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효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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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효선제 진욱
陳 孝宣帝 陳頊
진 고종 선황제 진욱
진 고종 선황제 진욱
지위
진나라의 제4대 황제
재위 568년 ~ 582년
전임자 폐제 진백종
후임자 후주 진숙보
이름
진욱(陳頊)
별호 자: 소세(紹世)
아명: 사리(師利)
묘호 고종(高宗)
시호 효선황제(孝宣皇帝)
신상정보
출생일 530년
사망일 582년
왕조 진나라
부친 시흥소열왕 진도담
배우자 황후 유씨(皇后 柳氏)
자녀 후주 진숙보(後主 陳叔寶)
시흥왕 진숙릉(始興王 陳叔陵)
장사왕 진숙현(長沙王 陳叔賢)
영원공주(寧遠公主)
임천공주(臨川公主)

진 고종 효선황제 진욱(陳 高宗 孝宣皇帝 陳頊, 530년 ~ 582년)은 중국 남북조 시대 의 제4대 황제이다. 문제 진천의 동생이다.

생애[편집]

중대통 2년(530년) 7월 진도담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문제 진천의 친동생이다. 진욱은 너그럽고 총명했으며 키는 8척 3촌이고 용모와 풍채가 좋았다. 또 용감했으며 말타기와 활쏘기에 매우 능했다.

후경의 난이 평정된 후, 그의 숙부 진패선이 자신의 아들 진창(陳昌)과 함께 그를 강릉으로 파견했고 직각장군, 중서시랑에 임명했다. 554년, 강릉이 서위에 의해 함락되어 진창과 함께 장안으로 끌려갔다. 진패선은 즉위한 후에 두 사람을 돌려 달라고 여러 차례 북주에 청원했으나, 북주는 허락만 하고 석방하지 않았다. 557년, 멀리서나마 시흥왕을 거쳐 안성왕에 책봉되었다. 562년, 결국 건강으로 돌아와서 시중, 중서감, 중위장군에 임명되었고 양주자사가 되었고 천가 6년(565년) 4월에는 사공으로 승진했다. 진욱은 벼슬이 높았고 진천의 친동생였으므로 권세가 대단했다. 직병 포승예는 진욱을 믿고 불법 행위를 했는데 어자중승 서릉이 진욱을 탄핵했다. 이에 진욱은 전상에서 형 진천을 모시고 서 있다가 식은 땀을 흘리며 낯빛이 변했고 그 일로 분노한 진천에 의해 시중, 중서감에서 해임되었다.

천강 원년(566년) 3월, 진천이 위독해지자 그를 불렀는데 진욱은 태자 진백종이 나약한 것을 걱정했다.

짐은 태백(太伯)의 일을 본받을 생각이오. 그러니 경이 이 자리를 대신했으면 하는데...

그러나 진욱은 눈물을 흘리면서 강력하게 거절했고 결국 유사지, 도중거와 함께 진백종을 보좌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유사지와 도중거는 궁중 내에서 정사를 처리하고 진욱은 측근들을 데리고 상서성에서 정사를 처리했다. 5월, 진욱은 표기대장군, 사도, 녹상서사가 되어 중외의 제반 군사를 관장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욱의 지위, 위망, 권세가 조정 내외에서 높고 커졌다. 유사지는 이를 시기하여 상서좌승 왕섬과 함께 진욱을 외지로 보낼 음모를 꾸몄다. 진욱은 이를 알면서도 병을 핑계로 유사지를 불러 얘기하고 동시에 사람을 보내 태후와 진백종에게 사람을 보냈다. 태후와 진백종은 각각 "내가 한 게 아님, 난 모름"이라고 말하자 유사지를 감옥에 가두고 옥중에서 죽음을 내렸다. 또 도중거와 우위장군 한자고 등도 죽이고 조정의 모든 대권을 손에 넣었다.

진백종의 친동생 시흥왕 진백무가 이에 불만을 품고 악담을 퍼붓자 568년 11월, 태황태후 장씨의 명으로 진백종, 진백무 형제가 유사지와 공모했다고 모함하고 진천의 부탁이라는 명목으로 진백종을 임해왕으로 폐하고 진백무를 온마후로 폐했다. 진백무는 금방 제거했으며 진백종은 570년 사망했는데 정황상 그도 죽음을 당한 걸로 보인다. 이듬해 정월 황제에 즉위했으며 573년 3월, 진욱은 북제가 쇠약해진 틈을 타서 진천장군 오명철에게 10만 명을 이끌고 토벌하도록 했는데 계속 승리했다. 575년에 이르러 회하 남북의 영토를 모두 수복했으나, 577년, 북주가 북제를 멸망시켰다. 이듬해 2월, 진욱은 다시 오명철에게 3만 명을 이끌고 수양에서 사수를 건너 북주의 팽성을 포위하게 했으나, 북주 군대에게 전멸되고 오명철도 포로가 되었다.

