볼을 앞세워 롯데의 마당쇠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며 71경기 67⅔이닝 8승 8패 1세이브 17홀드 평균자책점 3.59를 기록,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2013년 팔꿈치에서 뼛조각이 발견되어 다시 시즌을 마감했다.[7]

2014년에는 부상에서 복귀하여 41경기에 출전, 2승 2패 1홀드 평균자책점 2.58로 시즌을 마감했다. 40경기 이상 출전한 롯데 선수 가운데 가장 평균자책점이 낮았지만 코칭스태프에 믿음을 주지 못하고 1군과 2군을 오가며 시즌을 보냈다.

kt 위즈 시절[편집]

2015년 롯데 자이언츠와의 4대5 트레이드에 의해 kt 위즈로 이적하였다.[8] 그러나 고질적인 부상의 여파로 인해 kt와의 3년 동안 원포인트 릴리프로서 고작 8경기 2⅔이닝만 투구, 두산 시절부터 시작된 슬럼프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두산 베어스 시절[편집]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였다. 이적하자마자 곧바로 2018년 개막엔트리에 포함되었지만, 3월 31일 수원 kt전에서 한 이닝에 만루홈런 2개를 얻어맞으며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한만두’ 투수가 되는 불명예의 주인공이 되었다. 8회 1이닝 동안 무려 51개의 공을 던지며 7피안타 2피홈런 9실점하는 인생 최악의 투구를 하였고,[9] 경기 직후 1군엔트리에서 바로 말소되어 2018시즌의 대부분을 퓨처스 리그에서 보냈다. 다만 9월 중순 1군으로 승격되어 후반기 평균자책점 3.27(7경기 출장 11이닝 투구)을 마크하며 재기의 몸부림을 보였다.

국가대표 경력[편집]

2005년 야구 월드컵[편집]

프로 시즌 2년차 때인 2005년 9월,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제36회 야구 월드컵을 위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선발, 기대 이상의 맹활약을 펼쳐 최희섭, 김병현, 홍성흔 등이 참가했던 1998년 대회 이후 7년만에 대한민국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9월 8일 A조 3차전 브라질전에 구원 등판해 152㎞ 강속구를 뿌려대며 3이닝 7탈삼진 1피안타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따내 기세를 올린 후, 9월 11일 6차전 중국전에 선발로 출격해 7회까지 퍼펙트 피칭을 하며 7⅓이닝 12탈삼진 2피안타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9월 15일 8강 일본전에서도 5대1 승리를 이끌며 4강행의 주역이 됐다. 150㎞가 넘는 불같은 강속구를 주무기로 3할대 타자만 10여명이 포진한 일본의 강타자들을 경기 내내 철저하게 압도하며 8이닝 10탈삼진 9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 경기 MVP와 함께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9월 17일 로테르담에서 열린 결승전에서도 선발 투수로 나와 4이닝 동안 3탈삼진 4피안타 1실점으로 선전했지만 타선이 침묵, 9회 연속 우승을 노리는 쿠바에 0대3으로 패했다. 하지만 4경기에서 2승 1패 1세이브 방어율 1.21에 22⅓이닝 동안 탈삼진을 무려 32개나 솎아내며 탈삼진왕에도 선정되는 등 특급 투수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쳐 귀국 후 한동안 매스컴에 큰 조명을 받기도 했다.

출신 학교[편집]

배우자[편집]

통산 기록[편집]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2004 롯데 2.84 6 0 0 0 0 0 0 0.000 29 6.1 8 1 3 0 2 2 2
2005 9.20 11 0 0 0 1 0 0 0.000 76 14.2 25 2 5 4 8 17 15
2006 6.60 23 0 0 1 3 1 0 0.250 149 30 43 2 17 3 27 23 22
2007 2.67 41 0 0 3 2 0 7 0.600 229 57.1 39 0 26 5 53 17 17
2008 9.00 2 0 0 0 0 0 0 0.000 7 1 1 0 2 1 0 1 1
2012 3.49 71 0 0 8 8 1 17 0.500 286 67.2 65 5 24 5 50 31 27
2013 5.79 13 0 0 0 0 0 1 - 49 9.1 13 1 6 0 9 8 6
2014 2.58 41 0 0 2 2 0 1 0.500 198 45.1 41 1 25 3 43 17 13
2015 KT 13.50 8 0 0 0 0 0 0 - 19 2.2 4 1 7 0 0 4 4
2018 두산 11.70 8 0 0 0 0 0 0 - 52 10 15 3 8 0 10 13 13
통산 10시즌 4.42 224 0 0 14 16 2 26 0.467 1094 244.1 254 16 123 21 202 133 120

각주[편집]

  1. KBO (2009년 3월 10일). 《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 제4판. 482쪽. 
  2. 권인하 (2007년 5월 11일). “158km 한국 최고 구속 타이 최대성은 누구?”. 《스포츠조선》. 2018년 11월 25일에 확인함. 
  3. 이상학 (2008년 2월 3일). '광속구' 최대성, 자신감과 꾸준함이 '절대 과제'. 《조선일보》. OSEN. 2018년 11월 25일에 확인함. 
  4. 김관 (2009년 5월 28일). “‘158㎞ 사나이’ 최대성 수술후 첫 피칭”. 《스포츠경향》. 2018년 11월 25일에 확인함. 
  5. 김세호 (2012년 8월 8일). “롯데 최대성, 2310일만에 시즌 첫 세이브 달성”. 《다음》. 마이데일리. 2018년 11월 25일에 확인함. 
  6. 장강훈 (2012년 9월 8일). “롯데 최대성 시속 159Km 직구 뿌렸다”. 《매일경제》. 스포츠서울. 2018년 11월 25일에 확인함. 
  7. 김은경 (2013년 6월 18일). “롯데 최대성 오른쪽 팔꿈치 수술”. 《연합뉴스》. 2018년 11월 25일에 확인함. 
  8. 이원만 (2015년 5월 2일). “kt-롯데, 박세웅-장성우 포함 4대5 트레이드 단행”. 《스포츠조선》. 2018년 11월 25일에 확인함. 
  9. “최대성, 한국프로야구 최초 '한만두' 투수 오명”. 《서울신문》. 2018년 3월 31일. 2018년 11월 25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