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철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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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청
설립일 1963년 9월 1일
해산일 2005년 1월 1일
후신 한국철도공사(운영)
한국철도시설공단(現 국가철도공단)(시설)
상급기관 건설교통부

대한민국 철도청(大韓民國 鐵道廳, Korean National Railroad)은 1963년 9월 1일 교통부 외청으로 발족하였으며, 대한민국의 국유 철도의 운영과 그 부대 사업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건설교통부 산하 중앙행정기관이었다.

철도청이 발족된 이후, 만성적인 적자로 인한 부채가 누적되면서 철도경영합리화가 논의되었다.[1] 2005년 1월 1일 한국철도공사한국철도시설공단(現 국가철도공단)으로 개편되면서 폐지되었다.

설치 근거 및 소관 업무[편집]

  • 정부조직법 (법률 제1395호, 1963.08.26 일부 개정) 제28조[2]
  • 철도청 직제 (각령 제1443호, 1963.08.31 제정)

연혁[편집]

역대 로고[편집]

조직[편집]

역대 청·차장[편집]

철도청장[편집]

공화국 대수 이름 임기 출신지 출신학교 비고
제3공화국 초대 박형훈(朴亨勳) 1963년 9월 1일 ~ 1964년 7월 14일 육군 수송감
2대 김진식(金鎭軾) 1964년 7월 14일 ~ 1966년 1월 8일 서울 철도청 공전국장
3대 양택식(梁鐸植) 1966년 1월 8일 ~ 1967년 10월 10일 경남 남해 서울대 경상북도지사&서울특별시장&대한주택공사 사장&동서석유화학 회장
4대 이훈섭(李勳燮) 1967년 10월 10일 ~ 1970년 3월 31일 평남 개천 육사 육군 수송감
5대 김준배(金俊培) 1970년 4월 1일~10월 22일 경북 상주 육사&경희대 산림청장
6대 이용(李龍) 1970년 10월 22일 ~ 1971년 6월 12일 함북 경성 육사 강원도지사&교통부 차관&인천합금철주식회사 사장&인천제철 사장
7대 오용운(吳龍雲) 1971년 6월 12일 ~ 1973년 8월 16일 충북 진천 육사 충청북도지사&제10·13·15대 국회의원
제4공화국
8대 이동화(李東和) 1973년 8월 16일 ~ 1976년 3월 31일 경북 청송 육사 3군단장&1군부사령관&국방대학원장
9대 김재현(金在鉉) 1976년 3월 31일 ~ 1977년 11월 24일 경북 대구
(현재 경북과 분리)
육사 관세청장
10대 이용식(李鏞植) 1977년 11월 24일 ~ 1980년 7월 15일 서울 서울대 철도청 기획관리관&철도청 차장
11대 황해중(黃海重) 1980년 7월 15일 ~ 1981년 5월 21일 서울 서울대 영주·부산지방철도청장&철도청 전기국장&철도청 차장
제5공화국 12대 안창화(安昌和) 1981년 5월 21일 ~ 1983년 1월 12일 평양 철도청 운수국장&철도청 차장&교통부 기획관리실장
13대 최기덕(崔璂德) 1983년 1월 12일 ~ 1988년 12월 13일 경북 대구
(현 경북과 분리)
해사 해병 사단장&해군참모차장
제6공화국
14대 김하경(金夏經) 1988년 12월 13일 ~ 1990년 6월 21일 경북 경주 고려대 철도청 운수국장&철도청 차장
15대 신영국(辛永國) 1990년 6월 21일 ~ 1991년 12월 19일 서울 서울대 철도청 차장&제13·15·16대 국회의원
16대 최평욱(崔枰旭) 1991년 12월 19일 ~ 1993년 3월 4일 경남 남해 육사 보안사령관&교육사령관&산림청장
문민 정부 17대 강신태(姜信泰) 1993년 3월 4~30일 서울 연세대 철도청 차장
18대 최훈(崔燻) 1993년 4월 3일 ~ 1994년 8월 20일 경북 대구
(현 경북과 분리)
경북대 교통부 수송정책국장&교통부 기획관리실장
19대 김인호(金仁浩) 1994년 8월 20일 ~ 1996년 3월 8일 경남 밀양 서울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한국소비자보호원장&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
20대 김경회(金坰會) 1996년 3월 8일 ~ 1998년 3월 8일 충남 예산 성균관대 철도청 차장
국민의 정부 21대 정종환(鄭鍾煥) 1998년 3월 8일 ~ 2001년 4월 1일 충남 청양 고려대 교통부 관광국장&건설교통부 기획관리실장&건설교통부 수송정책실장&국토해양부 장관&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22대 손학래(孫鶴來) 2001년 4월 2일 ~ 2003년 3월 3일 전남 보성 조선대 건설교통부 도로국장&건설교통부 광역교통정책실장&한국도로공사 사장&한국도로교통협회 회장
참여 정부 23대 김세호(金世浩) 2003년 3월 3일 ~ 2004년 9월 3일 경북 상주 고려대 건설교통부 차관
24대 신광순(申光淳) 2004년 10월 21일~12월 31일 경기 평택 서울산업대 철도청 차장&한국철도공사 사장

철도청 차장[편집]

