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마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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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마 운동(千里馬運動)은 1956년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1972년의 《인민민주주의헌법》 제13조에는 "천리마운동은 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1998년, 2009년 총 3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제1차 천리마 운동 1957년에서 1961년[편집]

천리마 운동의 기원은 1956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행한 김일성 북한총리의 연설 '사회주의 건설에서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키기 위하여'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북한은 1957년부터 시작될 예정인 경제5개년 계획을 앞두고 대내외적으로 심각한 난관에 봉착해 있는 상황이었다. 경제건설노선 등을 둘러싸고 전개된 당내 사상투쟁은 1956년 '8월 종파사건'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표출되었고, 소련 등의 원조 삭감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경제계획 수행에 중대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자본·물자·기술 등의 부족에 직면한 북한은 결국 자체의 내부 원천과 인민의 자발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했고 이를 위한 집단적 증산운동이 바로 천리마 운동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그해 12월 전원회의 직후 김일성은 강선제강소를 방문하여 인민에게 직접 자력갱생의지를 호소하는 한편,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는 구호를 광범하게 제창, 대중의 증산의욕을 촉구했다. 소극성과 보수주의를 퇴치하고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킨다는 명분으로 전개된 천리마 운동은 이후 전국의 전부문으로 확산되어 강제적 집단주의에 기초한 대중운동으로 굳어졌다. 이는1959년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공산주의적으로 일하고 배우며 생활하자'라는 구호 아래 사회주의적 경쟁운동의 성격을 띤 '천리마작업반 운동'으로 발전했다. 소련의 스타하노프 운동이나 중국의 대약진 운동과 비교할 때 천리마 운동은 노동생산성 향상을 통한 경제 부문의 성과만을 목표로 하지 않고 대중에 대한 사상고양을 통해 그들의 혁명적 열성을 높이는 정치사업을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1999년부터 북한은 김정일의 지시로 경제 도약을 목표로 한 제2의 천리마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제2차 천리마 운동 1998년에서 2004년[편집]

원래 '천리마운동'은 5개년 인민경제발전계획(1957~1961년) 수행직전인 1956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12월 전원회의에서 김일성 주석이 발기한 것으로 북한은 이 운동 기간 중 강력한 주민동원을 통해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토대를 마련하기에 주력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천리마운동' 대신 '3대혁명'(사상·기술·문화혁명)을 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으로 제시하고 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을 추진하면서 '천리마 운동'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1998년 3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성진제강연합기업소를 방문 "다시 한번 천리마 대고조의 선봉에 설 것"을 촉구한 이래 1999년 1월 신년 공동사설에서는 "김정일의 영도따라 제2의 천리마대진군을 다그쳐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다시한번 '천리마 운동' 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또 1999년 11월 3~4일까지는 평양에서 당·정 고위간부 및 각 분야 모범일꾼 6000여 명의 참가한 '제2의 천리마대진군 선구자대회'를 개최하고 앞으로 '3대혁명붉은기 쟁취운동' 등 대중 노력동원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을 촉구한 바 있다. 한편 북한은 제2의 천리마대진군에 이어 2001젼부터는 '21세기붉은기대진군'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노력혁신과 주민동원을 호소하고 있다.

제3차 천리마 운동 2009년에서 현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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