579년 9월, 북주군이 회남을 공격하자 결국 장강 이북의 영토를 모두 상실했으며 581년에는 양견이 북주의 우문천(정제)에게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세우고 북주를 멸했다. 이로 인해 진욱은 실의에 빠져 병을 앓게 되었다. 결국 이듬해 정월, 진욱은 재위 14년만에 53세의 나이로 건강 선복전에서 사망했으며 2월, 현녕릉에 안장되었다.

선제이자 친형이었던 진천도 장남이자 후계자였던 나약한 진백종을 걱정해서 눈을 감을 때까지 편안하지 못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조카 진백종을 폐위시키고 황제가 된 진욱도 자신의 장남이자 후계자였던 진숙보 걱정으로 눈을 감을 때까지 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진백종은 단순히 나약한 인간이었고 북조에서는 북주와 북제가 공존하고 있어 외정에서는 큰 위혐이 없었지만 진숙보가 즉위할 때는 북주가 북제를 멸한 후 수나라가 찬탈하여 한창 진나라를 노리고 있을 때였던 것이다. 거기다 진숙보는 어리석은 것도 모자라 매우 막나가는 인간이었다.

가계도[편집]

  • 아버지 : 시흥소열왕 진도담(始興昭烈王 陳道譚) - 진나라 초대 황제 무제 진패선(武帝 陳霸先, 503년 ~ 559년)의 형
  • 어머니 : 미상
    • 부인 : 황후 유씨(皇后 柳氏, 533년 ~ 615년) - 유경언(柳敬言), 제나라 정양충무공 유세륭(貞陽忠武公 柳世隆, 442년 ~ 491년)의 증손녀, 시중 유수(柳修)의 손녀, 양무제의 부마 유언(柳偃)의 딸, 문제 진천의 부마 유반(柳盼)의 누나
      • 아들 : 후주 진숙보(後主 陳叔寶, 553년 ~ 604년) - 진나라 5대 황제(진나라 마지막 황제), 황후 유씨(皇后 柳氏) 소생
      • 며느리 : 후주황후 심씨(後主皇后 沈氏) - 심무화(沈婺華), 진패선의 부마 망채정헌후 심군리(望蔡貞憲侯 沈君理, 525년 ~ 573년)의 딸, 회계목공주(会稽穆公主)의 딸, 진패선의 외손녀
      • 아들 : 시흥왕 진숙릉(始興王 陳叔陵) - 귀인 팽씨(貴人 彭氏) 소생
      • 아들 : 장사왕 진숙현(長沙王 陳叔賢) - 숙의 하씨(淑儀 何氏) 소생
      • 딸 : 영원공주(寧遠公主, 577년 ~ 605년) - 진선화(陳宣華), 시희(施姬) 소생
      • 사위 : 수 문제 양견(隋 文帝 楊堅, 541년 ~ 604년) - 수나라 초대 황제
      • 사위 : 수 양제 양광(隋 煬帝 楊廣, 569년 ~ 618년) - 수나라 2대 황제
      • 딸 : 임천공주(臨川公主)
      • 사위 : 수 문제 양견(隋 文帝 楊堅, 541년 ~ 604년) - 수나라 초대 황제
    • 형 : 문제 진천(文帝 陳蒨, 522년 ~ 566년) - 진나라 2대 황제
    • 형수 : 문황후 심씨(文皇后 沈氏, ? ~ 605년) - 심묘용(沈妙容), 건성현후 심법심(建成縣侯 沈法深)의 딸
      • 조카 : 폐제 진백종(廢帝 陳伯宗, 554년 ~ 570년) - 진나라 3대 황제
      • 조카 : 부양공주(富陽公主)
      • 조카사위 : 유반(柳盼) - 황후 유씨(皇后 柳氏, 533년 ~ 615년)의 남동생, 효선제 진욱(孝宣帝 陳頊)의 처남


전 임
폐제 진백종
제4대 진나라 황제
568년 ~ 582년
후 임
후주 진숙보