공화국 대수 이름 임기 출신지 출신학교 비고
제2공화국 초대 임승일(林承日) 1963년 9월~12월
제3공화국 직무대리 이득용(李得龍) 1963년 12월~1964년 6월
2대 1964년 6월~1966년 1월
3대 정재식(丁哉錫) 1966년 1월~4월 교통부 기획관리실장
4대 정인화(鄭寅和) 1966년 4월~1967년 1월 교통부 기획관리실장
5대 박윤위(朴潤偉) 1967년 1월~1968년 1월 철도청 운수국장
6대 이진구(李瑨九) 1968년 1월~1969년 5월
7대 이병조(李丙祚) 1969년 5월~1970년 4월 철도청 공전국장
8대 김동혁(金東赫) 1970년 4월~10월
9대 윤종혁(尹宗赫) 1970년 10월~1972년 2월
10대 이병조(李丙祚) 1972년 2월~1973년 7월
제4공화국
11대 김재두(金載斗) 1973년 7월~8월 철도청 철도시설국장
12대 홍면후(洪勉厚) 1973년 8월~1976년 3월
13대 이용식(李鏞植) 1976년 3월~1977년 11월 철도청장
14대 황해중(黃海重) 1977년 11월~1980년 8월 영주·부산지방철도청장&철도청 전기국장&철도청장
15대 안창화(安昌和) 1980년 8월~1981년 1월 철도청 운수국장&철도청장&교통부 기획관리실장
제5공화국 16대 김영관(金榮觀) 1981년 1월~1982년 9월
17대 김하경(金夏經) 1982년 9월~1988년 12월 철도청 운수국장&철도청장
제6 공화국
18대 신영국(辛永國) 1988년 12월~1990년 7월 철도청장&제13·15·16대 국회의원
19대 김정옥(金正玉) 1990년 7월~1991년 6월 서울지방철도청장
20대 강신태(姜信泰) 1991년 6월~1993년 3월 철도청장
문민 정부 21대 김경회(金坰會) 1993년 3월~1996년 3월 철도청장
22대 민척기(閔拓基) 1996년 3월~

1998년 7월

철도청 재무관리국장
국민의 정부 23대 조우현(曺宇鉉) 1998년 7월~1999년 1월 전남 화순 고려대 건설교통부 국토계획국장&건설교통부 기획관리실장&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24대
25대
26대 박철규(朴喆圭) 2001년 5월~2003년 3월 경북 칠곡 한국철도대학장
참여 정부 27대 이근국(李根國) 2003년 3월~12월 경기 파주 육사 철도경영연구협회 회장
28대 신광순(申光淳) 2004년 1월~11월 경기 평택 서울산업대
29대 최연혜(崔然惠) 2004년 11월~12월 충북 영동 서울대 한국철도대학장&철도청 차장&한국철도공사 사장

비판[편집]

철도청 출범이후 이후 지난 1960-1970년대 산업선 등 주요 간선망 확대에 박차를 가하면서 태백선, 영동선, 경전선 등이 잇따라 신설됐고 경부선, 호남선, 경인선등 기존 철도망도 대부분 복선화되면서 현재의 기간철도망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그러나 국가기간교통망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누적 적자가 가중되면서 갖가지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어왔다. 1996년말 회계기준으로 부채총액은 1조 7,182억원이나 이르자, 적자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공사화작업이 추진됐다.[11]

철도청 폐지직전까지 영업적자 추이는 다음과 같다.[12] (단위: 억원)

구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영업수입 13,662 14,025 14,575 15,270 15,366 15,554 19,293(KTX 수입 5,180 포함)
영업비용 19,937 19,493 21,053 22,350 23,645 26,013 32,514
영업수지 (6,275) (5,468) (6,478) (7,080) (8,279) (10,459) (13,221)
정부 운영자금 지원 4,909 3,624 7,787 7,570 9,502 10,647(예산안) ?

각주[편집]

  1. “철도영업수지 누적적자 3천억원 돌파”. 《연합뉴스》. 1994년 3월 22일. 
  2. ③철도에 관한 사무를 장리하게 하기 위하여 교통부장관소속하에 철도청을 두고, 그 사무를 분장하게 하기 위하여 운수국·시설국·공전국·경리국과 자재국을 둔다.
  3. “「파시5형」마지막 칙칙폭폭”. 《중앙일보》. 1967년 8월 31일. 
  4. 백지연 앵커 (1988년 12월 30일). “정부, 철도청 공사화 법안 입법 예고”. 《MBC뉴스데스크》. 
  5. “한국철도공사 설립 준비단 발족”. 《연합뉴스》. 1994년 5월 10일. 
  6. “한국철도산업기술연구원 공식 출범”. 《연합뉴스》. 1994년 7월 28일. 
  7. 정창준 기자 (2000년 11월 15일). “아듀! 비둘기호”. 《KBS 930뉴스》. 
  8. 김원준 기자 (2004년 1월 7일). “한국철도시설공단 출범”. 《파이낸셜뉴스》. 
  9. 유승영 기자 (2003년 3월 31일). “장항선 통일호 역사 속으로”. 《KBS 9시뉴스》. 
  10. “철도청, 내일 ‘한국철도공사’로 공식 출범”. 《KBS 뉴스광장》. 2004년 12월 31일. 
  11. 高亨圭 기자 (1997년 10월 16일). “철도청 누적적자 6,288억원”. 《연합뉴스》. 
  12. 홍성원 기자 (2003년 3월 25일). “철도청 누적적자 3조 '눈덩이'.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