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금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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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금호문

금호문(金虎門)은 창덕궁의 서남편에 위치한 문이다. 돈화문의 서쪽 행랑 구역에 위치하여 서행랑문(西行廊門)이라고도 하였다. 성종 6년(1475년) 서거정이 이름을 짓고,[1] 성임이 편액을 썼다.[2] 오행 사상에서 서쪽을 가리키는 원소인 금(金)과 짐승인 백호의 호(虎)를 가져와 이름을 지은 것이다.[주해 1][3]

구조 및 기능[편집]

정면 1칸, 측면 2칸으로 솟을 대문 양식이다. 홑처마에 맞배지붕이고, 용마루 양쪽 끝에는 용두를 놓았다. 돈화문은 사헌부 관원이, 단봉문은 내시부 중관이 출입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금호문은 조정의 관리들이 출입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4]

사건[편집]

인조반정 당시 반군들이 창의문을 지나 금호문을 통해 창덕궁 궐내로 진입했다. 당시 금호문의 수문장이었던 박효립이 문을 열어주었다.[5]

일제 강점기인 1926년에는 송학선 의사가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암살을 시도한 사건인 금호문 의거가 이 앞에서 일어났다.

주해[편집]

  1. 西方金也, 其帝少昊, 其佐?收, 執矩而治秋, 其神爲太白, 其獸白虎, 其音商, 其日庚辛.

    서방은 금(金)이다. 임금으로는 소호(少昊)이고 … 신으로는 태백(太白)이며, 짐승으로는 백호요, 음으로는 상(商), 날로는 경신(庚辛)일에 해당한다.

    회남자》 〈천문훈〉

각주[편집]

  1. 성종실록》 58권, 성종 6년 8월 23일 기해 7번째 기사
  2. 한경지략》 〈창덕궁〉
  3. “[궁궐의 현판과 주련-창덕궁_궁문]”. 《문화재청》. 2010년 7월 12일. 
  4. 정조실록》 27권, 정조 13년 1월 19일 병자 3번째 기사
  5. “[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그 붉은 배롱나무의 뒤안”. 2018년 8월 24일. 2021년 4월 10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